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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두 개의 바이러스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해마다 연말이 되면 방송에서는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해 한해를 되돌아보는 보도를 한다. 2020년은 동일 숫자가 이어지는 인상적인 해인 만큼 ‘올해의 키워드’도 연초부터 드러난다. 한국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과 코로나19의 사태가 2020년 희비(喜悲)의 대표 키워드가 될 것은 분명할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를 긴장하게 하면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헬라어 ‘kor1E53n0113(κορ03CEνη)’에서 유래한 ‘코로나(corona)’는 ‘크라운(crown·왕관)’의 뜻이다. 바이러스의 모양이 ‘로마 시대의 머리 장식’과 비슷한 데서 지어졌다고 한다. 전파력이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현저히 높은 바이러스다. 신도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종교단체 ‘신천지’의 신도가 감염됨에 따라 코로나19의 전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제는 이것을 인력으로 막는 데 한계를 느끼기까지 한다. 감염 바이러스에 대한 안일함이 지금의 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교육계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졸업식과 입학식 등 정례 행사들을 모두 취소하고 개학 일정도 2주~4주 간 연기하였다. 민생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나날이 늘어나는 감염 확진자들로 의료계는 사상 최대의 혼란과 과로를 겪고 있다. 육아 문제나 기업의 업무 차질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마스크 품귀에 따른 가격 폭등과 부당폭리, 매점매석 등은 ‘나만’, ‘나 먼저’ 살겠다는 이기심을 부추겼고 마스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에는 취약성만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필자도 이른 아침부터 3시간 반을 기다려 정부에서 공급하는 마스크를 겨우 살 수 있었다. 밀집된 장소를 피하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을 다닥다닥 붙어 늘어선 긴 줄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웃프지 않은가.사회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성금과 기부가 이어지고 있으나 또 한편에서는 마스크 한 장 나누는 것조차 꺼려하며 위기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까지 한다. 무분별한 혐오와 분노 표출, 별별 가짜 뉴스는 더 큰 공포감을 확산하면서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거짓 감염 확진 신고로 공공기관에 혼란을 주는 행위나 감염 확진자가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 손잡이에 침을 뱉으며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영상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환경이 선한 인간을 악하게 하는 것인가, 환경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가.그래도 인간의 본성은 선(善)일 것이다. 위기 때마다 공멸(共滅)의 바이러스와 공생(共生)의 바이러스는 공존하였다.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공생의 바이러스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분별력으로 차단과 확산의 의지가 절실하다. 코로나19가 우리 안에 또 하나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그것이 퍼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공생의 의지를 단단히 해야 한다.

2020-03-10

검소와 겸손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몇 달 전의 일이다. 밀려드는 업무로 정신없어 한동안 못 나간 친목 모임에,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도 있고 하니 꼭 와 달라는 간청이 있어 잠시 짬 내어 뒤늦게 합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그날따라 왠지 싸늘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래,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말석에 앉아 있다 보니, 아하! 바로 이 때문이구나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 새로 왔다는 인물의 ‘자랑’. 그 자랑은 남편이 사준 알파카 코트에서부터 시작해 명품백, 명품 보석으로 신나게 이어지더니 급기야 전세 대출금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새로 산 건물 자랑으로 마무리하며 ‘왜, 다들 부러우세요?’라는 말로 최정점을 찍었다. 그야말로 3종, 4종 세트로 자랑질을 해댔으니, 다들 처음에는 그냥 듣다 나중에는 말없이 음식만을 꾸역꾸역 먹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옛말에 복은 검소함에서, 덕은 겸손에서,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는 말이 있다. 물론 요즘은 자기 피알시대라, 어느 정도의 자랑은 귀엽게 봐줄 만도 하고 어느 정도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친 자랑은 오만함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주변 사람을 잃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 한다.’면서 ‘어리석은 자는 그러고 나서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부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워하게 되니, 자기의 재산을 축내고, 자기의 명예마저 손상시킨 데다 남의 미움까지 사게 되니, 어리석은 짓 아닌가?’라 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사치를 통한 자랑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다는 검소함을 통한 겸손으로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중국 송대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 역시 ‘家範’에서 겸손과 검소함은 인간의 덕을 기르는 기초이기에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자녀교육의 핵심이어야 한다 했고, 조선 시대 정조는 이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즉위년(1776) 3월 16일, 궁중의 내시와 궁녀들을 대폭 축소하는가 하면, 재위 기간(24년) 동안 12첩 수라상 대신 하루에 두 끼, 그리고 한 끼에 다섯 가지 반찬만 먹기를 실천했고, 곤룡포·강사포를 제외한 옷들을 비단 아닌 무명으로 지어 입거나 심지어 구멍 난 버선을 실로 꿰매 신기도 했던 일이 그 대표적이다.우리 선조들이 이처럼 검소함을 강조한 것은 사치할 돈이 없어서이거나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검소함에서 청렴함이 생겨나고, 자랑할 마음은 사라지며, 스스로 절제하는 데서 겸손함이 획득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타인을 포용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 한층 더 성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2월 말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 사치와 자랑으로 치장한 ‘어리석음’ 대신 검소와 겸손으로 무장한 ‘현명함’으로 한겨울을 마무리하고 새봄맞이 마음을 한번 다져보면 어떨까?

2020-02-25

황금률(Golden Rule)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필자의 지인 중에, Y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구김살 없이 성격도 좋고 경우도 바르며 인물과 능력도 매우 뛰어나 어딜 가나 늘 인기가 있는, 타고난 호감형의 인물이다. 부유하나 돈 자랑은커녕, 오히려 가난한 이웃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와주고, 뛰어난 능력자이나 항상 겸손하며, 남의 불행엔 진심 마음 아파하고 남의 행복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축하해주는 그런 위인이다. 그런데 그가 벌레 보듯 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속 좁기로 소문난 L이었다.하루는, 왜 L이 그렇게 싫은가 물었더니, Y의 말인즉슨, L의 속 좁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상대를 예로써 대하지 않는데, 상대방으로부터는 존경받으려 하는 모양새가 싫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골라서 남에게 시키니 그런 무례함이 싫으며, 특정인을 챙기려고 작정하면 애꿎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서라도 무리수를 두니, 그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포스트잇이 붙은 성경 한 권을 건네었다. 펼쳐 보니 그 곳은 다름 아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7장 12절, 바로 그리스도교의 핵심 윤리인 황금률(Golden rule) 부분이었다.예수는 이 황금률을 율법서와 예언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들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사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대접한다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대접한다’는 말에는 이미 내가 어떤 대접을 받을 사람인지가 정해졌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옛날 무학 대사가, 저를 ‘돼지 같다.’고 한 이성계를 향해, 오히려 부처 같다하면서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이,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이 보인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돼지만 보이는 당신은 돼지처럼 대접받으면 될 일이고, 부처를 보는 나는 부처같이 대접하라는 명쾌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곧 타자를 향한 베풂이자 나를 향한 베풂이기도 하다. 논어 위령공 편에는,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가르침을 요구하자 공자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나온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신이 원치 않으면 타인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렇다.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절대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을 망각한 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기소불욕 시어인(己所不欲 施於人)’ 족속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바야흐로, 한 해의 끝자락 12월이다. 이맘때면, 올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기도 하고, 다가올 신년 계획도 세우기 마련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 추억들이 많겠지만, 그 틈 사이로, 스스로 황금률을 제대로 실천해 왔는지, 혹 ‘기소불욕 시어인’ 하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스스로 한번쯤 성찰해 보는 시간을 살짝 넣어보면 어떨까?

