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거리에서 노래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을 살고 싶다.

무슨 일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해 나가다 보면 다른 욕망이 끼어들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며 취업을 했는데, 나보다 앞서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조급해진다.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소홀해져버린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일이라며 교사가 되어서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연봉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주식이나 가상화폐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곤 한다. 돈 벌어서 세계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더니 힘들게 번 돈이 아까워서 못 간다는 친구도 있다. 모두가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 마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고, 불행하다.

나는 분명 즐거워서 음악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기타를 메고 홍대 놀이터나 이대 앞 공터 같은 곳에 나가 앰프도 마이크도 없이 매일 노래를 불렀다. 팁 박스라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면 간혹 천원짜리건 만원짜리건 넣어주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팁을 주면서 신청곡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청곡을 부르는 것보다 자작곡을 부르고 내 이야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진 않았는데, 이름을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욕망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너는 언제 뜨냐?”

“네 노래는 언제 노래방에 나오니?”

“너도 뜰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슬슬 TV에도 나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한 해 한 해 갈수록 그 목소리들은 점점 커지고 많아졌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넘기던 나도 나중에는 그런 말들에 부담을 느꼈고, 언젠가부터 마치 그 ‘떠야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내 욕망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그 무렵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었다. 슈퍼스타K, K-Pop 스타, 보이스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하늘을 찔렀고, 스타도 많이 배출해내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가보라고 부추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주입된 ‘떠야한다’는 욕망이 나를 오디션 프로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오디션에서 예선탈락만 반복하던 어느 날, 드디어 TV에 출연하게 되었다. MBC ‘위대한 탄생 3’의 최초 예선을 통과하고 드디어 방송 오디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어느 작가는 내게 따로 제작진이 기대하는 바가 크니 오디션을 잘 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이미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방송 촬영 당일, 나는 처참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너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들으면서 화가 났어요. 정말 그냥 뜨고 싶어서 나온 것 같아요.”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용감한 형제’의 심사평이었다. 그 독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고 싶어서 나왔냐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었으니까.

그날 많이 울었다. 단지 오디션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라, 뭘 해도 뜨지 않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무렵, 편도선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다. 목이 아파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음악과 멀어지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누워 잠자고 책읽기만 반복하다가 지겨워 휴대폰 어플을 뒤적거렸다. 예전에 깔아둔 피아노 어플을 발견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건반을 누르고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욕심이 생겨 곡을 하나 쓰기 시작했고, 끝내 곡을 완성했다.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렸다.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었다고. 나는 그래서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뜨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때의 기억이다. 유명해지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재미있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것을 망각하자마자 음악을 하는 게 힘겨웠다. 여전히 재미만 있다면 계속 해 나갈 이유는 충분한 것인데, 그것을 망각한 채 다른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힘들어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미련한 일이다.

여전히 내 귀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리고, 다른 욕망들은 언제건 마음을 단숨에 잠식해버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처음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 그리고 병실에서 곡을 만들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왜 그 일을 시작했는가를 잊고 괴로움만 남은 채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문득 찾아가길 바란다. 어쨌거나 우리는 행복해져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