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人
이병국 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장

예술인단체 리더로서의 입장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작품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이병국 경북예총 회장.
예술인단체 리더로서의 입장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작품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이병국 경북예총 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 경상북도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국 회장을 만났다. 안동미술협회 지부장과 경북미술협회 지회장, 경북예총 회장 3선으로 21년째 예술단체를 맡고 있으며 현재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과 한국미술협회 수석 부이사장까지, 사회활동 경력이 화려하다. 경력의 화려함이 예술인에게 덕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회단체의 협회장으로 20여 년을 보냈다는 건 그만큼 주변인들의 두둑한 신임을 얻었다는 말이 되겠다. 예술보다 단체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고 오해받을 만하지만 작품 활동이 그런 오해를 불식시켜줄지 어떨지 얘기하다 보면 알겠지.
 

자신의 손을 거친 그림이 모두 아낌없는 열정을 쏟은 자식 같아서 더하고 덜하고 없이 모두 귀하다고.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이 작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말해준다.

모든 작가와 작품이 그렇듯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갖고 있기 마련이니 부족한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고.

올해는 문화 활동에 취약한 지역민들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 경북을 문화예술 중심도시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야망을 펼친다.

“예총 회장님은 어떤 일을 하세요?”

“다섯 개의 공연협회와 세 개의 전시협회를 합쳐서 여덟 개 협회가 대내외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단체든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룹이 형성되지 않는다. 경북 예총에 소속된 예술인들이 7천400여 명이라고 한다. 그 많은 인원이 각자의 파트에서 고군분투하며 예술 활동을 하고, 협회는 그들의 사회적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역에 큰 행사가 벌어져 시낭송과 음악, 무용이 합쳐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예총연합회는 행사에 참여한 세 개 파트의 협회와 행사를 계획해서 필요한 예산을 공평하게 분배한다.

“미술을 하신다고요?”

“미술 하는 사람 같지 않죠? 다들 사업가나 야구 구단주 같다고.”

이 회장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허허 웃는다. 경북 8개 협회에 소속된 예술인 7천400여 명 중에서 미술협회 회원이 가장 많고, 활동도 가장 활발하다고 한다. 미술협회에 소속된 이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미술을 했다. 중학교 때에는 학년에서 혼자만 미술부로 활동했다고. 중고등학교가 같은 마당을 사용하고 있을 때여서 고등학교 선배들과 함께 미술부 활동을 했는데 바케스 두 개로 물을 떠놓고 청소하는 잡일을 도맡았다. 후배가 잡일을 하는 그런 관례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에 사생대회를 앞두고 어머니를 졸라서 처음으로 화구박스와 이젤을 가졌다. 너무 좋아서 사생대회 날만 기다리던 게 생각난다며 이 회장은 아련한 추억을 되살린다.

30년 6개월 동안 미술선생님으로 근무하고 퇴직한 지 6년 되었다고 한다. 교직생활하면서 폐교 교실 한 칸을 얻어서 작업실로 쓰다 퇴직 후 집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어떤 그림을 그렸느냐고 물으니 구상 쪽이라고 한다. 첫 개인전시회의 수채화를 시작으로 네 번째 전시회부터 수채화와 유화작품으로, 다섯 번째부터는 아크릴 작품을 그리며 지금까지 일곱 번 개인전시회를 가졌다.

넓게 펼쳐진 풍경을 그리다 요점을 잡아서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고목의 한 포인트를 잡아서 부분만 그리고 있다. 전창욱 사진작가의 소나무 사진처럼 큰 나무를 통째로 화폭에 담지 못하니 포인트를 잡아서 디테일을 살린다는 말이다. 빨리 마르는 게 좋아서 수채화를 그렸고, 유화를 그리다 지금은 수채화와 유화의 혼합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릴로 그린다며, 빨리 마른다는 점에서 아크릴이 수채화의 특성을 닮았다고 한다.

“결과를 왜 그렇게 조급하게 서둘렀어요?”

“협회일도 해야지, 애들도 가르쳐야지, 그림도 그려야지, 집에 가면 가장 노릇도 해야 하니 일이 많아서 마음이 바빴어요.”

