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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전무퇴

임전무퇴(臨戰無退)는 화랑정신의 근간을 이룬 세속오계의 계율 중 하나다. 세속오계란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金言)을 청하자 내려준 5가지의 계율을 말한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이 그것이다.나라에 대한 충성과 효도, 신의, 용맹, 자비 등이 함축된 이 계율은 훗날 인재양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랑도의 실천덕목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화랑도의 발전 뿐 아니라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기조정신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화랑도는 당시 혈족중심의 귀족사회 구조 속에서도 비교적 신분을 떠나 범사회적 조직체로서 활동했다.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공동체로서 훈련도 하고 심신수련과 학업도 익혔다.특히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전쟁터에 직접 뛰어드는 용맹함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의 결사대에 맞서 싸웠던 화랑 관창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목숨을 내던진 관창의 용맹스러움으로 신라는 700년 역사의 백제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화랑은 비록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 이상의 용맹함과 충성심으로 뭉쳐진 애국 집단이다. 전쟁에 나서면 목숨을 잃으면 잃었지 후퇴란 있을 수 없다.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일침한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도 임전무퇴의 곧은 정신이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고 한 그의 각오에서 군인 정신의 비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대한민국 국군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의 최후 보루이다. 누구보다도 투철한 사명감과 건전한 애국정신으로 무장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군을 대표하는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서해수호의 날을 두고 “불미스런 남북 간 충돌” 운운하다 야당의원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국방부 장관의 안보관이 이 정도일까 싶어 새삼 놀랍다. 임전무퇴의 정신이 갑자기 위대해 보이는 요즘 세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4

젊은 리더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1980년생이다. 올해 만 39살이다. 30대 젊은 대통령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보다도 3살이나 젊다.1990년 정계에 입문, 2017년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를 맡았고 그해 총리로 선출됐다. 1856년 이후 여성으로서는 뉴질랜드 최연소 총리가 된 인물이다. 총리 재임 중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출산 휴가를 한 최초의 여성 총리다.작년 4월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 좌파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진보인사 중 한 명이다.다만 이민문제에 대해선 보수 우파적 면모가 강하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우파인 국민당이 오히려 이민에 대해 긍정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젊은 여성인 아던 총리가 갑자기 세계인의 시선을 모았다. 테러사건으로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 게 아니다.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무슬림 총기테러보다 테러에 대응하는 그녀의 대응 리더십에 세계가 주목을 한 것이다.테러 행위에 대한 즉각적이면서 단호한 태도뿐 아니라 침착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그녀의 대응방식에 많은 이가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특히 히잡을 쓰고 충격과 공포에 빠진 무슬림 공동체를 찾아간 그녀가 무슬림을 안고 함께 아파했던 모습을 두고 세계 언론은 ‘훌륭한 지도자’ ‘진정한 영웅’이라는 표현을 썼다.테러에 대한 분노와 증오보다 공감 있는 언어 구사와 행동으로 무슬림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편에서 지지를 보낸 그녀의 용기 있는 리더십에 대한 칭찬이다. 최고의 공감 리더십이라 평가했다.한 나라의 총리로 국정 전반을 다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기 때 보여주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 나라 국민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그의 리더십이 국민의 정서와 부합할 때 국민이 느끼는 만족감도 크기 때문이다. 30대 젊은 여성 지도자를 총리로 뽑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그녀가 보인 리더십은 충분한 만족감이 아니었을까 싶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9-03-21

최정호식 증여

증여는 당사자의 일방이 재산을 무상으로 친족 또는 타인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하여 성립하는 낙성·무상·편무(諾成·無償·片務)의 계약을 말한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채무의 면제·인수 또는 제3자에 대한 변제를 받은 자는 그 면제·인수 또는 변제로 인한 이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며, 현저히 저렴한 가액의 대가로 재산을 취득한 경우에도 시가와 대가와의 차액에 상당한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증여세부과대상이 된다.국회에서 열리는 인사청문회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추천된 최정호 후보자가 이른바 ‘최정호식 증여’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집 2채를 갖고 있던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서울 잠실의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았다가 경기도 분당 아파트를 먼저 딸에게 증여했다. 최 후보자 부인이 소유한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는 분양가보다 10억 원 넘게 올라 현 시세는 15억 원 선. 경기 분당에도 아파트가 있는 최 후보자가 다주택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잠실 아파트를 팔면 다주택자라 한 채 때보다 훨씬 높은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최 후보자는 장관후보자 지명 직전 분당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해 1주택자가 됐다. 세무사를 통해 분석해 보니 양도소득세만 4억 원 상당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실제 최 후보자가 내야 할 비용은 증여세 1억5천만 원이다. 다주택자였던 최 후보자가 1주택자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세금 2억5천만 원 정도를 아낀 셈이다. 현 정부는 그동안 주택 공시가격을 인상해 보유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팔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정작 집을 팔려고 하면 다주택자는 양도소득세 중과세 부과 대상으로 고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결국 다주택자들 사이에서는 “세금폭탄 맞을 바에야 차라리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심리가 발동, 중·저가 아파트 증여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공시가격이 적용되는 다음달까지는 절세 목적 증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절세를 위해 매매 대신 자식에게 물려주는 ‘최정호식 증여’는 빈부의 양극화가 가져온, 웃지못할 풍경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0

