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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사

등록일 2021-02-21 19:35 게재일 2021-02-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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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동 확

잘 가라 내 청춘

 


미친개들의 입에서 입으로 뺏고


빼앗기며 핥고 깨물어도


아직 삼켜지지 못한


뼈다귀 같은 슬픔뿐이어도

 


제대로 된 긴 전망 하나 없이도


끄떡없이 저 피의 세기를 건너왔느니

 


끝내 신원 될 기약조차 없이


생매장된 검은 기억의 꽃밭 위를 맴돌다가


금세 날아가버린 나비처럼


나의 눈길은


저 언덕 너머 양떼구름을 쫓고 있느니


검고 윤기나던 긴 머리칼 한번


뽐내지 못한 채 죄 없이 쥐어뜯다가


어느새 새하얗게 세어버린 청춘의 날들이여

 


(….)

 


잘 가라 내 청춘

 


다가오는 날들이 결례 같은 죽음뿐일지라도


무작정 떠밀려온 채 살아 애쓰는


여기가 나의 거점


그때 그 패배와 나락의 순간들이 없다면


이토록 깊고 서늘한


사랑의 완성을 꿈꿀 수 없으리


중년의 나이에 든 시인은 치욕과 어둠, 패배와 나락, 죄의식과 굴종, 절망과 혼돈의 시간과의 고별을 선언하고 있음을 본다. 청춘의 시간을 사로잡았던 시간을 벗고 새로운 생의 지평을 열어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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