2019-12-10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상춘객들로 명승지들이 붐비는 봄이다.대학도 개학을 해서 분주한 봄을 보내고 있다.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고등학교와는 많이 다른 대학의 풍습들을 알아가느라 더욱 바쁜 봄을 보내고 있다. 특히 대학생활 초반부터 취업을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머리를 싸매는 학생들도 보인다.빈번하게 논의되는 문제이지만, 대학은 취업교육기관이 결코 아니다. 대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취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학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탐구하는 데 있다.취업은 대학 이후의 삶 중의 하나이고, 대학 이후의 삶을 시작하는 데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취업 부분을 확대시키다보니 마치 대학생활의 전반을 취업에 맞춰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정치인과 기업인은 물론이고 교육자까지도 국가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능 중심 교육이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한다.그들은 학생들에게 이제 헛된 꿈을 그만 버리고 직장에서 필요한 기능과 능력을 실질적으로 함양할 방법을 강구하라고 재촉한다. `지식을 향한 폭넓은 탐구는 이제 어떤 결실도 맺을 수 없는 길이라 여겨진다`고 파리드 자카리아는 미국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외교정책 전문가인 그는 또 대학에서의 전공과 졸업 후 생계를 위해서 얻은 직업과의 관계가 그렇게 돈독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0년 전에 컴퓨터 언어를 배운 사람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애플리케이션의 세계와 모바일 기기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따라서 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학습하는 방법은 생각하는 방법일 것이다.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인 마사 누스바움도 과학·테크놀로지·엔지니어링 분야의 결함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미국고등교육 정책을 비판하면서, `전 세계 국가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전통을 비판할 수 있으며, 타인의 고통과 성취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온전한 시민이 아니라, 곧 유용한 기계일 뿐인 세대를 생산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그녀는 생각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영혼`을 이야기한다. `생각이 영혼으로부터 열려나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풍요롭고 미묘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생각이 사람을 연결시킨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이어서 그녀는 영혼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며, 우리의 인간관계를 단순한 사용과 조작의 관계가 아니라 풍요로운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만들어주는 사고·상상능력. 우리가 사회에서 서로 만날 때, 서로에게서 사고와 감정의 내적 능력을 상상하고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해주는 그 무엇`이라고 하며,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파리드 자카리아나 마사 누스바움의 주장을 얼핏보면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면 기술교육과 인문교육의 조화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대학 생활 이후, 취업도 중요하고 삶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며,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마사 누스바움이 이야기하는 `이익 창출 교육`과 `전인교육` 사이의 줄다리기를 위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교육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2018-03-13

중국산 김치

우리나라 `김치문화`가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등 모두 16개의 인류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김치가 아닌 김치문화가 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상업화를 이유로 유네스코가 음식 자체는 문화유산으로 인정 않기 때문이다.`지중해 요리문화`나 `멕시코 전통요리문화` 등도 같은 이유로 인류문화유산에 올라와 있다.작년에 문화재청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긴 공동체 음식문화인 김치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제133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역사적으로 한국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고, 협동과 나눔의 공동체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는 점 등을 지정 이유로 꼽았다. 김치는 이처럼 한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다. 김치가 한국적이면서 외국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발효식품이란 점이다. 미생물의 효소활동에 의해 원료보다 더 바람직한 식품이 되고 영양학적 가치도 뛰어난 음식이란 것이다. 발효식품 자체는 장수음식이다. 우리의 김치 속에는 이런 조상의 지혜가 녹아있어 자랑스럽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김치의 영양가와 저장성을 높인 식품개발에 앞장선 우리의 조상의 지혜는 가히 감격적이다.김치에 고춧가루가 양념으로 사용된 것은 오래전 일은 아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고추가 김치에 쓰였던 것은 그후 150년이 지난 1700년대쯤으로 기록되고 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그전에는 초피가루를 사용했다 한다. 고춧가루는 이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최고의 향신료가 됐다.작년 중국산 김치 수입이 한국시장을 독점하면서 수입량도 대폭 늘었다. 그러나 국내에 유통되는 중국산 김치에 대한 위생 문제는 여전히 뒷말을 남기고 있어 찜찜하다. 최근 SNS에 중국발(發) 동영상이 올랐다. 현지 건고추더미에서 쥐떼가 득실대는 장면이다. 이를 본 많은 한국인들이 입맛을 잃었다고 하소연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중국산 김치를 먹어야 하나 한국소비자들이 딜레마에 빠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1-26