복마전(伏魔殿)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를 두고 복마전이라 부른다. 보통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나 비리의 온상지를 이렇게 비유해 말한다.복마전은 수호지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북송시대 인종 때 일어난 일이다. 나라에 전염병이 돌자 왕의 심부름으로 산중에서 수도 중인 도사의 기도를 부탁하러 갔던 신하가 도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복마지전의 문을 열게 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부하는 그 안에 있던 비석(碑石)을 들추게 된다. 그러자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마왕 108명이 뛰쳐나왔다. 뒷날 이들은 나라에 큰 소동을 일으키며 백성들을 불행하게 하는 후환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동양에 복마전이 있다면 서양에는 판도라 상자가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진흙으로 빚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 인물이다. 판도라는 어느 날 온갖 불행과 질병, 고통이 담긴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된다. 판도라가 호기심으로 연 상자에서 세상의 불행이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인류의 모든 재앙은 이 상자를 열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클럽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유명 연예인의 일탈행위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마치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은 정말로 요지경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부정과 비리, 음모와 결탁, 불의가 난무하는 현실 등 온갖 추잡한 세상 일들을 모두 이곳에 한꺼번에 모아 둔 것 같다. 복마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사태의 확산을 두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부르는데, 맞지 않는 표현이다. 좋은 일이 거듭될 때 점입가경이지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점입추경(漸入醜境)이라는 말이 옳다.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며 갈수록 추악해진다는 뜻이다. 마치 막장세상 같다. 그들에겐 얼마나 호사스러운 세상인지 모르나 그들의 놀아나는 모습을 보면 막장 인생이 따로 없다. 버닝썬 사태를 단순히 유명 연예인의 일탈로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혼탁하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사고 정말로 경계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19

패스트트랙

패스스트랙은 국내 정치에서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로, ‘안건 신속처리제도’라고도 불린다. 국회법 제85조의 2에 규정된 내용으로, 발의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다. 경제 분야에서는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리키며, 기업이 은행에 패스트트랙을 신청하면 은행은 기업의 재무 및 경영 상태를 심사해 A∼D 등급을 판정하게 된다. 국제 분야에서는 미국 행정부가 국제통상 협상을 신속하게 체결할 수 있도록 의회로부터 부여받는 일종의 협상특권을 지칭한다. 무역촉진권한(TPA·Trade Promotion Authority)으로도 불린다. 의회가 대통령에게 신속협상권(Fast Track) 권한을 부여한 경우, 의회는 행정부의 협상 결과를 일정기한(90일) 내에 수정 없이 찬반결정만을 하게 된다.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분야 패스트 트랙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 단일안을 도출하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고 있어 국회가 시끄럽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최근 ‘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 고정·연동률 50% 적용’을 핵심으로 한 선거제 개혁 합의안을 정당별 추인을 거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 개혁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릴 작정이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강력히 반발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선거제에는 합의했지만 총선을 앞둔 시기에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실제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될 지는 불확실하다.당리당략으로 싸우느라 꼭 처리돼야 할 민생법안의 통과가 하염없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민감한 시기에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거제를 바꾸는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그리 현명치 않아 보인다. 국회판 레드테이프를 막기 위한 패스트트랙이 다수결의 독재에 쓰였다는 비판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8

