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목공예 명인 최수완
그저 나무가 좋아 시작해
35년 한길만 걷다 보니 ‘명인’에
한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은
인내라기보다 행복한 시간

최수완 목공예 명인 /사진작가 김훈 제공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 봉좌산 좁은 외길을 오르자 눈 맞은 1월의 겨울나무들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산 중턱쯤 올랐을까, 길 오른편으로 ‘금화목공방’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목공예 명인 금목(金木) 최수완. 오랜 세월 대대로 물려 내려오며 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통가구들을 지키기 위해 40여 년을 나무와 함께하고 있는 장인이다.

소목장, 다탁 등의 목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는 그는 나무를 깎고, 다듬고, 정교한 무늬를 새기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고 살아온 모습이다. 묵묵히 그리고 진득하게 목공예 한 길 만을 걸어온 그의 삶은 어떤 빛깔을 품고 있을까.

한 손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높은 작품 완성도를 자랑하며 지역의 많은 목공예인과 교류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25일 만났다.

-40년 목공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80년에 흥해로 이사를 갔다. 산 너머 동네에 목공방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용목(느티나무 무늬)을 보게 되었다. 건축자재용으로 쓰였던 보편적 나무가 아니라 공예용 나무를 처음 본 것이다. 그냥 그 무늬에 홀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때가 19살이었다. 나무를 통해 느꼈던 첫 마음에 헤어 나올 수 없어서 지금까지 나무를 만지고 있다.

-손이 불편한 것으로 알고 있다.

△17살 때 사고로 기계에 손목이 절단되었다. 본래 밝고 거침없는 성격이었는데 사고 이후 남들에게 나서기도 어려웠고 두려웠다. 좌절과 암울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2년을 침울하게 보내다가 나무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나무를 만지는 게 너무 좋았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차츰 당당해졌고 원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무가 나를 나로 살게 해 준 버팀목이자 생명줄인 셈이다.

 

최수완 作(원내). /사진작가 김훈 제공
최수완 作(원내). /사진작가 김훈 제공

-비장애인들에게도 목공은 어려운 분야이다. 혼자 작업하는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번은 의뢰받은 주문 작품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몇 명이 같이 일하세요? 라고 물었다. 혼자서 한다니까 그곳에 있던 이들 모두 놀랐다. 어떻게 한 손으로 나무 작업을 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내게 직접 묻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혼자 작품을 만든다는 것 자체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들이 두 손으로 하는 걸 한 손으로 해야 하니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공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려웠던 일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나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기에 그 시간들은 인내의 시간이었다기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5년 소목공예부문 한국예술문화명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시작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목공에 대해 배워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목공방과 인간문화재 작업장들을 쫓아다녔다. 그곳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했고 좋은 나무를 찾아다녔고 목공작업을 위한 기계가 필요하면 내가 직접 만들어 쓸 정도였다. 그렇게 35년 같은 길을 걸으니 어느새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소목이라 하면 주로 어떤 것을 만드는지?

△내가 만드는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적 소목품과 현대적 소목품이 바로 그것이다. 쉽게 말해 2층장, 반닫이, 애기장, 제사상 등 옛날 가구를 만들거나 탁자, 의자, 책장 등의 가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현 한다. 특히 근래에는 주문제작을 원하는 가구들 중 전통적 기법이 가미된 실용적 가구들이 많다. 지금 주문제작하고 있는 경대가 그러하다. 나무에 문양을 새겨서 판 후 색이 다른 나무를 기존 나무 안에 넣어서 만드는 것으로 상감기법이라 하는데 전통소목의 고급기술이기에 할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전통소목품 제작은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편이다.

-최수완 작품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기존에 없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망은 늘 있다. 그 새로움은 작품자체 일 수도 있지만 제작방법이나 틀의 변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도하게 된 것 중 하나가 고리이다. 고리라고 하면 고리로 목기와 목기를 연결하거나 작품에 고리를 다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무이기에 그러할 수 없다. 고리로 연결된 작품을 구상 후 오롯이 하나의 나무를 깎아서 전체를 만들어야 하기에 쉽지 않다. 왜 그렇게 어렵게 작업을 하느냐고 누군가는 묻는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으면 그저 일반 목수에 지나지 않는다. 내 작가적 자긍심은 나의 고민과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은?

△5년 전 이곳 봉좌산 아래에 터를 잡고 금화목공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황금꽃, 최고의 아름다움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직접 붙인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세계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나라 전통 목기를 일본과 중국의 것이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나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독특한 한국적 목공예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한국의 공예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 공예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 더불어 목공예에 대한 예술교육의 장도 넓히고 체험관이나 공예촌을 만들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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