굿즈열풍

이니굿즈, 아이돌굿즈, 평창굿즈 등으로 대변되는 `굿즈열풍`이 거세다. 굿즈는 본래 일본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유래한 말로, 아이돌 사진을 넣은 티셔츠·머그잔·열쇠고리에서 출발했다. 이니굿즈란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인`재이니`의 `이니`와 상품이란 뜻인 `굿즈(goods)`의 합성어로 `문재인 우표`로 시작해 손목시계·텀블러·책·피자로 이어진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예산심의를 받느라 수고했다며 기획재정부에 보낸 피자 350판의 주인공 피자마루도 `이니굿즈`에 합류했다. 이니굿즈의 높은 인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덕분일게다. 굿즈의 원조인 아이돌 굿즈 시장은 이제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신세계면세점 오픈 때부터 단독 매장을 낸 YG스토어의 화장품 브랜드 `문샷(moonshot)`이 대표적이다. 또 편의점 CU가 지난 6월 내놓은 `방탄소년단 CU플러스티머니` 카드는 한 달 만에 25만 장이 다 팔렸다. 최근엔 방탄소년단 치약·칫솔도 나왔다. 모두 아이돌굿즈에 해당한다. 평창굿즈는 최근 인기를 끈 평창롱패딩이 대표적이다. 내년 1월에 선보이는 `평창 스니커즈` 5만 켤레도 이미 예약판매가 완료됐다고 한다.굿즈 열풍은 주로 밀레니엄 세대에서 불고있다. 나이로 치면 1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다. 이들은 꼭 필요한 제품을 구매한다기보다는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른바 `가치소비`를 중시한다. 허니버터칩부터 시작해 아이돌 굿즈, 롱패딩 같은 제품은 생필품이라기보다는 잉여소비에 가깝다. 이니피자에서 보듯이 아무 피자가 아니라 대통령이 선택한 피자, 아무나 살 수 있는 옷이 아닌 한정판, 친구들이 모두 입기 때문에 나도 있어야 하는 것 등이 바로 굿즈열풍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상품 구매를 통해 소통, 공감, 유대를 원한다. 굿즈 열풍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소비 패턴 변화를 예고하기도 한다. 바로 `내게 의미 있는 제안을 하는 제품`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같은 굿즈열풍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 정치판에도 굿즈열풍을 통해 소통, 공감, 유대가 뿌리내리면 얼마나 좋을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2-12

포항시장의 성금

지진에 떠받힌 포항은 지금도 뒤숭숭하다. 시민들은 흐트러진 일상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어도 만나는 사람마다 지진 후유증을 호소하니 저절로 피로감이 쌓인다. 지진 발생 열흘이 다가오고 있으나 불안과 공포가 여전히 포항시민을 짓누르고 있다.포항시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포항지역 지진 피해는 23일 현재 전체 시설물 피해만 2만여건을 넘고 피해액도 7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1천300여명이 넘는 이재민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복구 작업에 동원된 인력이 4만5천500여 명에 달한다. 피해지역을 순회하는 자원봉사자도 1만명을 넘어섰다. 수치만 봐도 포항지역 실상은 대강 어림잡아 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포항을 찾던 외지인의 발길마저 뚝 끊겼으니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할 뿐이다.그나마 전국 각지에서 답지하는 피해 성금에서 실의의 포항시민들은 위안을 느낀다. 단숨에 성금 규모가 137억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지원을 감안하더라도 원상복구 하기에는 태부족한 금액이다. 그러나 십시일반의 성금으로 모아진 정성 앞에 모두가 고마워한다.지진사태 수습에 막중한 책임을 진 이강덕 포항시장의 심정은 말 그대로 노심초사(心焦思)다. 중앙정부의 장관들이야 걱정만 하면 그만이지만 현장에서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시장은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 지원도 잘 이끌어내야지, 현장에서 주민과 아픔도 함께 해야 한다. 이 시장이 20일 자신의 급여통장에 모아 둔 1억16만원을 성금으로 기탁했다. 생색내는 것 같아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이 시장은 작년 6월에도 급여통장에서 1억2천800만원을 포항시장학회에 전달한 바 있다. 해경청장 퇴임 때도 10개월 치 월급 7천30만원을 해경자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벌써 세 번째다. 부인에게 별도의 수입이 있다지만 쉽지 않은 결단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마음의 글(心書)이라 했다. 목민관 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실천의 어러움을 가르킨 말이다. 이 시장의 용기 있는 결정이 포항의 재기에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1-24

게으름에 익숙해질 시간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 박사국무회의에서 지난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열흘 가까운 황금연휴를 보냈다. 인천공항은 개항 이래 최고 인파가 모여들어 110만 명 이상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쉬지도 못한 채 일터에서 분주하였다. 달력의 휴일과 무관하게 그림자 노동, 감정노동까지 감당하는 휴식의 양극화를 보여주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바쁘게 노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도 일과 휴식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한국은 OECD 회원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24시간 가동되는 사회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동은 진행된다. `과로사`를 언급할 만큼 많은 직장인들이 장시간 회사에 얽매여 있고 노동 강도 또한 높다. 무엇보다 빡빡한 스케줄로 쉼표의 시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유엔이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정하고 실시한 갤럽조사는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143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어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느꼈는가?”, “하루 종일 존중심으로 대우 받았는가?”, “많이 미소 짓거나 웃었는가?”, “흥미로운 것을 배우거나 했는가?”, “많은 시간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남미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파라과이가 100점 만점에 89점으로 1위였고, 한국은 59점이었다. 우리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나라는 22개국뿐이었다.이러한 낙제점은 바쁘게 살며 휴식과는 거리가 먼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일상을 축제처럼 보내는 남미와는 달리, 굳은 표정으로 옆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전방질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형성해 갈 것인가 주체적인 탐색의 시간도 없이, 타자를 환대할 여유도 없이, 자본과 시장에 소모되는 존재는 취약하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고 극대화 하려 애쓰는 가운데 만성피로가 축적되고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이 늘어난다. 심신이 충분히 쉬지 못한 상황에서 행복에 대한 질문은 곤혹스런 일이다.우리 사회는 `바쁘다`는 말을 `중요하다`로 해석한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중요 인사들은 `너무 바쁘다`며 잠깐 얼굴만 비추고 다른 자리로 사라진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놀지 않고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오늘의 이 자리에 올랐다”고 증언한다. 한국 사회에서 `바쁨`은 언제나 성실함의 표상이었고, 한국인은 늘 `빨리빨리` 서두르며 살아왔다. 몸은 설사 쉬더라도 머릿 속은 해야 될 일들로 끝이 없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전래동화도 `사람이 게을러지면 고생한다`는 교훈을 통해, 게으름은 죄악이고 근면을 개인과 사회의 미덕으로 칭송해 왔다.그러나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근로는 노예의 도덕”이라고 말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소수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여가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며,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 여가를 즐기라고 주장한다. 일을 강요받지 않아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고 삶이 행복과 환희로 충만해 진다는 것이다. 진정 행복해지려면 게으름이 필요하다고 러셀은 역설하였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한국 사회에 `게으름`의 철학이 요청된다. 쉼이 없는 노동은 생각이 자랄 시간을 저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아무 일이 없는 빈 시간이 있어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왔고,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힘들고 지루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고 한다.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 쉬며 놀며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빈둥거리는 시간이 요청된다. 24시간 긴장하며 돌아가는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제 우리 사회도 게으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2017-10-16