낮잠

매년 3월 둘째 주 금요일은 세계수면의 날이다. 세계수면학회가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2008년 처음 지정한 이후 매년 나라별로 학술행사 등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사람의 수면은 보통 7시간 30분∼8시간 정도가 적정 수면시간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바쁜 생활패턴으로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42%)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7시간(24%), 5시간(21%)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5%는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고 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체내 호르몬 분비가 잘 안 되고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학적 근거도 속속 입증되고 있다.그러면 낮잠은 어떻게 볼까.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수단이 될까. 갈수록 낮잠에 대한 긍정 평가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서울과 도쿄 등에는 낮잠카페가 등장, 업무과로에 지친 직장인의 휴식처로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이솝 우화에서 등장하는 토끼는 낮잠을 자다 그만 거북이에게 달리기 경주에서 지고 만다. 잠꾸러기 토끼는 게으른 사람, 거북이는 성실한 사람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낮잠이 게으름의 상징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적당한 낮잠은 오히려 일의 활력소 내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많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풍습인 시에스타는 이런 측면에서 낮잠이 생활의 활기를 주는 수단임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시에스타는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잠시 낮잠을 잔 뒤 저녁 늦게까지 일하며 일의 능률을 찾는 그들의 생활 습관이다.우리나라도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 오수(午睡) 혹은 오침(午寢)라는 이름으로 한낮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던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다. 최근 그리스 한 병원 연구팀이 낮잠이 혈압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낮잠은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37%나 낮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낮잠의 유용성이 확인된 결과다. 지나치지 않다면 낮잠을 청해 보는 습관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17

이집트 룩소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이집트왕조가 수립된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시작된 문명이다.피라미드 문화가 있는 우리에겐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문화권이다. 전제군주인 파라오가 통치한 나라다. 정치, 경제, 종교에 걸쳐 파라오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막강한 권력의 상징물로는 언제나 피라미드가 대변한다. 왕과 왕족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그 크기나 건축 과정이 지금의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한다. 높이 140m, 2.5t 무게의 돌만 230만 개가 동원됐다. 상상이 되지 않는 자체만 해도 신비와 권위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이집트 룩소르시는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도시다. 나일 강을 따라 동쪽은 웅장한 신전과 궁전이 자리를 잡고, 서쪽은 왕들을 위한 공간으로 왕가의 무덤이 있다. 1천600년 동안 이집트왕국의 중심지로 번창한 도시이자 문화유적의 보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경주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이나 찬란한 고대 역사도시라는 측면에서는 두 도시는 많이 닮았다. 룩소르시 어느 곳을 가든 파라오가 지은 웅장한 신전과 유적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문화유적을 접할 수 있는 점도 경주와 흡사하다. 1922년 11월 세상에 공개되면서 고고학의 위대한 발굴로 일컬어졌던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이곳 왕가의 계곡에 있다. 투탕카멘 왕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왕이다. 1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죽음에 관한 역사는 잘 모른다고 한다.그러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탕카멘 왕의 묘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황금 마스크와 투탕카멘의 왕좌, 황금 미라, 황금으로 그려진 벽화에 이르기까지 무덤 안이 온통 황금으로 장식돼 있다.경주시장 일행의 이집트 룩소르시 방문이 눈길을 끈다. 역사를 공통점으로 하는 룩소르시와의 교류는 두 도시의 역사 의미를 더하는 재미가 있다. 역사란 언제나 우리에게 호기심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3-14

주목받는 할랄산업

할랄(Halal)의 사전적 의미는 ‘허용된 것’으로, 이슬람교도가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총칭해 할랄이라 한다. 과일·야채·곡류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어류·어패류 등의 모든 해산물이 이에 해당한다. 육류 중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처리·가공된 염소고기·닭고기·쇠고기 등이 해당한다. 할랄의 반대는 하람(haram)이다. 술과 마약류처럼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이나 돼지, 개, 고양이 등의 동물 고기, 자연사했거나 잔인하게 도살된 짐승의 고기 등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이 이에 해당한다. 할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하람 성분이 들어간 식품은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육류는 할랄 인증을 받은 도축장에서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주문을 외운 뒤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동물의 앞쪽에서 도살하는 이슬람 방식에 의해 도축된 것만 수출할 수 있다. 화장품은 콜라겐 등 동물성 성분과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아야 하며, 의류 패션 분야는 생물체 문양을 이미지화해서는 안 된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무슬림의 특성 때문이다.할랄 산업은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18억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식품 위주였던 할랄 시장은 의약품과 화장품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여성을 겨냥한 미용 산업과 무슬림들을 겨냥한 관광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터키, 중국, 말레이시아 등은 오일머니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을 겨냥해 할랄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마련하고 있다.기업들도 할랄 시장 편입을 위해 발빠르게 할랄 인증을 받고 있다. 네슬레는 2010년 말 전 세계 85개 공장과 154개 제품이 할랄 인증을 받았으며, 버거킹, KFC, 까르푸, PG 등도 할랄 제품 개발에 나섰다. 할랄 제품 수출을 주도하는 국가는 태국, 브라질, 호주, 말레이시아 등이다. 이 가운데 말레이시아는 할랄 제품 수출만으로 2012년 11억 5천700만 달러(약 1조 3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의 의미가 할랄산업과 관련된 것이란 걸 미뤄 짐작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3