늘 시간에 쫓겼기 때문에 그림도 빨리 마르기를 바랐고, 그림에 대한 갈망이 깊어서 퇴직을 앞당겼다고 한다. 정상대로 퇴직하려면 아직 2년이 남아 있다. 퇴직을 하고 나니 비로소 시간적인 공간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학교생활을 그만두고부터 예총협회 사무실과 작업실로 출근하며,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인공적인 불빛의 야경을 많이 그린다고.

아트 페어 네 번, 개인전시회 여섯 번. 서울까지 뛰어다니며 그룹전과 개인전에 참여하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예술단체의 리더가 되려면 예술적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고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술단체 회원들이 인정할 만큼 실력을 쌓으려고 이 회장은 지금도 노력 중이다. 예술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니만큼 적어도 작가는 작품으로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는 리더로서의 입장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작품 활동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어떤 단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작품을 향한 순수파와 단체 활동에 더 열심인 사람이 두루두루 섞여 있는 곳이 예술단체라며, 이 회장은 여담으로 청송 야송전시관의 주인이었던 이원좌(李元佐) 화백의 예술혼에 대한 추억담을 들려준다.

“개인전시회를 해서 좋은 점이 뭔가요?”

“전시실에 40여 점의 작품을 걸어놓고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작가들도 자기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손님이 없는 조용한 시간에 전시장에 걸린 작품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느낌이 어떠냐고 물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그림을 그렸구나. 참 애를 많이 썼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면 감회가 새롭다. 그 동안 힘든 과정이 있었고, 그 노력의 결과물을 무대에 올렸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주어졌으니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세부적으로는 작품을 살피다 보면 문제점이나 부족한 점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에 쏟은 수고로움을 칭찬해주고, 다음 작품을 그릴 때 참고로 삼아서 완성도를 높이는데 중점을 둔다고.

“앞으로의 계획이 뭐예요?”

“지역성을 좀 벗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예술 활동에는 지역성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몸을 움직여서 밖으로 나간다는 건 둥지 안에 갇혀 있는 의식을 넓히고 외적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타 지역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고받은 대화가 뜻밖에도 동기부여가 되어서 작품 세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이 회장은 ‘내 것을 가지고 고민할 건 작품뿐이더라.’며 웃는다. 봉사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고립된 시간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만의, 작품 활동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서울로 간 작가들이 많다며 창작세계는 탄력을 받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한다. 이 회장은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많은 자극을 받고 작품의 질을 높이고 싶은 욕구를 비쳤다.

“작품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어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전 굳이 그런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실에서는 완전히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밤늦게까지 작업을 한다며 이 회장은 작품이 수백 점이지만 하나같이 기억한다고 했다. 자신의 손을 거친 그림이 모두 아낌없는 열정을 쏟은 자식 같아서 더하고 덜하고 없이 모두 귀하다고.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이 작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말해준다. 40여 점을 걸어놓고 차근차근 살피는 화가의 등이 보인다.

“찾아낸 결점을 전시회 후에 보완하세요?”

“부족한 그대로 두고, 다음 작품을 그릴 때 참고합니다.”

머릿속에 담아놓은 기억은 오래 간다며, 수정보다 더 바쁜 것이 다음 작품 구상이고 뭔가 새로운 방식이 없는지, 어떻게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나,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채워 넣을까, 캔버스를 좀 뚫어서 빛이 새어들게 하면 어떨까, 하는 등의 새로운 고민이라고 한다. 모든 작가와 작품이 그렇듯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갖고 있기 마련이니 부족한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고.

“화폭에 그림을 많이 담는 편이세요?”

“그림에 따라서 다르긴 한데, 여백을 많이 남기고 오리 두 마리만 그려서 물의 흐름을 그린다거나, 포인트를 잡아서 부분을 크게 그린다거나, 여러 가지 방식을 도입합니다.”

착상을 얻기 위해 여러 지역과 도심의 중심지를 돌아본다고 한다. 돌멩이 하나라도 유심히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면 달리 보인다고. 어떤 사물에 관심을 가지면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오래 관찰한다며, 전시회에서는 작품이 말을 한단다.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니 안동대 이수창 화백을 거론한다. 대학시절의 스승님이라며, 밝으면서도 무게가 주어지도록 층을 많이 쌓는 것도 그분의 영향이라고 한다.

작품 활동도 중요하지만 협회의 리더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올해는 문화 활동에 취약한 지역민들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 경북을 문화예술 중심도시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야망을 펼친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