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 포항지원장 2대 연속 여성… 부장판사 수 ‘여 4·남 3명’
이은희 신임 지원장,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대기업 불법에 엄중
포항지청 검사도 11명 중 6명 여성… “섬세한 리더십이 새 바람”

포항 법조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검찰과 법원에 여성 판검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조직에 변화가 생겼다. 전문성과 경력을 갖춘 여성 법조인들이 요직을 꿰차면서 기존의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3일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인사를 단행하면서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장에 이은희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임명했다. 포항지원은 12대 서영애 지원장에 이어 2대 연속으로 ‘여성 지원장’을 맞이한다.

이은희 신임 포항지원장은 영덕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학과 재학 중인 1991년에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23기) 수료 후 1994년 법관으로 임용돼 수원지법, 대구지법 안동지원, 서울가정법원, 서울남부·중앙지법 등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파견을 마치고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에는 전주·수원·서울중앙지법을 거쳐 2017년 2월부터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했다.

그는 지난 2018년 홍익대 인체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동료 여성 모델에게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앞서 2016년 11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가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첫 승소 판결을 내렸고, 같은 해 7월엔 유통기한이 임박한 유제품 처리를 대리점에 떠넘겨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남양유업에 대해 손해배상금을 물라고 판결하는 등 평소 대기업의 불법 행위를 두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왔다. 22일 이은희 신임 지원장이 취임하면 포항지원은 경북 울진 출신의 사경화 부장판사를 포함한 4명의 여성 부장판사와 남성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다.

서영애 전 포항지원장은 청송여자종합고등학교와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7년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근무를 시작으로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포항지원 개원 이래 최초로 지난 2019년 첫 여성 지원장을 맡아 여풍의 진원지가 됐다. 과거 엘리트 남성 위주의 사법계에서 극소수인 여성 판사를 일컫던 ‘홍일점’이란 말이 최근 들어 사라지고, ‘유리천장’이나 ‘금녀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도 내부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관계자는 “서영애 지원장이 부임한 뒤로 직원들과 서로 편하게 식사도 하고 스스럼없이 대화하면서 여성 리더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을 통해 조직 분위기가 상당히 유연해지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며 “또다시 여성 지원장이 부임하게 돼 이제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가 완전히 정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지원장’이라는 직책은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는 ‘여성 최초’‘여성 수장’이라는 수식어와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지원장의 판결 내용이 지역에서 발생한 주요 현안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회적 방향을 제시하고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특유의 권위적인 조직 분위기로 여성에게 유난히 진입장벽이 높은 검찰에서도 최근 여성 법조인들의 활약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은 이미 여검사 전성시대를 맞았다. 현재 포항지청 검사실에서 근무 중인 검사 11명 중에 절반 이상인 6명이 여검사다. 이들은 과거 남자 검사들이 주로 전담하던 강력이나 마약, 성폭력, 아동학대 등 검찰 내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 여풍 영향권 아래 여검사들의 수사 역량까지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여성 부장검사, 여성 지청장 시대도 머지않았다는 게 내부 전망이다.

대구지검 포항지청 관계자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검사가 늘면서 전담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수사역량 발휘 측면에서도 남자 검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여검사만큼이나 여성 수사관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소통을 중요시하고 세심하면서도 서로 배려하는 면모가 확실히 조직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업무를 추진할 때에도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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