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문무학 원장

자신과 더불어 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하는 문무학 시인.

시조시인이신 문무학 선생님을 만났다. 가끔 출판사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독대는 처음이었다. 시인은 책이 가득 담긴 종이가방을 주었다. 그 중 반려도서 시리즈 두 권에 사인을 받았다. 시인은 반려도서 두 권을 마음에 담고 있던 사람 40명에게 보냈다고 했다. 시인의 마음에 담긴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누군가의 마음에 담긴 사람이 되는 것도,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삶의 최종목적일지도 모르는데 더러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산다. 마음을 잊으면 일상의 모든 과정이 단순한 습관으로 굳어지고 마는데. 책을 내는 건 오랜 고군분투 끝의 결실이어서 책을 나누어주는 일에도 마음을 담는 게 지극히 당연한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인 듯 ‘마음’이 낯설다.

 

1981년 문예지에 첫 이름 올리며 40여년 간

한글 주축으로 한 글쓰기로 독특한 시 써 와

교사·신문기자·문협회장·문화재단 대표 등

여러 직위 거치며 다양한 사회적 활동 펼쳐

인터넷 카페 통한 독서아카데미 이끌며

90여 명의 회원들과 토론 내용 공유하고

서평집 6권이나 발행… 공모전도 개최

“지역을 기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업

지역 출판문화 살아나 활기 되찾았으면…”

시인이 문예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 1981년이니, 시조시인으로 글밥을 드신 지 40년이다. 글이 불혹을 넘기면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글의 사회적 기능도 제 길을 찾아가는지 궁금해진 건 선생님이 그 동안 출간하신 작품집의 제목이 범상치 않은 탓이 크다. ‘낱말’ ‘홑’ ‘가나다라마바사’ 등의 작품집이 모두 한글 자모를 바탕으로 한 시집이다. 색다른 작품의 소재에 일관된 실용주의의 시작이 어디일까? 우리가 날마다 읽고 쓰는 ‘한글’을 주축으로 한 글쓰기 방식의 근저를 물어본다.

“국어사전 같은 시를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내 평생 한글 하나로 먹고 살았어요. 오로지 한글 하나로 교사도 했고, 신문기자도 했고, 시도 썼어요.”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더란다. 시를 읽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어렵고 재미없다는 이유가 가장 많더라고. 시인은 시를 재미있게 쓰고 싶어서 한글을 선택했고, 그것이 한글 사랑의 시작이었다. 자칫 몽상적이기 쉬운 ‘시’라는 장르를 실용주의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독자 사이의 간극을 지우려 한 것이 한글 자모 시집이 나오게 된 동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토니 모리슨의 말을 예로 들며 ‘정말로 내가 읽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읽고 싶은 사람이 그것을 써야 한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지금껏 없었던 한글 자모 시로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인은 한글의 품사와 문장부호를 시로 썼다. 한글 자모가 시로 환치되는 과정을 살필 겸 시를 한 편 읽어본다.

‘물음표는 사람의 귀 귀를 닮아 있다 / 물어놓고 들으려면 귀 있어야 된다는 듯 / 보이지 않는 쪽으로 / 열려 있다…’

이렇듯 시인은 누구도 생각지 않은 소재로 시를 썼다. ‘낱말’ 시집이 시인에게 큰 보람을 안겨주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자습서 등에 시 열두 편이 실려 있다며 저작권료를 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털어놓으신다. 남다른 것을 써서 작품화시켰다는 점에서 시인의 글쓰기는 매우 독창적이다. 시를 시 같지 않게, 문법에 접근하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흥미까지 부추기고 있으니 시인의 바람대로 새로움에 더한 즐거운 시 쓰기는 성공적이다. 시인만의 말맛이 담긴 시 중에서 ‘낱말 새로 읽기 ? 13’ -바다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시를 읽어본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 ‘괜찮다’ / 그 말 한 마디로 /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시인은 근래에 발표한 문예지의 자서에 ‘삶의 언어에서, 언어의 삶으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삶에 근저를 둔 글쓰기. 한글에 대한 사랑 없이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글쓰기. 시인은 시를 ‘삶의 문자적 표현’이라고 표현했다. 독특한 언어배열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 서술법이, ‘차이’를 바탕으로 한 구조주의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닌지 시인의 심연을 슬쩍 짚어본다.

