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아재’로 살아온 17년… 세상에 선한 영향력 주고 싶어”
“‘김씨 아재’로 살아온 17년… 세상에 선한 영향력 주고 싶어”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3.31 20:14
  • 게재일 2021.0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 방송인 이정대 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란 이야기일 터. 여기 강산이 2번은 변할 시간에 가까운 17년 동안 꾸준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퇴근길 청취자들의 친구로 오랜 세월 함께 한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에서 ‘김씨 아재’ 코너를 맡아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어온 이정대 씨.

2004년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깨끗하게 손을 씻고 대본을 받아드는 그는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잊지 않는 방송인으로 살고자 애써 왔다. 긴장과 진땀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생방송과 함께 살아온 6천200여일. 형님과 친구의 장례 기간 중에도 스튜디오에 들어가야 했던 때를 이씨는 또렷이 기억한다. 입에 착착 감기는 구수한 영남 사투리로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쉽게 풀어내 청취자들의 가슴에 때로는 기쁘고 때론 서글픈 기억을 남기는 ‘김씨 아재’ 이정대 씨를 지난 주말 만났다. 다음은 그날 오간 이야기들이다.

 

2004년 11월 포항MBC 라디오 출연하며 인연 맺어
‘김씨 아재’ 코너서 구수한 사투리로 청취자들과 소통
기타·트럼펫 연주실력 등 연극배우로도 27년째 활동
“청취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프로그램 제작에 힘쓸 것”

-유년 시절부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나.

△아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교회 고교생 신도 회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선배들을 위해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오락회도 열었다. 기타 연주도 좋아했다. 내성적인 아이는 아니었고, 활달한 성격이었던 건 분명하다.

-방송인들은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 반장을 했다. 하지만, 내가 특출난 리더십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시골 학교였으니 활동적인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시킨 것이라 보면 될 듯하다. 예를 들면 ‘우리 반에선 누가 웅변대회에 나갈래’라고 선생님이 물으면 모두가 우물쭈물 하는 게 보기 싫었다. 그래서 잘하건 못하건 먼저 손을 들고 나서는 편이었다. 너무 나서도 좋을 게 없는 게 인생인데.(웃음) 고등학생 땐 악대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지금은 주목받는 성악가가 된 우주호 씨와 친구였는데, 포항 번화가에서 불우이웃돕기를 하며 우주호가 가곡을 부르고, 내가 품바타령을 하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 출연 이전엔 연극배우를 했다던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단체가 진행하는 행사 등을 도우며 지냈다. 딱히 직장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1989년 철강회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됐다. 이후 아는 선배들의 소개로 1994년 연극을 시작했다. 지금도 배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니 벌써 배우 생활이 27년째다.
 

-연극배우 시절의 에피소드는.

△2008년 겪은 일종의 무용담 같은 것인데…. 포항의 ‘극단 은하’에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란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다. 공연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선배 생일파티에서 과하게 술을 마셔 머리를 다쳤다. 연출가가 나서서 공연의 일시 중단을 알렸던 작지 않은 부상이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다시 공연이 시작됐을 때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무대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도 심각했던 일화다.

-포항MBC에 출연하기 시작한 때는.

△2004년 11월 4일로 기억한다. 서른아홉 살 때다. 우리나라엔 각 지역마다 그 지방 사투리로 시사 문제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안녕하세요 형산댁’, ‘대구 달구벌 만평’, ‘부산 자갈치 아지매’ 등이 그것이다. 포항에도 ‘만물상 정 사장’이란 코너가 있었다. 거기 출연하던 후배가 그만두면서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갔다. 당시는 하루에 5분을 출연했는데, 사전에 3시간씩 연습을 했다.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과 인연을 맺은 것도 벌써 17년이다.

-17년은 긴 시간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출연이다. MBC 파업 외에는 방송을 빠진 날이 거의 없다. 생방송의 특성상 다치거나 목소리가 이상해지면 안 되니까 감기도 조심한다. 연극을 하다가 부상 입었던 때는 다행히 MBC 파업 기간이라 운 좋게 넘어갈 수 있었다. 비속어나 일본식 어법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항상 머리에 넣어두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김씨 아재’로 살 수 있었던 건 청취자들이 보내준 격려와 응원 덕분이다. 이제는 나도 우리가 숨 쉬는 공간의 나쁜 공기를 바깥으로 빼내는 ‘환풍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김씨 아재’로 살며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는지.

△‘김씨 아재’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 캐릭터다. 잘나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나 역시 보통 사람들 속에서 희망과 절망을 느끼는 방송인이 되고 싶었다. 아쉬운 건 내가 전했던 소식들 대부분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단 것이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10년 전쯤 중학생과 할아버지가 버스 안에서 서로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장면을 지켜본 청취자가 이를 제보한 적이 있다. 작은 미담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많이 전했으면 좋겠다. 골치 아픈 정치나 답답한 경제 관련 소식보다는.

-당신이 출연하고 있는 생방송만의 묘미가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엔 99%가 생방송이었다. 녹음을 해서 방송할 경우엔 틀리면 다시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생방송에선 그럴 수 없다. 항상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김씨 아재’ 코너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시작되면 한 10초쯤 묘한 긴장에 빠져든다. 이건 17년 전 처음 라디오 방송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오래 이 일을 한다 해도 그 감정은 변하지 않을 듯하다. 연극 무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선 언제나 긴장감 속에서 마른침을 삼키게 된다. 이는 베테랑 배우들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함께 작업한 PD와 작가가 적지 않을 텐데.

△라디오 방송은 개편 때면 PD가 바뀐다. 함께 한 PD가 10명이 넘는다. 작가도 3~4번 바뀌었다. 지금 작가와는 10년쯤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나는 ‘김씨 아재’라는 내 역할이 자동차 부속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라디오 열린 세상’이란 프로그램의 전체 흐름과 조화를 먼저 감안해야지 나만 튀어서는 안 된다. 이는 연극도 똑같다. 한 명의 배우가 혼자서 튀는 연기를 한다면 극의 흐름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TV나 인터넷방송엔 없는 라디오만의 매력은.

△쌍방향으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라디오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게 아닐까. 그냥 생각 없이 쳐다보는 것이 아닌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다는 것이 라디오의 매력으로 내게 다가왔다.

 

생방송에선 항상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17년 전 처음 라디오방송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오래 이 일을 한다해도 그 감정은 변하지 않을 듯하다. 서로 소통하며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사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현 정부는 공정을 자주 말한다. 공정의 가치가 실현된 후 궁극적으로 가닿을 곳은 평등한 세상이다.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선 말로만의 공정이 아닌 국민의 몸으로 체감되는 시스템화 된 공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 라디오 방송이 지향해야 할 지점은.

△출연자의 한 사람에 불과하니 큰 이야기를 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편한 것을 추구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청취자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방송인들 모두가 자신이 끼칠 사회적 영향력을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될 것 같다.

-어떤 방송인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가.

△작으나마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50대 중반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이다. 소박하게 내 곁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홍성식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