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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단상,,,"연꽃의 덕성"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05-06-30 18:19 게재일 200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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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 스님·천태종 황해사 주지
새봄과 더불어 산하대지에는 갖가지 꽃들이 시간 차이를 두고 피어나 한 폭의 아름답고 장엄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이루었다.


여러 가지 꽃 가운데 6, 7월에 피는 백련(白蓮), 청련(靑蓮), 홍련(紅蓮)등의 연꽃들은 단연 고운자태와 맑은 향기가 으뜸이면서도 연꽃이 갖추고 있는 불교의 진리적인 덕성(德性)은 다른 꽃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특색을 갖추고 있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만유의 주인공이며 자신의 주인공인 본성(本性)에 비유하고 있으며, 또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菩薩)에 비유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연꽃을 비유하여 불국토(佛國土)의 장엄함과 깨달음을 설하고 계시듯 불교와 연꽃이 떼어놓을 수 없이 긴밀한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연꽃은 세 가지의 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종자부실(種子不失)의 덕으로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연꽃의 열매(蓮實)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있다가 촉이 트일 기연(機緣)을 만나면 싹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연실의 생명은 영원하여 끝이 없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본성은 맑고 청정하여 생사가 없는 영원한 생명이라 하셨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미혹하여 삼독번뇌에 의해 욕망에 물들어 업을 짓는 까닭에 업력에 의해 생사윤회하고 있을 뿐, 수행을 통하여 청정한 본성을 회복하면 업이 끊어지고 생사가 단절되어 영원한 생명을 이룰 수 있다고 하시듯, 불교에서는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연꽃을 본래 생사가 없는 우리의 본성에 비유한 것이다.


둘째는 어니불염의 덕으로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음을 뜻한다.


연꽃은 진흙땅에 물이 고여 있는 깨끗하지 않은 연못에 뿌리를 두고 피어나는데, 더러운 연못에서 피어오르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와 맑은 향기를 지니고 있다. 마치 생사를 벗어난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삼독오욕과 생사가 있는 중생계로 다시 돌아와 살면서도 욕망과 번뇌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불교에서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을 욕망에 물들지 않는 보살에 비유한 것이다.


셋째는 화과동시(花果同時)의 덕으로서 차별이 없는 절대평등을 뜻한다.


지상에 피어나는 모든 꽃들은 한결같이 꽃이 먼저 피어난 뒤에 꽃이 지면 그 속에서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연꽃은 다른 꽃들과 다르게 꽃송이 속에 열매가 동시에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연꽃을 차별이 없는 평등의 꽃이라 한다.


마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되 욕망과 분별을 여윈 지혜로서 일체에 대하여 무차별(無差別) 평등하게 대하듯, 불교에서는 화과평등의 연꽃을 일체에 평등한 보살행을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인생은 연꽃이 갖추고 있는 덕성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고 하셨다.


행복과 불행의 주인은 자신이며, 또한 생사와 열반(涅槃)의 주인도 자신일뿐, 남이 아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으로 결정하고 말과 행동으로 상대에게 선인선과(善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업인(業因)의 씨를 뿌리고 스스로 뿌린 업의 과보(果報)를 거두는 인과법칙(因果法則)에 의하기 때문이다. 곧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원리가 우리 삶을 이루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까닭에 우리는 욕망의 번뇌에 물들지 않는 삶이 되도록 마음을 추스르고 맑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미래가 어둡고 불행해지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욕망에 물들어서 그 욕망을 채우느라 다른 이에게 괴로움과 불행을 줬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미래가 그로 인해 어둠과 불행으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과 남이라는 이분법적인 차별의 잣대가 무디어 지는 만큼 세상은 평등해져 행복을 공유(共有)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꽃이 갖춘 세 가지의 덕성을 우리 삶에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용암 스님·천태종 황해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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