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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로빈 후드 효과

등록일 2004-07-07 18:55 게재일 200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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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에 대한 논란과 관련, 경제학적 용어로 ‘로빈 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란 말이 있다.

영국 소설속의 전설적인 영웅 로빈 후드가 당시 노팅엄의 셜우드 숲에 살던 약자와 서민들을 돕기 위해 권력자와 부자들을 향해 일삼던 약탈행위가 역설적으로 약자와 서민들에게 득이 아닌 해를 끼쳤다는 것이 결론이다. 로빈 후드에게 재산을 강탈당한 권력자들은 그것을 만회하려고 보다 많은 세금을 서민들에게 부과하게 됐으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로빈 후드가 도우려는 이들에게 안겨졌다.

로빈 후드의 역할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Economic Analysis of Robin Hood).

국내에서도 민주노동당이 공약으로 내건 ‘부유세 신설’을 놓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부유세를 도입했던 구미국가의 실패를 경험한 바로는 국내의 부유세 도입도 쉽지만은 않을 듯 싶다.

최근 미국 뉴저지 주지사 제임스 맥그리브는 주 의회에서 ‘백만장자 세(Millionaires’ Tax)’라는 새로운 세법을 제안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벌써부터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몇몇 대기업들은 다른 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신규투자를 중단한 기업도 있다고 한다.

로빈 후드식 접근방법이 세수감소란 부작용에 직면한 것이다.

빈부격차의 문제는 산업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수반되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악현상이며 정부는 그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진하다.

최근 국내경기가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대노조와 중소노조, 업종간의 부익부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철강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포항공단의 한 대기업은 최근 상반기 경영성과급으로 350%를 지급했다. 10년차 과장급의 경우 500여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올해 임금협상을 무교섭으로 타결하거나 임금을 동결한 주요 철강업체 근로자들의 주머니도 두둑하기는 마찬가지다.

모 기업의 경우 임금 4.9% 인상, 무교섭 임금타결 노사화합 격려금 50만원, 창립기념 특별격려금 50%, 상반기 경영성과급 150% 등 최소 200% 이상을 거머쥐었다.

또다른 기업은 노사합의로 임금을 동결했지만 임금동결 손실금조로 성과급 200%에 올 영업이익에 따라 최대 100%를 추가로 지급키로 해 사실상 300%를 지급받게 됐다.

이같은 대기업들의 부익부 현상과는 달리 중소업체들의 빈익빈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포항공단내 정비협력사인 P사는 최근 경영환경 악화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영성과급을 받지 못했으며 역시 철구조물제작사인 K사는 철구사업본부를 아예 폐지할 수 밖에 없어 해당 근로자들이 일터를 떠났다.

설상가상 포항공단의 한 외국계 회사는 누적적자를 견디지 못해 이달초 아예 공장문을 닫았다.

냉엄한 경제현실속에서 이윤을 내는 회사나 적자를 내는 회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거대자본을 앞세워, 또는 독과점적인 시장지위력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상이익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대기업이 있는 반면, 이들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 적자경영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 소속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특성이라고 시장논리에만 맡긴채 방치해야만 할 것인가.

한 사회의 경제적 이익이 전체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경제주체의 소망이자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그 역할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세 도입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생산효율저하, 나아가 사회적인 병리현상의 양산 등이 방치될 경우 대다수 빈곤층은 로빈후드식 약탈을 동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성장의 분배에 충실하되 그것이 자신들만의 축제가 되지않도록 해야 한다.

오늘의 과실이 있기까지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서 희생을 담보한 하청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하청사들의 근로자들은 과연 상대적 박탈감은 갖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고, 제도적인 방법을 통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분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만의 축배를 들고 있는 자들을 겨냥한 로빈후드식 약자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 자명하다.

비록 강자에 대한 로빈후드식 약탈이 다시 강자들의 약자들에 대한 수탈로 이어지더라도.

<이창형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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