“脫 한국”

일반적으로 엑소더스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특정 장소에서 떠나가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말로 굳이 표현한다면 대탈출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 청년들의 일본 기업 취업 움직임이 전례 없이 러시를 이룬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 청년의 일본 유학 및 취업 신청자가 사상 처음으로 2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일단 희망을 찾기 위한 젊은이의 선택이라 보지만 고국을 떠나는 청년의 입장에서는 비장한 각오가 선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한번 발을 들여 놓은 직장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쉽지 않다는 관점에서 쳐다보면 한국 청년의 일본 기업 취업은 고국을 떠나는 엑스더스처럼 보인다. 부모의 입장도 딱하다. 취직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할 말은 못하겠지만 한국을 떠나 혼자 지내야 하는 자식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가 않은 게 사실이다.한국 경제의 심각한 취업난이 낳은 또 하나의 어두운 단면이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의 청년 인재를 데려다 가는 일본의 입장과 청년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 한국 내 취업 사정이 호전되지 않는 한 당분간 이런 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지난해 한국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투자가 전년보다 92.8%나 늘었다고 한다. 금액으로 보면 163억 달러(약 18조 규모)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투자액과 증가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투자 증가는 국내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 반기업적 정서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같은 기간 한국 내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1.6%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제조업의 ‘탈 한국’ 현상이 아닐까 싶다.최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면서 포털 사이트 이민 카페에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둔 젊은이가 이민 문제로 상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경제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탈한국적 분위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쩐지 불편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3-12

산성비협약

미세먼지 유발을 둘러싼 한중 갈등 해법으로 1970년대 영국, 서독,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럽 대륙의 산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었던 국제협약인 이른바 ‘산성비협약’이 주목받고 있다. 산성비협약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주관해 1979년 체결한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을 가리킨다. 관련 국가들은 4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매년 대기오염 물질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감축방법 및 비용 분담을 논의하고 있다. 처음 협약의 출발은 1950년대 북유럽 국가 호수들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숲이 사라지는 재앙에서 비롯됐다. 유럽이 이 협약을 추진할 때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탓이냐를 따지기보다 큰 틀에서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니 가능해졌다. 실제로 1967년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테 오덴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아황산가스가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197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과 서독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이 스칸디나비아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두 나라는 지금의 중국처럼 연구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이에 스웨덴이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산성비를 국제 이슈로 제기하는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 후 과학적 검증과 국제여론의 도움에 힘입어 영국과 서독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 OECD 주도하에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가 축적되면서 UNECE 차원의 협력 방안이 논의됐고, 1979년 UNECE 회원국 34개 중 31개국이 CLRTAP에 서명했다. 협약 이후 유럽대륙은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산성비의 원인인 이산화황 배출량은 오염이 가장 심했던 체코, 독일, 폴란드에서 모두 감소했다. 특히 독일 인근 지역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1989년 142만t에서 1996년 59만t으로 크게 줄었다. 국가간 협상을 하려면 서로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법인 데, 우리 미세먼지 대책은 너무 일방통행식은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1

그레이트 스모그

영국은 1년 중 절반이 비가 올 정도로 날씨 변덕이 심한 곳이다. 특히 영국의 짙은 안개는 런던포그라는 애칭이 따를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때로는 낭만적인 영국의 모습으로 ‘런던 포그’가 소개되지만 영국 안개의 이면에는 우울한 이야기도 많다.대표적인 것이 1952년 일어난 런던 스모그 사건이다. 그해 12월 4일 런던에는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날이 이어졌다. 습도도 80%가 넘었다. 당시 영국의 가정과 공장은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 석탄을 대량 소모하면서 발생한 연기는 정제되지 않은 채 런던의 대기 권으로 마구잡이 쏟아져 나왔다. 연기는 짙은 안개와 합쳐져 스모그를 형성했고, 연기 속의 아황산가스는 황산안개로 변하여 런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된다.스모그 발생 3주 만에 4천여 명의 시민이 폐질환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같은 증상의 환자가 발생해 8천 명이 넘는 사람이 추가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끔직 했던 이 사건을 두고 ‘그레이트 스모그’라 부르고 있다.런던은 오래 전부터 스모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도시다. 13세기 무렵에는 석탄을 연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매연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매연 저감을 위한 위생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873년부터 스모그의 영향으로 사망자가 증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쨌거나 영국의 ‘그레이트 스모그 사건’은 전 세계가 스모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다. 2천927기의 석탄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그 규모는 미국의 4배에 달한다. 중국이 또다시 464개의 석탄발전소를 증설하겠다고 한다.미세먼지 문제로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 중국의 석탄발전소 증설 소식은 또한번 한국 사람의 가슴을 짓누른다. 중국이 증설 예정인 석탄발전소의 상당수가 한국 서해안에 면한 중국 동부여서 한국이 아무리 미세먼지를 줄여 봐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날 묘책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19-03-10

