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너울댔다.
상춘객들이 많아 예정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려 광양에 다다랐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찾아들었다.
메뉴는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였다.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고기가 살살 녹아내렸다. 색다른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멋이지만,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
남편은 반주로 지역 특산품인 매실동동주를 곁들였다. 매실동동주는 섬진강변의 매화향이 빚어낸 술이라고 한다. 섬진강변의 매화. 봄이면 매화축제로 강 마을이 온통 떠들썩하다는 그 꽃! 봄바람에 하르르 흩어지던 꽃잎이 술잔에 아른거렸다. 나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한 잔의 유혹에 빠졌으리라.
드디어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맑은 하늘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초록나무의 몸짓 또한 아름다웠다. 드디어 대대포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든 생명의 정원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야호 소리가 나왔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의 풍경이 장엄했다. 갯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구의 갈대밭 저편에는 칠면초 군락지도 들어서 있었다. 계절마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내 눈이 호사하는 순간이었다.
갈대밭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배를 탔다. 갯벌에는 새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갯벌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 갈대들의 수런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듯. 잘 보전된 갈대 군락은 새들에게 은신처, 먹이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와 같은 조류 외에도 저어새, 황새, 흑부리오리, 민물도요 등이 서식하고 있단다.
그때 갑자기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새떼가 아니라 나비 떼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름다운 비상(飛上)! 역동적인 몸짓이 황홀했다.
물살을 가르며 배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배 뒷머리에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
“물고기가 날아올랐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뒤돌아보니 숭어였다. 장정 팔뚝만한 숭어가 배 안에서 펄떡거렸다. 숭어도 물속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까? 여행의 기쁨으로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덩달아 뛰어올랐는가? 숭어가 힘이 좋아 간간히 그렇게 뛰어든다며 선장은 우리에게 숭어를 선물로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뛰어든 숭어는 이번 여행의 느낌표였다. 아주 크고, 아주 힘찬 느낌표….
여유롭게 흐르던 물결 위로 햇살이 저물었다. 갈대밭 틈새로 땅거미가 내려앉자, 갈대도 물빛도 변했다. 장소에 따라 감흥도 달리하는 법이다.
이번에는 마치 내가 순천만 갈대라도 된 것처럼 석양의 붉은 노을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두 팔을 힘껏 벌렸다. 감동의 전율이 흘렀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이던가.
저녁 식사로 재첩국을 먹었다. 가마솥에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물이 식욕을 돋게 했다. 숟가락 대신 대접을 들고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니 담백하고 시원했다. 그 맛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포장을 부탁했더니, 인심 좋게 몇 국자 더 넣어주셨다. 사장님의 정까지 더해진 뜨거운 국물에 가슴까지 훈훈해졌다.
여행은 삶을 따뜻하게 해준다.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나는 가족끼리의 여행을 좋아한다. 같은 추억을 만들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이번 순천만 여행은 다른 날보다 기대 이상으로 큰 수확이었다. 내 마음밭이 순천만의 갈대밭처럼 넓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