“독서아카데미를 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지 들려주세요.”

“그 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활동만 하고 있어요.”

세상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보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와 책읽기였다. 한글이 시인을 먹여 살렸기 때문에, 한글을 빚내고 보존하고 정화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것으로 미약하나마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다. 대구문협 회장, 대구예총 회장, 대구문화재단 대표 역임 등, 여러 직위를 거쳐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던 시인이 사회적 독서권장의 일환으로 KBS에서 책 소개를 8년이나 했고, 일간지에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고시조 연재도 했다. 그렇듯 책을 읽으라고만 했지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우리나라 독서의 폐단을 깨달은 시인이 늘그막에 애정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독서아카데미였다.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하고 싶었다. 책도 읽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바라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시인은 독서를 완성하는데 다섯 단계가 있다며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많이 읽는 건 휘발성 독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남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책을 천천히 읽는 것이다. 둘째는 읽은 책에 대해 토론을 해야 한다. 토론을 하면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된다. 셋째, 읽고 토론한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걸으면서 생각을 하면 좋다. 넷째, 자기 생각을 글로 쓴다. 글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읽은 책의 내용이나 얻은 지식을 활용하고 실천해야 한다.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독서의 완성 단계이다. 내가 없는 삶이 너무 많다. 책 읽기는 ‘내가 있는 삶을 위한‘ 첫걸음이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독서토론을 하고, 90여 명의 회원들이 온라인으로 토론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독서아카데미의 존재 이유이다.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집 서문에서 뼈를 치는 한 마디를 읽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라는 문장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많아지는데 남아도는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이 바로 책을 읽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인 것을.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인 학이사 독서아카데미에서 서평집을 6권이나 발행했고, 서평쓰기 공모전을 개최하여 매년 독서 인구를 늘여가고 있다. 이런 일로 2020 대구 수성 한국지역도서전 조직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주위의 사람들이 책을 읽는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문득 대구문화재단 대표 시절에 시인이 펼친 ‘청바지론’이 생각난다.

“청바지론이라는 낯선 말을 들었는데, 설명 좀 해주세요.”

“대구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하면서 ‘대구문화에 청바지를 입히자’는 슬로건을 걸었는데 그 의도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닫자는 것입니다.”

 

“독서를 완성하는데 다섯

단계가 있어요. 첫째는 책을

천천히 읽고, 둘째는 읽은

책에 대해 토론을 해야하며.

셋째는 읽고 토론한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넷째, 자기

생각을 글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며 마지막으로는

읽은 책의 내용이나 얻은

지식을 활용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독서의 완성 단계죠.”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표현수단이고 청년문화의 상징이다. 새로운 생각의 모색과 땀으로 연결된 노동, 저항의식, 자유로움, 성별을 가리지 않는 유니섹스를 상징하며, 청바지는 인간을 달리게 하는 열정이기도 하다. 열정을 바탕으로 할 때 사회는 깨어나고 새로워질 수 있다. 넓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는 발길을 내딛을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쟁취할 수 있고, 그 열정의 주체인 청바지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시인은 지역의 출판문화가 살아나서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역을 기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대한민국 헌법 제 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출판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만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닌데 지역에서 나오는 책은 무시된다는 시인의 분개 어린 말을 들으며, 그의 실험적인 시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을 읽어 본다.

‘내쳐서 삼천리를 다 못 가고 마는 땅 / ????/

가다가 뚝 끊긴 길 끝에 이념만이 선명한’ 중장을 없애는 것으로 시인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코로나를 맞고 보니까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한다. 거리두기만 잘 해도 사회에 기여한다고 여겼는데,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을 찾아다니며 기쁨을 주려 애쓰고, 또 어떤 이는 마스크를 보내기도 하는데, 시인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나쁜 삶을 살고 있더란다.

“나쁜 삶이 어떤 거예요?”

“나뿐인 삶이 나쁜 삶이죠.”

위기 속에서 위인이 나타난다며, 시인이 의문을 던진다. ‘내가 보낸 오늘은 산 것인가 사라진 것인가’ 한낱 기호였던 낱말이 시어가 되고 삶이 되다 마침내 상징이 되기도 하는, 시인의 유희 같기도 한 언어놀이는 지금도 계속된다. ‘예술은 즐기는 것이다.’ 시인의 마지막 말이 여운을 남긴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