억만장자

조선시대 영남지방에 내로라하는 부자 집안을 손꼽으면 경주 최씨 집안과 청송 심씨 집안을 들 수 있다. 모두 만석꾼으로 통하던 집안이다. 만석꾼이라 하면 곡식을 만섬 가량 거둘 논밭을 가진 부자라는 뜻이다.경주 최씨 집안은 300년간 12대를 이어간 부자로 알려져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최씨 집안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부자의 윤리를 실천한 집안이다.청송 심씨 집안은 부와 권세가 얼마나 컸던지 조선시대에 정승 13명과 왕비 3명, 부마 4명을 배출했다. 조선 8도 어딜 가도 심부자네 집 땅이 없는 데가 없었다 하여 조선판 ‘해가 지지 않는 집안’이라고 했다.그들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던 99칸의 송소고택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우리의 속담에 “물질 가는데 마음도 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이 풍족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게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투쟁은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지금도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불철주야 돈 벌기에 골몰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돈 버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대학에서는 부자학 개론이 인기를 모으기도 한다.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9년 세계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했다.미국의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작년에 이어 1위(1천31억 달러)를 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965억 달러)이 2위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69억 달러)이 65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81억 달러)이 181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15위 등으로 랭크됐다.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10억 달러(약 1조1천295억 원)이상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를 선정,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포보스 기준 억만장자는 올해 2천153명이다.한국도 40명이 포함돼 있다. 1조원이 넘는 억만장자 그들은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7

생체인식기술

생체인식 기술(biometrics)은 개별적인 생체의 특성을 인식해서 보안시스템에 활용하는 기술을 말하며, 망막, 지문, 음성, 얼굴 등 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거나 범죄자를 가려내는 생체측정(인식)기술을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우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특히 금융서비스, 네트워크 보안,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많은 회사들이 이미 이 기술을 채택하고 있는 곳이 많다.생체인식시스템에는 지문인식, 홍채인식, 안면인식, 음성인식, 전자서명, 손등의 정맥인식 등의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중 홍채인식은 인간의 홍채가 사람마다 다른 점을 이용하는 보안시스템으로, 공항 등에서의 범죄자 검거를 홍채데이터베이스와 매치해 활용하는 시스템과 사무실출입관리 등에 이용되는 보안용 홍채인식 시스템으로 나뉜다. 홍채인식은 지문인식에 비해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렵고 개발비용이 높을 뿐 아니라 사용자가 불편해한다는 단점으로 인해 아직 대중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생체인식기술은 지문인식기술이다. 각 개인마다 특징적으로 갖고 있는 지문을 통해 사용자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지문인식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먼저 자신의 지문을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된 지문은 등록한 사람의 이름 혹은 다른 개인정보와 함께 저장된다. 이후 사용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면 전에 등록되어 있던 사용자의 지문과 비교를 함으로써 시스템이 인지해 그 사람을 인식한다. 지문인식기술이 적용된 기기는 가격이 저렴하며, 인식하는 속도가 빨라 많이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본인 확인을 위해 널리 쓰인다. 생체인식 기술이 가장 각광받는 곳은 바로 스마트폰 시장이다. 소유자 본인만이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다양한 생체인식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0일 공개한 갤럭시S10 제품군에 초음파(Ultrasonic) 기반 지문인식을 도입했다. 갤럭시노트7에서 홍채인식을 스마트폰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나 갤럭시S10에서는 지문인식으로 다시 돌아왔다. 생체인식 기술이 스마트폰과 IT에 도입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06

‘플라스틱 코리아’