범국가 차원의 글쓰기 도우미 기관이 필요하다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인터넷의 발달은 글을 쓰는 필자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글쓰기로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다수의 사람들이 필자가 되는 만큼, 그에 비례해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주변을 살펴보면 수강료를 지불해야 하는 강좌부터 무료 강좌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강좌들이 범람하고 있다.글쓰기 교육에 대한 열의가 이렇게 높은데도 불구하고, 범국가 차원의 글쓰기 도우미 기구가 없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볼 필요가 있다.미국의 경우, 어릴 때부터 사고 및 글쓰기 교육을 하면서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대학 생활에서도 글쓰기 교육을 강조한다.글쓰기의 힘을 국가의 힘으로 등치시킬 만큼, 글쓰기 교육 강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쓰기가 단순한 글자·글씨 쓰기가 아니라 `생각쓰기`라는 점에서 논의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2004년 기준 MIT대학의 경우 글쓰기 프로그램 1년 예산이 약 200만 달러였음을 생각해 보면, 그 지원 정도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1999년 무렵 홈페이지를 갖춘 미국 내 글쓰기센터가 316개였고, 범국가적 차원의 글쓰기센터 연합기관인 NWCA(the National Writing Centers Association)가 설립·운영 중이었다고 한다. 글쓰기의 제반 문제를 도와주는 기관인 글쓰기센터는 주로 대학 내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 주관 부서는 영어과, 인문대학, 글쓰기센터 본부 등으로 다양하고, 영어학 전공 교수나 글쓰기센터 특별연구원 등이 운영 주체였다고 한다. 현재는 더 많은 글쓰기 센터들이 있고, 지금은 범국제적 차원의 IWCA(The International Writing Centers Association)도 운영하며 글쓰기 교육을 선도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글쓰기 상담 관련 기관은 2006년 서울대의 `글쓰기 교실`, 2007년 연세대의 `글쓰기교실`을 시작으로 전국 대학에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시작한 지도 20여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짧은 역사를 지닌 데 비해 글쓰기센터 설치 및 운영 기관의 수는 기하급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글쓰기센터의 수가 증가한 만큼 그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를 따져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대학 내의 글쓰기센터 뿐만 아니라 학교 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글쓰기 도우미 관련 기관들의 범람 현상을 꼼꼼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름이 비슷한 기관들의 범람 속에는 내용의 편차도 다양할 확률이 높다. 편차를 극복하는 길이 대중들의 글쓰기 수준을 높이는 한 방법일 수 있다고 한다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 글쓰기 도우미 관련 기관들의 연합체 결성이다. 연합체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차이를 서서히 지워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대학의 경우, 글쓰기 도우미 관련 기관들 간의 소통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포모나대의 경우 여러 대학의 글쓰기센터 홈페이지와 연동해서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트머스대의 `Institute for Writing and Rhetoric`, 하버드대의 `Writing Center`, 퍼듀대의 `Online Writing Lab`들과 연결해서 좋은 자료들을 공유하고 있다. 윌리엄스대도 Online Writing Lab(퍼듀대), Writer`s Handbook(위스콘신 메디슨대), Online Writing Resources(마이애미대) 등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연결하고 있다.퍼듀대의 OWL 프로그램은 윌리엄스대도 연결하고 있다. 퍼듀대 OWL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다수 게시되어 있다.우리도 이런 교류가 필요하고, 부분을 아우르는 범국가 차원의 글쓰기 도우미 기관이 필요하다.

2017-09-20

알 권리와 알려줄 의무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자다 일어나 에프킬라를 뿌린다. 향긋한 안개가 퍼지고, 나를 공격하던 모기들은 입이 무너지고 날개가 녹아내리고, 죽었다. 싸움이다.” 이상국은 `에프킬라를 뿌리며`라는 시(詩)에서 성가신 모기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무심결에 했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편리와 이익만을 취해 온 현대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향긋`하기에 인체에는 무해하다는 착각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뿌리지만 결국 화학물질의 남용이 인간도 고통스럽게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목격하는 요즘이다.`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비펜트린, 피프로닐, 플루페녹수론, 에톡사졸, 피리다벤 등 낯선 화학용어들이 거론되고 있다. 밀집한 케이지에서 공장식으로 키워지는 닭을 괴롭히는 진드기를 제거하고자 뿌린 살충제에서 1970년대 이후 사용이 금지된 DDT까지 회자되고 있다.특히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세계보건기구가 간장, 신장 등 장기 손상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던 물질이다. 이윤의 극대화가 낳은 무신경함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살충제를 살포하게 만든 것이다. `살충제`가 곧 `살생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화학물질의 여파는 살충제 계란만이 아니다.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문제 역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에서 검출된 벤젠, 폼알데하이드, 스틸렌 등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전수조사를 한다지만,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만 봐도 화학물질이 우리의 생명에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뒤늦게서야 드러났다. 레이첼 카슨(Rachel L. Carson)이 `침묵의 봄`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매년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에 적응해야 하는 일은 이제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보다 심각한 문제는 “살충제 계란, 인체에 큰 문제 없다”는 정부의 인식이다.`친환경 농장` 인증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 대처하는 자세도 미흡하여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살충제 제조업체들이 인체에 안전하다고 하면 농민들은 편리하게 이를 사용할 것이다.또한 화학물질이 가져올 해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전문가들뿐이다. 이들이 자본이나 권력과 결탁을 할 경우 진실이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인들은 화학물질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이에 알려 줄 의무와 알아야 하는 권리가 중요하다. 레이첼 카슨은 살충제 남용이 빚어낸 문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항의하면 “책임자들은 절반의 진실만이 담긴 보잘 것 없는 진정제를 처방하곤 한다”고 지적하였다. `달콤한 포장`으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감춘다는 것이다. 결국 알 권리를 위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노력이 중요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윤의 논리를 좇는 기업을 감시하고, 문제가 된 사안에 일시적인 처벌로 끝나지 않도록 시민들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무엇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 주는 중요한 책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식품의약품 안전에 대한 기준을 확실히 하고 유해성 제로를 실천할 수 있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생태주의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화학물질이 야기한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다면, “수백만의 인민들이 죽거나 천천히 썩었다”는 이상국의 시처럼 끝나지 않도록, 이제 진정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2017-09-13

