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근 아동문학가
요즘은 노래의 경향이나 풍토도 바뀌고 있나 보다. 그런데 수없이 많은 노래중에 어찌하여 자장가는 한 가지도 불리지 않는 것일까? 요즘 어린 아이들은 자장가가 앖아도 잠은 잘 자기 때문일까?
옛날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곧잘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안겨 받들곤 했다.
저녁이면 집집이 마장에 멍석을 깔고 그 곁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어슴푸레한 관솔불 둘레에서 밀국수로 저녁 끼니는 때우는 것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나는 할머니의 뻣뻣한 삼베 치마를 요 삼아 깔고 그분의 깡마른 허벅지를 베개 삼아 베고 눕는다. 그러면 할머니는 으레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 잘도 잔다. 자아 장 /
멍멍 개야 짖지 마라 / 고양이도 울지 마라 /
꼬꼬 닭도 우지마라 / 우리 아기 잠든단다 /
이 자장가는 누가 자작곡을 한 오래도 아니다. 낫 놓고 기역도 모르는 내 할머니의 자작 노래요. 손자에게만 들려주는 사랑의 노래였다.
그 가락은 어찌 들으면 타령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염불 같기도 한 재미있는 자장가이다.
이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자장가를 들으면 어린 나는 어느새 꿈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잠든 손자 얼굴에 모기라도 물을 세라 파리똥 묻은 살부채를 세월 쫓든 저으셨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참으로 삶의 인정이 메마른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들의 가정에 자장가가 사라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손자 손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멀리하고 살아왔다.
엄마의 젖꼭지에서 샘솟는 따끈하고 달콤한 어머니의 젖을 먹지 않고 우유를 마시며 자라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이어질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사랑과 정서가 메마른 오늘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뭐든지 나만 알고 남을 생각할 줄 모른다.
버릇없는 망아지들처럼 혼자만 뛰기를 좋아하고 참을 줄을 모른다.
우리는 신나는 팝송, 재즈 음악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잔잔하고 포근한 자장가도 들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오랜 세월 군사독재 정치로 심성은 거칠 대로 거칠어지고 게다가 경제개발, 국토개발이다 하여 너도 나도 고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옛날의 그 기름진 땅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엄청나게 살기 좋도록 경제성장이 되었다는데 그 돈들은 모두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오늘의 우리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마을은 있으나 고향은 사라지고 집은 있되 가정은 사라졌다.
차라리 문화적 혜택은 덜 받더라도, 경제성장은 더디더라도 내 할머니의 자장가를 들을 수 있고 포근한 인정과 사랑이 꽃피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건 나만의 향수가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향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