중국의 플라스틱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는 중국이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내 수입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을 통해 플라스틱 공해를 고발한 영화다. 이 영화로 중국은 플라스틱 수입을 막았고 한국도 작년 재활용 플라스틱 처리문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버린 쓰레기가 재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거리낌 없이 소비한 우리 국민도 이 사건 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심각한 공해인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알려지는 계기가 된 영화라 할 수 있다.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이다. 유럽 플라스틱제조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이다. 조사대상 63개국 중 3위다. 벨기에가 1위(170㎏)며 대만이 2위(141㎏)다.플라스틱 제품은 내구성과 신축성이 좋은 데다 가볍다. 효용성이 높다는 이유로 여전히 우리 생활에는 땔 수없는 제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우리나라도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 푸드점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용량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플라스틱은 화학구조 자체가 잘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소각할 때 발생하는 환경 호르몬과 유해물질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지구상에서 한해 동안 생산되는 플라스틱이 3억t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상당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로 버려져 바다생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한다. 바다 속에 들어간 플라스틱이 분해돼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일본의 한 해안가에서 발견된 젖먹이 새끼 대왕고래의 위에서 다량의 플라스틱이 나왔던 것이 하나의 사례다. 플라스틱을 삼킨 바다고기를 사람이 다시 잡아먹는 먹이사슬의 구조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에 무더기로 방치된 플라스틱 쓰레기 산이 미국 CNN 방송에 소개됐다. ‘플라스틱 코리아’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난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5

북튜브

북튜브(Booktube)는 책과 유튜브의 합성어로, 책과 관련된 리뷰 등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의미한다. 북튜버는 이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을 칭한다.게임, 먹방, 쿡방, 뷰티 콘텐츠가 대세인 유튜브에 북튜브 채널이 등장한 것은 불과 2~3년 전이다. 우리 사회가 책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그리 큰 비밀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책을 다루는 북튜브가 유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새 트렌드다. 최근에는 북튜브 전성시대라 할 만큼 20여개 채널이 생겼다.우선 초보 독서인에게는 북튜브 ‘겨울서점’을 추천한다. 북튜버인 김겨울이 공들여 ‘엑기스’만 추린 콘텐츠, 부드러운 저음의 여성 목소리, 깔끔한 말솜씨로 책을 좋아하게끔 만든다.‘공백의 책단장’은 지난해 10월 문을 연 북튜브로, 하나의 주제를 프로젝트처럼 다뤄 깊이 있는 독서를 돕는다. 고전을 다루는 ‘사월이네 북리뷰’와 조선시대 선비처럼 갓을 쓰고 자기계발서와 공상과학(SF) 소설을 소개하는 ‘책선비’도 잘난 척하지 않아 초보 독서인에게 적합하다. 경제·경영서를 다루는 ‘책읽찌라’나 톨스토이와 같은 고전문학을 다루는 ‘문학줍줍’은 완독이 버거운 수험생이나 문학 소양이 아쉬운 직장인에게 인기다.지친 직장인들을 위해 가만히 책을 읽어주는 낭독 채널형 북튜브도 인기다. ‘책 읽기 좋은 날’은 세계 문학, 한국 문학, 에세이, 신간을 두루 읽어준다.‘루나 펄스(lunar pulse)’는 톨스토이, 안중근 의사 자서전 같은 무게감 있는 책을 여러 편으로 나눠 끝까지 읽어준다. ‘쏭아지네’는 심리 분야 도서만 리뷰한다.영어와 지식을 동시에 공부하는 해외 북튜브도 있다. 영어 초보자에게는 곰 인형을 안은 할머니가 그림책을 또박또박 읽어주는 ‘스토리타임위드미즈베키(StoryTimeWithMsBecky)’가 좋다.‘폴란드바나나스북스(polandbananasBOOKS)’는 코믹 북튜브로, 요가를 하면서 책꾸러미를 자랑한다.‘어북유토피아(abookutopia)’는 만화책을 비롯해 다양한 책을 소개한다북튜브는 스마트폰 시대를 주름잡는 유튜브가 시대의 변화를 자극하고 있는 증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04

