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문화예술 기획자 최미경

문화와 예술이 세상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을 신뢰한다고 말하는 최미경 씨.

그간 취재를 위해 여러 차례 포항 꿈틀로를 찾았다. 그곳에선 적지 않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고, 열정과 젊음을 바쳐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포항시 중앙동 옛 아카데미 극장과 중앙파출소 일대에선 지난 2016년부터 ‘문화도시 조성사업’이 진행됐고, 회화, 공예, 음악, 공연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 다수가 거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른바 꿈틀로의 탄생이었다.

청포도 다방은 ‘꿈틀로의 문화사랑방’이라 불러도 무방한 곳이다. 2019년 봄부터 2년 동안 청도포 다방을 운영하며 북 콘서트와 그림 전시회, 인문학 강좌 등을 열어온 문화예술 기획자 최미경 씨는 훌쩍 큰 키에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이다.

얼마 전 청포도 다방 운영을 끝낸 최씨가 최근 새로운 작업실을 열었다. ‘예술인보호구역’이라고 했다. 이 역시 꿈틀로에 자리 잡은 문화 공간.

시원시원한 어법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친절함으로 포항 문화예술계의 마당발 노릇을 기꺼이 해내고 있는 최미경 씨를 만나 그간 진행한 문화 행사와 향후 계획 중인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선물하고 싶다”는 최씨의 꿈과 희망을 아래 옮긴다.

 

‘꿈틀로문화사랑방’인 청포도 다방

2년간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행사 진행

북콘서트·미술전시회·인문학강좌 등

지역예술인들 예술활동 증명 도우며

포항문화예술계 마당발 역할 ‘톡톡’

올 3월엔 ‘꿈틀로 입주작가’로 선정

남성은퇴자·장애인 문화교육 등 기획

근현대사 인물 재조명 작업에도 동참

꿈틀로에 자리한 청포도 다방은 포항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꿈틀로에 자리한 청포도 다방은 포항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지와 전공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에선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현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 다니고 있다.

-문학소녀의 과정을 거친 것인가.

△초등학교 6학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김소월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초혼’이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만난 시(詩)고, 생애 첫 번째 시집이다. ‘슬퍼서 좋았다’라는 말 말고는 당시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다. 가슴 아릿한 슬픔이 좋았다.

-포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남편의 직장이 포항으로 결정됐다. 그때 부산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포항으로 이주했다.

-포항의 ‘문화 사랑방’인 청포도 다방을 운영했다. 어떤 곳인가.

△1950년대 사진작가 박영달 씨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던 곳이다. 이후 10년간 예술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며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장소였다. 포항시가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하며 예술인들을 모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청포도 다방이 2018년 리뉴얼되면서 꿈틀로에 터를 잡게 된 것으로 안다.

-청포도 다방 운영을 한 기간과 운영을 결심한 이유는.

△2019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였다. 2018년 포은중앙도서관 상주작가로 있었다. 계약기간이 2019년 5월 종료되면서 거처를 고민하던 차에 청포도 다방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운영을 결정했다. 지역 작가들의 새 책을 소개하며 북 콘서트를 여는 ‘언니네 책다방’, 지역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청포도 미술관’, 인근 주민들이 참여하는 ‘수다와 담론 사이-미담소담’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었기에 걱정 속에서도 마음을 굳혔다.

-청포도 다방에서 진행한 문화행사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진행했던 언니네 책다방이다. 2019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모두 15회 행사를 열었다. 김일광, 김동헌, 서숙희, 고영민, 김만수, 허용호 등 시인과 소설가, 수필가, 아동문학가 등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들의 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청포도 다방 운영이 끝난 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언니네 책다방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문화기획사 ‘스토리 랩 숨비’에서 언니네 책다방을 이어갈 수 있게끔 후원을 해줬다. 그 덕분에 행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4월에 차영호 시인에 이어 5월에는 김일광 작가의 청소년 소설 ‘산남의진 의병장 최세윤’을 놓고 지역민들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청포도 다방의 ‘문화기획자’로 생활한 기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전의 최미경을 돌아보면 출간했던 책 말고는 문화예술과 딱히 연결된 선이 없었다. 하지만 청포도 다방을 운영하며 문화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게 된 후엔 내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많아졌다. 그 수식어들이 불분명했던 내 예술적 가치관을 뚜렷하게 만들어줬다. 청포도 다방은 내가 인간적·문화적 성장을 꿈꿀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현재는 뭘 하며 지내고 있는지.

△지난 3월 청포도 다방 운영이 마무리 될 무렵 꿈틀로 입주작가로 선정됐다. 새로 시작한 작업실 명칭은 ‘예술인보호구역’이다. 조금 거창하지만 ‘찾아온 예술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보호하자’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예술인보호구역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청포도 다방에 있으면서 많은 예술가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예술인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예술활동 증명이 특히 그랬다. 지난 몇 해 동안 20여 명 예술인들의 예술활동 증명을 도왔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술인창작지원금도 소개해 줬다.

한국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 문화재단 등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공모가 시작되면 이를 분야별로 매칭해 연결해주고 그와 관련해 조언을 한다. 더불어 지역 작가들과 함께 예술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 때마다 위로해주고, 자극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포항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이만큼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알리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올해 당신이 기획하는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경북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남성 은퇴자들을 위한 ‘우아한 0교시’다. 오는 6월부터 포항의 남성 은퇴자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두 번째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관하는 ‘물·흙·나무 그림책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예술인 5명과 함께 9월부터 명도학교로 들어가게 됐다. 이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은 예술가와 일반인들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도 예술인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획을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그 외에는 어떤 작업들을 해나갈 것인지.

△포항의 근현대사를 인물을 통해 재조명하는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북 여성계에 큰 영향을 끼친 김경희 여사를 인터뷰 해 그분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포항문화재단 상주공연 단체로 선정된 벨라미치문화예술연구소 정하해 대표와의 인연으로 칸타타 시나리오 작업도 맡게 됐다.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역량강화사업인 ‘철이 끓는 시간’과 관련해서는 포항의 주물공장과 동빈내항 철공소, 그리고 남빈동의 철물점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향후 진행될 프로젝트는.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포항 화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루트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는 예술인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구체적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나온 기획이다.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좀 더 쉽게 만나고 구입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드는 건 문화성숙도를 높이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하나가 있는데, 포항의 역사적 공간을 창조적 시선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그 프로젝트가 구체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1년 후에도, 아니 10년 후에도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알리는 조그만 역할을 하고 싶다. 그게 내 길인 것 같다.

-도움을 주고받는 예술가들에게 한마디.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 때마다 위로해주고, 자극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포항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이만큼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나도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인간이 되고자 오늘도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