`한국통사`를 다시 읽는 8월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광복 72주년을 맞아 다시 생각해 보는 한일관계, 어떻게 과거를 딛고 양국의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 최근 일본의 행보를 보면 우려할 점이 잠재해 있다. 2017년 일본 방위백서는 안보위기를 강조하고 꾸준히 군비를 증강시키고 있는 기조를 보여주었다.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아태지역의 불안정을 이유로 계속해서 방위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방예산도 증액하여 올해는 5조1천251억엔에 이르고 있다. 또한 지도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해와 영공으로 설정하고 한국과 미해결된 영토문제라고 하였다. 우리 정부가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항의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래 일본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구나 8월 3일 개각으로 등장한 고노 다로 신임 외상은 `고노 담화`를 발표했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2015년 한일간의 합의가 불가역적이라고 하였다. 고노 외상은 이 합의를 착실히 실행해 나가자고 하면서 “안보는 물론 경제와 다른 측면에서도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새 시대의 일한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하였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이 공동으로 대응하고 협력해 가기로 악수를 나누었지만 한일간의 거리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당장 보더라도 일본과의 관계에는 걸림돌이 존재한다. 박근혜 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 문제가 그것이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물론 많은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고, 국제사회도 피해자 구제와 진실 규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였다. 한국인은 위안부와 독도 문제에서 일본 태도에 진전이 있어야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편 일본인은 한국이 너무 과거에 얽매여 있다고 본다. 그야말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의 특징을 `국화`와 `칼`의 이중성으로 묘사하였다.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행동 동기가 기회주의적이라는 것이다. 평화시에는 국화의 모습으로, 그러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지 칼을 빼들 수 있는 나라임을 지적하였다. 일본 식민지 경험이 있는 우리는 국제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일본의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한국통사(韓國痛史)`는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기 위해 조선을 문명화시키고 구원해 준다는 말과는 달리, `속임수`를 써서 그들의 이익을 취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박은식 선생의 뼈아픈 지적처럼, 세력과 당쟁에 몰두하여 자강사업에 힘쓰지 않아 멸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속이고 기만하지 않도록 변화하는 열강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동시에 적어도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내적으로 통합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과제 가운데 한일관계를 상호호혜의 관점에서 풀어가는 일은 고난도의 숙제다. 힘의 논리가 지배적인 국제관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이 미래에도 바람직한지 고민이 시작되었다.“국제 조약은 전부 자기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므로 우리나라가 자주 자립의 실력 없이 외국의 감언이설을 믿고 안심하는 것은 스스로 패망을 재촉할 따름이다” “자신들의 권력만 알고 나라의 흥망은 무관심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이다” 상해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에서 조선이 국권을 잃게 된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고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제72주년 8·15 광복절을 맞이하며,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본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금과옥조는 무엇인가?

2017-08-23

인간으로 산다는 것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우리는 현재 IT강국에 사는 국민답게 실시간으로 온갖 뉴스들을 접하고 있다. 뉴스거리는 그 특성상 이전과는 다르고, 일상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무엇이어야 하기 때문에, 진한 감동과 놀라운 충격이라는 극한의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기사들을 보면, 진한 감동을 주는 선행보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충격적인 악행들이 훨씬 많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다. 아무리 충격적인 기사가 많다고 해도, 우리의 일상은 악함보다는 선함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충격적인 사건들의 잦은 보도는 우리를 매우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걱정과 함께, 선함과 악함의 문제를 별개로 두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도 한다. 메리 셸리 여사가 쓴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SF소설이다. 이 소설은 신이 되려고 한 인간과 인간이 되려고 한 인조인간의 대립, 과학기술의 실패가 초래하는 재앙을 경고하는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소설의 내용 중에서, 인조인간인 괴물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인간의 모습으로 탄생했지만,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텅 빈 상태인 그가 하는 노력들은, 인간들에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생명을 불어넣는 비밀을 알아낸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시체 조각을 모아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생명체에게서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괴물`이라고 칭하며 방치한다. 창조자로부터 버림받은 괴물은 자신을 그런 추한 모습으로 만들어낸 창조자를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하지만, 인간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인간 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이리 저리 떠돌면서 감각을 익히고, 어느 오두막에 사는 가족들로부터 존경심, 사랑스러움, 다정함, 감동 등의 감정을 느끼고, 언어 사용법을 연습하는 등 인간 사회에 동화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감동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실낙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읽고 느낌을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들을 비교하기도 한다. 더구나 그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목적지는 어디인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변화를 보이는 존재가 되기까지 한다. 그는 인간 성장의 과정을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그의 추한 모습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그를 혐오하고 해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괴물은 자신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인간사회로 진입할 수 없게 된다. 실패 이후 그는 잔인한 살인마의 삶을 살게 된다. 그의 비극적인 일대기는, 인간 아닌 종이 인간이 된다는 것,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정과 나름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도 좀처럼 인간으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애초부터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어떤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최근 들어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빼앗는, 자식이 부모의 생명을 빼앗는, 무작위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비극적인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극한을 넘어선 행위들이다. 인간이란 누구인가. 수많은 생물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생각할 줄 알고,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경건한 마음, 삶의 소중함, 삶의 가치들을 되씹고 음미하는 존재들일 때 비로소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 그저 방심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고도의 긴장감이 필요한 어떤 것이다.

2017-07-26

`밥 하는 동네 아줌마`라는 말의 불편함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20대 국회의 여성의원 수는 51명이다. 300명 전체의석 중 17.0%를 차지한다. 2대 국회에 처음으로 2명의 여성의원이 입성한 이래 20대 국회는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아직은 국제의원연맹 회원국의 여성의원 비율인 22.7%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여성에게 불리한 공천과 선거문화에도 불구하고 지역구에 26명의 여성의원이 선출되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오브리언은 “여성의 리더십 스타일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필요를 채워주는”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여성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통해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주길 기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한 여성의원은 이러한 믿음을 배반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4년간 위임된 권력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민의를 헤아리고 수렴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본무일 것이다. 국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국회의원직을 하고 있다면, 민주노총 집회에서 학교급식 조리사·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최저생계비 보장과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한 것에 대해 “미친 놈들”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적인 대화가 몰래 녹음돼 기사가 나간 것으로 강한 유감을 표한다. 경위가 어찌됐든 부적절한 표현으로 상처를 받은 분이 계신다면 죄송하다”는 그의 사과 역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설사 SBS 기자와의 사적인 통화였다고 해도, 당 대변인을 역임하고 원내 수석 부대표인 재선 국회의원에 걸맞지 않는 부박함을 보여주었다.만인이 평등하다는 시대지만 여성들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인 `덕분에`수혜를 받아 권력의 사다리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소외되고 배제된다. 학력과 자본과 권력이 만든 여성간의 위계화는`여성`이라는 공통의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갭을 만들고 있다. 서울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로펌과 대기업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국회로 입성한 그 여성의원은 학생들의 급식을 위해 밥을 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의 발언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떠올리게 한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개인으로서 성, 학력, 소득 등이 정치적 의식과 태도를 결정하고 무의식과 습관, 문화에까지 구별짓기를 내면화한다고 하였다. 일반 서민들과 자신은 다른 존재라는 사회적 정체성으로 구별을 짓고 특권계급이라는 의식이 그 발언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결국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는 말은 평소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밥`을 하는 노동을 아무나 하는 하찮은 일로 여기는 신흥귀족으로 그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무더위에도 저임금을 견디며 학교 급식 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는 서민들의 애환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 이유다. 또한 `동네`는 그가 몸담고 있는 여의도 국회의사당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세련된 의상을 입고 의례적인 미소를 나누는 곳이 아닌, 동네는 허름한 일상과 고단한 노동이 있는 삶의 공간이다. 가족을 위해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아줌마들의 거친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지는 못할망정 “밥이나 하는 동네 아줌마”로 폄하하는 그의 시선이 불편하다.말은 그 사람의 세계이다. 그가 사용하는 말이 곧 인격과 가치를 드러낸다. 우리는 화려하고 세련된 달변의 국회의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을 담고 있다면 설사 거친 말이라고 해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박노해 시인은 “그 어떤 위대한 일도 밥 한 그릇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제 국회의원이 되었음에, 자신이 대표하려는 국민이 누구인지, 나아가 여성의원으로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어떤 책무를 품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2017-07-19