다크 투어리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우리 정부에 귀속된 일본인 주택을 적산(敵産)가옥이라 부른다. 포항의 구룡포 일본가옥거리에 남아 있는 일본식 주택이 우리지역에 있는 대표적 적산가옥이다.적산가옥은 전국적으로 보면 과거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항구지역에 집중 분포돼 있었다. 포항 구룡포는 1883년 ‘조일통상장정’체결 이후부터 일본인이 건너와 거주해 왔던 곳이다. 10년 전만 해도 100채 가량의 일본식 집들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반쯤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전라도 목포와 여수, 군산 등 항구도시들도 적산가옥이 아직 많은 곳이다.큰 도시 중에는 대구도 비교적 많은 적산가옥이 분포돼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일제시대 대구역이 처음으로 들어서면서 역세권이 형성된 북성로 일대는 일본 식민기업의 진출로 당시 일본식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최근 개장한 북성로 공구박물관은 1936년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당시에는 미곡창고로 사용됐던 곳이라 한다.대구 삼덕동 일대도 행정기관의 사택이나 일본인의 집들이 많이 있었다. 도시발전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1939년 지어진 대구덕산공립 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사용됐던 건물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이후 삼덕초등학교 관사로 사용되다 지금은 삼덕마루란 이름으로 어린이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적산이란 이름보다 수탈당한 재산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재해석돼야 한다는 주장이 요즘 들어 새삼 설득을 얻고 있다. 때마침 3·1만세 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다시 조명을 받는다는 소식이다. 아픈 과거 역사에 대한 교훈적 의미를 찾는 우리민족의 당연한 자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다크 투어리즘을 ‘역사교훈 여행’으로 풀어 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약 400만 명을 학살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견학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일제 강점기라는 비극적 역사를 가진 우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가까운 우리지역 역사교훈 현장을 찾아나서는 것은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3

전세금 지키기 완결판

이사철, 전세보증금을 떼일까 걱정하는 세입자가 많다. 전세보증금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전셋집을 구할 때 세입자는 거래할 집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구 등기부등본)를 직접 떼어 계약 상대방이 전셋집의 진정한 소유자인지, 계약할 경우 자신의 배당 순위는 몇 번째인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보통 근저당설정액에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50~70% 아래여야 거래할 만한 집이다. 물론 대출이 하나도 없는 집이 가장 좋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여부도 확인하는 게 좋다. 체납국세는 전세보증금보다 배당 순위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국세청의 ‘미납국세열람제도’를 이용한다. 마침내 계약을 맺었다면 잔금을 치르기 직전에 다시 한번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떼어 확인한다.계약후에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로서 권리를 완전히 누리려면 점유, 전입신고, 확정일자 받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사 즉시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해야 ‘대항력’을 얻는다. 대항력이란 집주인뿐만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집주인에게도 자신이 임차인임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이다. 여기에 더해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까지 받으면 ‘우선변제권’을 갖게 된다. 확정일자 이후에 설정된 근저당권자 등보다 배당순위가 우선한다.이런 조치를 해도 같은 날 몇 시간 뒤 집주인이 새로 근저당권설정을 한다면 세입자의 배당 순위는 해당 근저당권자보다 밀리게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로서 법적 효력은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날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서에 ‘세입자가 주택 인도·전입신고·확정일자 받기를 마친 다음 날까지 임대인은 근저당권설정 등의 행위를 하지 않으며 위반 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을 넣어두는 게 좋다. 더 나아가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하면 보증금 지키기가 쉽다. 이 경우 계약기간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소송 절차 없이 집을 경매에 부칠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서울보증보험(SGI)에 보증금반환보증보험을 들면 된다. 없는 집의 전재산, 전세보증금 지키기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27

열차 외교

북한의 열차외교의 원조는 김일성이다. 1949년 10월 북중 수교 이후 김일성 주석은 1994년 사망할 때까지 특별열차를 이용해 중국을 40차례 방문했다. 러시아도 여러 차례 열차로 방문해 그의 열차 방문은 외교적 이미지로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의 중국 방문에 대해 당시 중국의 마오쩌둥은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원하면 조선창 등 군사 및 경제시설을 둘러보도록 신경을 썼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 길이 지금 같지 않아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여러 면에서 편했을 수도 있었던 때다.아버지의 뒤를 이어 김정일 위원장도 중국 방문에는 꼭 열차를 탔다. 그의 열차 방문은 모두 7차례였다. 김 위원장의 첫 번째 방문은 2000년 5월이다. 집권 후 첫 방문인 만큼 장쩌민 지도부와의 상견례가 방문 목적이었다. 2011년 그의 마지막 방문에서는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지원 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2011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때도 열차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북한 지도자와 열차의 끈질긴 인연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어쨌거나 김일성 부자의 열차 외교는 군사, 정치, 경제 등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열차 방문이 또한번 집중 조명됐다. 비행기로 5시간이면 갈 거리를 60시간이나 걸리는 열차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구구한 해석이 쏟아졌다. 경호 등 안전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60시간을 열차로 가는 것이 결코 비행기보다 안전할 수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이유야 어쨌든 김 위원장의 열차 외교는 출발부터 시끌벅적했다.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의도된 선택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열차 외교를 답습함으로써 얻는 대외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4천500㎞의 중국종단이 주는 중국과의 유대감 과시 좋은 효과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그의 중국종단 열차 대장정에 대한 세계적 시선이 이제 두 정상의 회담성과로 쏠리고 있다. 열차 외교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화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2019-02-26

