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영덕 인량리 전통민속문화 마을 은행나무·팽나무·회화나무 노거수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에 따라서 인물의 태어남과 기질이 형성된다고 믿어 왔다. 그런 연유로 마을이나 산의 지형을 함부로 변형하거나 훼손하는 일을 싫어하고 못마땅했다. 10여 년 전인가 영덕 인량리 전통 민속문화 마을 노거수를 찾았다. 그때 알고 지내는 지인이 인량리 마을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사회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마을 뒷산에 송전탑이 세워져 지나가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지기가 끊어지고 약해진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 마을 출신 박약회 회장이며 인성교육 전문가로 변신한 한국 PC 아버지로 불리는 전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을 찾았다. 마을의 지기가 끊어지고 약해져 큰 인물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 사업을 중단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이 회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걸작이었다. ‘요사이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무슨 인물이 태어난다고 합니까?’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인량리 마을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등에 업고 넓은 평야를 안고 있다. 낙동정맥에서 발원한 송천을 사이에 두고 원구리 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풍수지리로 볼 때 배산임수형의 마을이 아닐까 싶다. 두 마을은 서로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옛날부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해 왔다. ‘영해부지(寧海府誌)’에 의하면 “인량리는 팔성종실(八姓宗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이지 않으니 영해부 내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 했다.” 재령이씨 이애(李璦)가 건립한 충효당 종택을 비롯하여 민속문화재 유산이 무려 9점이나 있는 마을이다.
인량리 충효당 종택·민속문화재 9점
은행나무·팽나무·회화나무·비보림
한 마을에 다양한 노거수 흔치 않아
태풍에 쓰러진 500년 된 회화나무
은행나무 520년·팽나무 350년 등
마을보호수로 수백년째 자리지켜
민속문화란 민간 생활과 결부된 풍속, 신앙, 전설 등 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문화를 말한다. 특히 민속문화는 마을 주민과 마을 나무라 일컬어지는 동신목 노거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량리 마을에는 마을 뒤 산자락 충효당 종택과 은행나무(459-1번지), 마을 서쪽 비보림의 팽나무(438번지), 마을 앞 남쪽 들판 서낭당 회화나무, 팽나무(250번지) 노거수가 있다. 한 마을에 이런 다양한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지령(地靈)은 높은 산의 신령이 아니라 바로 마을 숲과 노거수가 있는 마을과 그 나무들이 지령이 아닐까 싶다.
충효당 종택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나이 520살, 키 22m, 가슴둘레 5m가 넘는다. 앉은 자리 폭이 무려 24m로 면적은 130평이 넘었다. 암그루로 매년 많은 은행을 생산하고 있다. 거대하고 우람한 나무가 마을 뒤 높은 곳에 있어 멀리서도 그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은행나무 노거수는 마을의 전통 고유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마을의 랜드마크 기능과 마을 역사의 표징이 되고 있다. 또한 충효당이라는 건축물과 입향조 이애란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역사의 산 공유물로서 그 증거 및 보완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 서쪽 비보림은 2004년 4월 17일 새천년 기념 숲으로 지정되었다. 걸출한 품위와 멋있는 외모를 갖춘 팽나무 노거수는 2007년 2월 12일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나이는 350살이고 키는 14m이다. 가슴둘레는 3m가 훌쩍 넘고 앉은 자리 넓이는 90평이나 되었다. 비보림에는 마을 주민들이 느티나무, 주목을 심어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지리적으로 비보림(裨補林)은 풍수상의 모자라고 허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말한다. 엽승림(擫蕂林)은 풍수상의 불길한 기운이 마을에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하여 조성한 숲을 말한다. 어쨌든 마을 숲은 방풍, 방수, 방온 등 미세 기후를 조절하고 지역 주민과 지역의 야생 생물들의 생활과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숲 생태계이다.
팽나무 노거수 나무줄기 위에 어린 노간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나무뿌리 부근에서 자란 여러 줄기가 자라면서 몸집을 불려 지금은 하나의 원줄기로 변환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합의 상징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원추형 수형이 아름답다. 가로로 자란 큰 줄기에 세로로 자라는 어린줄기가 꼭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 같다. 예전에는 당산목이었으나 지금은 마을 앞 서낭당으로 옮겨서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거대한 팽나무 아래 함께 동거하고 있는 어린 회화나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마을 앞 남쪽 들판 서낭당에 회화나무, 팽나무(250번지)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1996년 12월 6일 보호수 지정하여 기와로 얹은 돌담으로 경계를 지우고 남쪽으로는 철책을 둘러쳐서 당산목과 당우를 보호하고 있다. 태풍에 쓰러져 누워서 살아가고 있는 회화나무 나이는 500살이다. 가슴둘레는 약 3m, 키는 8m라 해야 옳은지 아니면 15m라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상처가 나 곪아 있는 몸에 자라고 있는 줄기 모습이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엄마의 몸을 빌려 살아가는 염량 거미를 생각나게 한다. 누운 회화나무를 떠받들고 있는 팽나무 모습이 거룩해 보인다. 이제 팽나무와 회화나무는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마을 숲과 노거수는 우리의 삶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치와 기능은 다양하다. 전통 민속문화로 자리매김한 마을 숲과 노거수를 땅의 효율성과 생활의 편리성만 따져서 함부로 훼손하거나 제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낭당에 세워진 정자에 마을 노인들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외롭게 보였다. 옛날과 같이 손자 손녀와 함께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미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노거수는 어떤 가치와 기능을 가졌을까?
전통 민속문화의 자연자산인 노거수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래 그걸 간략하게 요약해본다.
△지구환경을 구성하는 환경재의 기능이다. 인류 공동의 자연자산 즉 공유자산으로서 금전적 가치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의 비사용가치, 즉 존재가치가 있다. △학술적 잠재 자연식생의 기능이다. 자연적 기원의 노거수는 그 지역의 잠재 자연식생 정보를 제공한다. △생물다양성과 생물서식공간의 기능이다. 노거수 한 그루에는 수많은 생물 종의 삶의 터전이다. 지역의 생물다양성 중심지로서 지역 고유의 생물종다양성과 유전자 다양성을 저장하는 종자은행(Seed Bank)이다. △환경조절의 공익 가치이다. 노거수는 수원함양, 대기정화, 토양정화, 토사유출 방지, 산소생산, 소음방지, 기상완화, 쓰레기 처리 등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고 증진한다. △미적 가치이다. 자연미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가치이다. △지역의 이정표 기능이다. 노거수종을 따라서 지명을 붙인 사례가 많다. △생명·우주 기능이다. 노거수는 지역 주민과 어린이의 영속적 교육재료가 되며 수령과 수명을 고려한 생물체의 생명환을 이해하는 학습자료이다. △교육, 홍보 기능이다. 노거수는 생태환경과 웰빙에 대한 영상매체를 이용한 교육적 수단으로 유효하며 생태관광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