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여항의 사람들을 탐구한 언어 풍경화가 한 권의 서사 시집으로 꾸며졌다.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이소노미아, 2022)에서는 전라도 서남지방 할머니의 목소리가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하얀 민들레 씨방의 솜털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한 섞인 억양과 까칠하고 쉰 목소리의 사투리 시편을 조정 시인이 서사적 조정자로 개입하여 유장한 한 권의 신화같은 시집으로 묶었다. 전라도 할머니들의 어둔한 사투리 문법은 한 많은 삶을 끈질기게 버텨내며 살아남아 당신들의 말이 표정이 되고 시가 되었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는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판소리가 되었다.

산속에서 울려오는 산바람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간이 알맞게 밴 방언 속에는 죽음보다 더 짙은 비극 속에서도 간간이 희망의 목소리가 끼어있음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어떻게 할머니들의 일상적 회상의 언어가 시가 될 수 있을까? 표준어로 변복도 하지 않은 차림으로 이 세상으로 걸어 나왔을까? 평생 이름대신 태어난 마을의 지명으로 가려진 존재였던 여자들,‘진주떡(댁)’, ‘순천떡이’, ‘화순떡이’, ‘보성떡이’로 서로 호명하는 시적 화자의 언어를 받아쓰기해 낸 조정 시인은 행간과 행간에서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여러 첩의 병풍 속 풍경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념과 권력의 헤게모니 쌈박질로 굴곡진 현대사에서 검게 물든 핏빛 전라도 여항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진다. 때로는 역사의 흔적이 되어버려 두려운 기억들을 그리움이나 슬픔의 언어로 담담히 깨워내기도 한다.

‘그라시재라’는 ‘그러믄요’, ‘그럴 수밖에요’라는 체념이 담뿍 담긴 전라도의 관습적 언어다. 동네마다 사람마다 같고도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는 깊은 상처가 이 한마디에서 이렇게 크게 울려 나오다니? 상대 존대의 화법 ‘그라시재라’는 겸허하고 수수한 전라도 토속의 정서와 태도를 한마디로 보여준다. 가래침 소리가 섞인 할머니의 낮은 자세, 내 뜻보다 그대의 뜻을 더 존중한다는 전라방언의 울림이 전라도에서 지리산을 넘어 경상도까지 넘어 온다. “천지에 아는 사램 한나 없는 디서 머슬 보라꼬 살것능가?”의 어말어미 ‘살것능가’는 경상도의 ‘살겠능개’, ‘살겠능교’로 이어져 있다. 방언은 경계를 허물고 손에 손잡고 이어져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원래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만 지역과 계급을 나누어 차별하는 동안 달라졌을 뿐이다. 몸속에 숨어서 핏줄처럼 살아 있는 할머니의 방언은 원래 한가락이었다. “어야 덕진떡(댁) 자네 친정엄니는 고향이 으디시당가?/예 금정이라 어째 그라쏘?/보 성님도 이상하셌지라? 나허고 같은 생각 하셌고만이/덕진떡 엄니 말씨가 쪼깐 귀에 설드랑께요./갈에 우리집 콩 뚜듬서 이약헌디/항, 항허고 답을 허시등만/매 한말이이다 허고 봉께/아먼 그라재 헐 대목이서/항, 항 그라시드랑께”‘새야 새야 파랑새야’란 시에서 같은 전라도라도 친정이 달라 서로 말씨가 조금 다른 것을 느끼는 시적 화자들의 대화다. 서남전라방언에서는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으로 ‘그라재’로 말하지만 동남전남방언을 쓰는 덕진댁의 말은 ‘항’, ‘항’이니 말씨가 서로 귀에 설게 들린 모양이다. 이 말이 태백줄기를 넘어 경상도로 들어서면 ‘하모’, ‘하머’로 나타난다. 방언학을 전공한 나에게 조정의 이 시편들은 마치 방언지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가야와 제주지역에서만 ‘파리’를 ‘포리’하고 ‘팔’을 ‘폴’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전라도에서도 ‘남’을 ‘놈’이라 하니 ‘아래 아’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징하게’(매우, 찡하게), ‘보타지것네’(몸이 마르네), ‘느자구’(싹수), ‘끼께’(끌리어), ‘뿌사리’(황소), ‘태끼래지다’(그릇 이가 빠지다)와 같이 전라도 방언사전 없이는 해독이 어려운 방언이 난무한다. 경계의 표지도 없고 무지해 보이기만 하는 변두리 기층민들의 말씨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묘하게 정겹고 살가운 말씨들에서 역사의 흔적과 사건의 서사가 바람처럼 드나든다. 오래된 나무에 깊이 박힌 옹이, 말의 옹이가 차진 송진을 뿜어내듯 우리 말결을 윤이 나도록 눈이 부시도록 풍요롭게 해 주고 있다. 이 책의 편집자의 말을 빌면 방언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표준말로 통일되기 전에도 이미 전국을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조정 시인은 이 시집으로 표준어라는 한 가지 꽃만 피어있는 언어의 독방이 아닌 다채롭게 화석화된 방언의 깊은 지층을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