안보와 통일의 딜레마, 인공지능이 답?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박사인공지능(AI)이 한국의 통일문제를 풀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공지능 알파고는 바둑세계에서 인간 능력을 뛰어넘었다. 6월에 다시 생각해 보는 분단과 통일 문제, 지난 7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인공지능이 풀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에 입력해줘야 하는 정보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부터 국내외 정치경제 환경, 사회문화적 특성, 최근의 남북한 정세까지 그야말로 방대하다. 4강의 내부 상황 및 역학관계 등과 관계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입력하고, 또 분단비용 대비 통일비용을 포괄적으로 계산에 포함하더라도 인공지능이 통일로 가는 해법을 찾는 것은 난제일 것이다. 더구나 남북한 통일문제는 합리적 분석에 바탕을 둔 예측이 가능하지 않고 언제든 돌발 변수가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위협,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중 간의 공방에서 한국은 안보와 통일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한반도 분단이 야기한 통일 문제는 정치세력간의 헤게모니 대결이자 사회 분열의 뇌관이다. 보수는 안보를 중시하고, 진보는 통일에 방점을 둔 상황에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충돌하고 부딪친다. 안보를 중시하면 남북한 현상황을 유지하는 입장이 되고, 통일에 대한 강조는 현상 변경을 전제하기에 기본적으로 갈등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 또한 불행히도 통일은 우리 내부 문제나 통일부만의 일이 아니다. 외교를 벗어나서 통일문제를 풀어가기는 어렵다. 현실적인 외교 전략의 틀 속에서 통일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열강 사이에서 이탈리아의 독립을 유지하고 국가통일을 위해 현실적인 입장을 제시하였다. 실제 세계에서 작동되고 있는 권력정치의 속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사분오열된 이탈리아 분열을 종식하고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는 통일을 위한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가 물으며, 메디치 가문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고 통일의 사명을 떠맡을 것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개인에게 적용되는 윤리 규범과 공적 영역에서 작동되는 군주의 덕을 구별하여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민주주의와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필요한 지적이다.사실상 남북한 통일 문제와 같은 중요한 과제는 인공지능에 맡길 일이 아니다. 통일은 올바른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접근해야 하고, 인문적 가치에 기반한 보다 나은 미래 사회를 기획하는 과정이기에 우리의 상상력에 기반해야 한다. 또한 통일 문제를 둘러싼 관련 행위자들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사회적 능력과 책임이 필요하기에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통일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하는 일은 불가피하기에 사회적 소통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동화로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능력 가운데 `복잡한 문제해결능력`과 `사회적 기술`을 강조한 바 있다. 현실세계에서 다양한 원인이 얽혀 있어 해법을 찾기 어려운 통일 문제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안보와 통일 딜레마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는 데서 풀어가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더 중요해진 사회적 능력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현실적인 방안을 접목해야 한다. 국내외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신중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판단력이 중요하다. 주변 4강과의 관계를 잘 활용하여 남북한 통일의 퍼즐을 지혜롭게 풀어가도록 해야 한다. `군주론`에서 언급한 여우의 꾀와 사자의 힘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통일외교 전략이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 남북 통일의 주역은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7-06-28

다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는 얼마나 다문화 가정 구성원을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필자는 다문화 가정 외국인 어머니 몇 분과 면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외국인 어머니들은 자녀가 재원중인 교육기관에 방문할 때 자신이 마치 죄인이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한 적 있다. 자녀의 부적응 문제의 책임이 마치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외국인 부모를 둔 아이는 가정과 다른 문화 때문에 교육기관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언어의 차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소통을 할 수 없는 아이는 선생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없어 선생님의 지시나 안내를 따를 수 없고 교실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니 교실 활동에 참여하기 어렵다.하지만 선생님 입장에서 소통이 불가한 상황은 다문화 가정의 부모나 학생의 문제를 진단하는 근거가 된다. 학생의 소통 어려움은 외국인 어머니가 한국말에 서툴러 한국말을 지도할 수 없음을 비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학생이 선생님의 지시나 안내를 따르지 못할 때 선생님은 학생의 행동을 사회성 문제나 아이큐 문제와 같은 비정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학생을 양육한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아버지나 어머니는 비정상의 원인 제공자로 여겨질 수 있다. 미국 공립초등학교의 사례를 보면, 다문화 가정 외국인 부모가 학교 선생님과 면담할 때 통역사를 지원받기도 한다.그동안 우리는 다른 문화, 언어, 생각,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하는지에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이 어떨지 가늠해보고 그 어려움을 공감하기 보다는 우리의 기준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비정상 혹은 결핍으로 간주해 왔을 수도 있다.다문화는 결핍의 근원이 아니라 역량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어린 시기부터 다양한 언어에 노출되면 훗날 새로운 언어를 접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문화의 차이나 언어의 차이를 경험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 역량이 개발될 수 있다.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배우려면 서로 다른 언어체계와 규칙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일반가정의 아이보다 다소 느리게 언어를 습득하기는 하여도 일단 언어체계와 문법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나면 서로 다른 규칙을 실제 대화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일반 아이의 경우보다 문제해결력이 더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른 시기의 다문화 경험은, 타인에 대한 편견이나 우월감 대신 다양한 문화에 대한 포용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지금까지 우리는 다문화 가정 아이의 더딘 언어 습득만 보고 아이를 평가하고 이를 외국인 어머니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언어적인 역량과 경험은 영어유치원과 같은 과열된 조기 교육과 비교할 수 없다. 조기교육에 내몰린 유아들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제2외국어의 조기 학습은 아이들이 학습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되는 원인이 되며 언어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이나 호기심을 표현할 수가 없어 스트레스를 얻는 원인이 된다.다문화 가정 외국인 어머니들과 면담을 하면서 필자는 피부색을 초월하여 자식에 대한 어머니 마음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모습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더라도 우리 모두는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는 것, 내가 차별받거나 손가락질 받는 것을 싫어하듯이 타인도 내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는 것, 내가 존중받고 싶듯이 타인도 존중받길 원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피부색, 언어, 문화의 차이에 주목하기 보다는 공통점에 주목하는 것이 다문화 사회의 근간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7-06-14