NCR 규제 논란

NCR은 영업용순자본비율(Net Capital Ratio)의 준말이다. 증권사의 재무 건전성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는 지표로,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과 비슷한 개념이다.영업용 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값을 백분율(%)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영업용 순자본은 전체 자본에서 유동성이 낮은 자산(부동산 등)은 빼고 신속하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합계액을 말하고, 총위험액은 기업 내부 요인에 의한 가격변동 등 기초위험액과 정치·경제·사회적 요인에 의한 시장위험액을 더한 금액을 말한다.총위험이 증권사의 유동성에 비해 적합한 지를 판단하는 지표로, NCR이 높을수록 재무상태가 좋다는 의미다. 현재 금융감독당국이 권고하고 있는 NCR 비율은 500%다.이 제도는 1997년 도입됐으며 자본시장법에 따라 150% 미만으로 내려갈 경우 부실증권사로 보고 적기시정조치를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150% 미만에는 경영개선 권고, 120% 미만에는 경영개선 요구, 100% 미만에는 경영개선 명령을 내린다.다만 최근 금융투자업계가 NCR 규제를 개선해 달라며 더불어민주당과 금융감독 당국에 공식적으로 건의해 논란이다.업계에서는 NCR 부담으로 중소·벤처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시중 유동자금의 모험자본 유입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가 최우선인 만큼 건전성 규제장치인 NCR 규제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증권사의 NCR 평균은 553%로 금융당국이 정해놓은 500%를 웃돈다. 다만 대형증권사를 제외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위 10위 이내 대형 증권사의 평균 NCR은 1060%이고, 이들을 제외한 증권사의 평균 NCR은 400%를 겨우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금융당국이 증권사 시정조치 기준과 각종 인허가 기준비율로 NCR 지표를 활용하는 것이나 금융업계가 NCR 규제완화를 호소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서로 다른 주장을 보는 듯한 데자뷰 현상을 불러온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25

상복(喪服) 입은 상주시

용인시가 SK하이닉스 유치로 환영 분위기로 들떠 있을 무렵 경북 상주시 공무원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여직원은 검은색 계통의 복장으로 근무하는 모습이 언론에 비쳐졌다. 상주시 공무원이 마치 초상집을 연상케 하는 상복차림으로 근무해야 했던 사정은 다름 아닌 줄어든 인구에 있었다.한때 26만 명을 웃돌았던 상주시 인구가 이달 초 10만 명 선이 무너졌다. 농촌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막상 10만 명 선이 붕괴되자 상주시가 받은 충격은 꽤나 컸다.그동안 학자금 지원 등 인구 늘리기에 온갖 행정력을 쏟아 부었지만 인구 증가는 불가항력이었다. 설마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남에 따라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시소멸의 위기감도 실감 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넥타이 차림으로 각오를 다져보지만 농촌 현실이 얼마나 뒤따라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상주시는 경주와 더불어 웅도 경상도를 대표하는 고을이다. 조선시대 200여 년 동안 경상감영이 자리한 곳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했고 과거부터 수륙교통의 요충지였다. 학문과 문화를 숭상하는 선비의 고장이자 충열의 고장이다. 경상도라는 이름도 경주의 ‘경’자와 상주의 ‘상’자에서 따왔다고 할 정도로 위세당당한 지역이다.경북도내에는 상주시와 같이 딱한 사정에 놓인 도시는 수두룩하다. 영천과 영주도 인구 10만 명 선에 오락가락 한다. 인구문제에 관한 뾰족한 대책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게 지방도시다.SK하이닉스 유치로 신이 난 경기도 용인시는 1970년대 초반 만 해도 인구 10만이 안 되는 작은 도농혼합 도시였다. 1995년 시로 승격되고 22년 만에 인구 100만 도시로 성장했다. 수도권 집중화 정책의 수혜 도시다.경기도에는 인구 100만이 넘는 밀리언 시티가 수원, 고양, 용인 등 3군데나 있다. 성남과 부천시도 곧 합류하겠다고 한다. 경북과는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는 인구의 절반과 경제의 80%가 몰렸다고 한다. 상주시 공무원이 상복 차림으로 근무한 이유를 알 만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