장관의 입 조심

옛날부터 우리의 선조는 남자에게 가르치기를 “말을 삼가라”했다.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은 남자가 말할 때 취할 수 있는 대표적 태도를 나타낸 말이다. 남자의 입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뜻이다. 남자는 언행으로 그 사람의 인품을 판단 받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자는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고 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공자의 이 말에서 나왔다.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 쓰는 말이다. `입에 발린 달콤한 말`이란 뜻의 감언이설(甘言利說)과 비슷한 말이다. 남자들이 경계해야 할 언어 태도다. 옛날에는 군자 노릇하기도 쉽지 않았다. 군자는 지켜야 할 언행 때문에 제약도 많았다. 관리를 등용하는 인물평가의 기준에 언변이 포함돼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한다. 군자는 용모가 단정하고 말솜씨도 좋아야 관리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에 꼭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말이란 인간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 말에서 출발하고, 신의도 말을 밑바탕으로 한다. 명심보감 언어 편에 말이다.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고, 한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천마디 말이 쓸데가 없다”고 했다. 말은 신중하고 진실돼야 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말에 대한 책임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한민구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포럼 회의에 참석했다가 기자들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사드 보고 누락사건과 관련한 질문에 미리 준비한듯 그는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 했던 것. 조선 때 학자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에 나오는 작자 미상의 시조 가운데 일부를 인용, 자신의 심정을 얘기 한 것 같아 보인다. 사드 보고 누락이란 민감한 사안을 두고 한 그의 이 말은 무슨 뜻일까. 해석이 구구하다. 벙어리 냉가슴을 표현한 것일까. 또 다른 구설수를 우려한 방어 전략일까. 아니면 둘 다 일까. 장관의 입 조심 모습이 우습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6-07

눈뜬 자들이 만드는 행복한 나라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선거 날 날씨 한 번 더럽네” 주제 사라마구가 쓴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선거일,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 선거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던 오후 4시에 갑자기 수천 명이나 되는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몰려가며 상황이 반전된다. 그러나 개표가 되자 유효표는 25%에 미치지 못하고 “전체 표의 70% 이상이 모두 백지였다”는 당혹스러운 선거결과로 다시 화창한 날에 실시된 재선거에서도 백지투표는 83%를 차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왜 시민들은 백지투표를 던졌을까? 지난 5월 9일은 미세먼지와 비로 전국적으로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렸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77.2%가 참여하여 15대 대선 이래 20년 만에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다. 사전투표율 26.1%로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 진행되고 두 달 만에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은 한국의 민주주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내우외환의 상황에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광화문 광장은 민주주의 역사의 증거가 되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비롯된 우리 사회의 적폐를 개혁하라는 촛불시민의 메시지가 선거 결과로 드러났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광장의 민심이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였다. 5월 대선은 시민과 더불어 시민 속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광장에서 끝까지 촛불을 들고 행동해 왔던 후보를 당선시켰다. 세월호 사태에 단식을 통해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을 표하고, 노란색 리본을 달고 방송토론에도 나오고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과 만났던 후보를 선출하였다. 상징적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유세 마무리를 할 만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며 광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던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다.민주주의 선거에서 한 표 한 표의 무게는 묵직하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가 표현되고 수렴되는 장이기 때문이다. 5월 선거는 원칙과 정의에 기반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낸 힘이 촛불 민심이었듯이, 5월 대선도 시민들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후보를 선택하였다. 이익과 권세가 사람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가 낳은 많은 문제를 일소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기초한 한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염원들이 반영된 것이다. 좀 더 준비된 후보가 신중한 개혁과정을 통해 변화와 통합의 시대를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한 것이다.새 대통령은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을 살리는 일에 우선하길 바란다. 소외된 국민을 살피고 한결같이 낮은 자세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길 기대한다. 맹자는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왕의 자세라고 하였다. “천하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고, 천하 사람들과 근심을 함께 하고서도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전국 칠웅이 겨루는 혼란한 시대였음에도 인과 의에 기반한 왕도정치를 통해 민심과 민생을 최우선에 둘 것을 강조하였다.국민을 아끼고 섬기는 대통령이 시대 정신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 광장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함께 하는 힘이 만들어내는 큰 변화다. 권력을 감시하고 불의에 항의하며 민주주의 역사를 써가는 주체가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하고 올바르게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뿌리 내리는 것이다.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뜬 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촛불시민이 열망하던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2017-05-17

양성평등 실천, 거버넌스에서 첫걸음...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그간 양성평등정책을 추진해 오면서 다양한 정책개선안을 제시했지만,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성 주류화 확산을 위하여 지역실정에 적합한 정책개선안을 도출하고, 이를 다양한 영역의 주체들인 지역 전문가, NGO, 의회, 정책담당자 등과 공유하여 좀 더 완성도 높은 양성평등정책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성 주류화에 대한 인식의 정도, 성 주류화의 필요성, 성 인지적 관점을 가진 행위자가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성 주류화 및 성 인지도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성 인지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낮은 인지도는 우선 용어 자체가 주는 이질감 내지 추상성 때문에 그 평가 역시 낮은 것으로 보인다. 여성정책담당부서 공무원의 경우만 성 주류화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 뿐 다른 부서 공무원의 경우에는 상당히 인지도가 낮았다. 이에 성 주류화 확산을 위해서는 정책실행 주체들의 성 주류화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한편, 성 주류화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담당부서 공무원이 해야 할 역할은 우선 성 인지 정책의 기획과 집행이 중요하다. 공공기관의 지원, 권한, 영향력은 여타 다른 주체들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성 주류화 추진을 위해서는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둘째, 정책집행에 필요한 협력과 감시, 비판자로서 정책실행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NGO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주류화 추진에 있어 NGO의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비판적 동반자로서 기능이다. 성 주류화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NGO의 역량강화를 위해서도 여성단체와 다른 민간단체와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문제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NGO들이 성 주류화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면, 양성평등 정책 실현에 있어서 이들을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적극 협력하는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지역내 NGO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요구되며, 여기에 전문가와 공무원과의 상호협력 필요성이 강조된다.셋째, 성 주류화 인식이 정책적 현실 속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것은 전문가의 선도적 역할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공무원이나 민간단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성 인지 교육 기능을 활성화하고, 지역차원에서 요구되는 정책정보와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지역공동체 수준에서 성 주류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별영향분석평가제도와 성인지 예산제도를 정책수단으로 하는 성 주류화 추진과정에서는 여기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집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의 여성정책기관들 간 공식적·비공식적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선도적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넷째, 성 주류화 실행의 핵심 주체인 의회의 기능이 중요하다. 지방의회는 성 주류화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지방의원 및 사무처의 전반적 활동이나 성 인지 교육이 실행될 수 있도록 의회내 성 주류화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 내에 성평등 교육을 활성화하여 성 주류화 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NGO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공무원, 전문가, 의회, 시민단체 간의 네트워크가 우선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이에 경상북도는 정책집행자와 NGO, 의회, 전문가들 간에 서로 연대하는 체계를 구축하여, 지역 양성평등정책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향후 성 주류화 거버넌스를 안정적으로 구축해 나아가는 전략적 접근과 함께 모니터링이 실현되어야 양성평등정책의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7-05-16

재취업, 지속적인 고용유지를 위해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여성 취업자가 1천만 명을 초과하고 있으며, 임금 근로자 중 상용직 비율이 높아지는 등 여성 고용이 양적,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추세에 있으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 및 지원하기 위해 중앙부처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가족부는 16개 시·도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중심으로 경력단절여성 취업연계 및 지원을 활성화 하고 있다.경북지역 역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중심으로 취업지원 뿐만 아니라 사후관리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직업교육훈련을 통해 경력단절여성에게 필요한 직무교육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업의 효과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취업지원 및 사후관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경북지역 경력단절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시기는 5~10년 미만이 28.6%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10~20년 미만이 23.5%, 3~5년 미만이 14.3%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통계청, 2015). 재취업 이후 고용유지율이 높은 편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첫째, 고용유지 관리를 위한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다양한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성과를 달성한 참여자의 경우 장기간의 고용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취업 이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고용유지 관리에 대해 불필요하고 귀찮은 통제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음에 따라 추적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이에 취업에 성공한 참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식적·비공식적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둘째, 경력단절여성이 재취업한 이후 초기 근무상황에서 개인과 가족, 직장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조기 해결이 고용유지 및 장기근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직장생활 적응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직장적응 프로그램 혹은 양성평등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개인 혹은 기업차원으로 제공하고, 근로환경적 측면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사후관리사업으로 추진하는 직장환경개선사업 연계 등을 검토함으로써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셋째, 직장생활에 대한 적응이 우수한 사례를 발굴(기업 및 개인의 추천으로 진행)하고 이에 대한 포상을 통해 경력단절여성의 사회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재취업자의 사후관리를 위한 전문적인 직업코디네이터 배치가 효율적인 지원 방안이 될 수 있으나 추가적으로 일자리 업무 담당자들에 대한 취업지원 관련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취업지원, 특히 여성에 대한 취업지원의 경우 전문적 영역의 지식이 필요한 상황이며, 사회·문화·경제분야의 이슈 변화가 매우 급격하게 발생함에 따라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교육 및 컨설팅이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업무 담당자들이 다양한 취업지원 프로그램 등에 참여해 그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경력단절여성의 취업연계 활성화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아울러 미국의 직업코치나 일본의 평생교육 코디네이터 등의 개념을 벤치마킹해 재취업자 사후관리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직업코디네이터를 배치하게 될 경우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사후관리가 이뤄질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2017-04-20

이젠 여성 대통령은 안돼!?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이제 여자를 대통령 시키면 안된다`는 여론이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100년 내로는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이었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인가? 한편 박 전 대통령 자신도 정규재 TV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또 여성이 아니면 그런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겠죠”라고 호소하였다. 과연 대통령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촛불 시민들이 더 문제시 했던 것인가?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 달라”는 유영하 변호사의 시각은 또 어떠한가? 박 전 대통령이 공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여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형국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여성 리더로서 소외된 여성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다. 여성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젠더문제에 책임 있는 역할을 보여준 기억이 거의 없다. 국회의원 시절에 대표 발의한 법안만 보더라도 `여성`과 관련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2013년 청와대 기자단 송년회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했던 표현처럼, 박 전대통령은 “차밍하고 디그니티 있고 엘레강스하다”는 `여성성`에 기반한 공주이자 여왕으로 군림하였다.박근혜가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이었던 요인은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신화와 향수에 기반한 이미지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슬로건인 “준비된 여성 대통령”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동원된 전략적 수사였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지적처럼 “많은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 그녀의 삶에 관계된 남자들 때문에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간다. 그 자체가 가부장제의 문제”였음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고, `여성` 대통령으로서 여성의 인권과 위상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또한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으로 어떤 긍정적인 리더십을 보여 주었는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한국정치는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고 정당 대표가 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정치 행위의 공과에 대한 평가를 여성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문제가 많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본질이 대통령 중심의 절대 권력구조와 비민주적 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대통령이었고 비선실세가 여성이었다는 것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걸림돌이다.대체로 여성 리더는 토큰(token)의 지위에 있다. 칸터는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것을 정책적으로 배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구색 맞추기 식의 토큰과 같다고 지적한다.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상징성 때문에 시선을 더 많이 받게 되고 행동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여성 리더가 성역할 고정관념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여성적이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언론은 여성 리더의 메시지나 콘텐츠보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등 외형에 먼저 주목하여 보도하기도 한다.성 평등한 정치는 민주주의 척도를 가늠하게 한다. 미국 45대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영국 총리인 테레사 메이, 독일의 수상 앙겔라 메르켈처럼 한국정치의 장에서 여성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것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여성이기에 더 주목받고 여성이기에 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곤란하다. 여성을 확대 혹은 축소해서 바라보는 성별에 따른 판단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같은 차별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정치인들이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여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말 문제인가?

201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