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순
한번 성질 내면
온 산 다 뜯어먹어도 시원찮지만
지금 그 성질 많이 눌러놓고 있지
슴베 곧은 조선낫 들게 갈아
이 산에서 번쩍
저 산에서 번쩍
온 산기슭 뻐들어가는 칡넌출 후려가면
낫 얇은 까끄랑 왜낫들
감히 따라들 어림도 못하지
(….)
밀어 깎는 풀낫 갈대 베는 벌낫
담배 귀 따는 담배낫
백정들 눈물로 고리 짜던 버들낫
반달 같은 논배미의 반달낫
물음표의 옥낫 왼손잽이 왼낫
안 쓸 때 녹 낄라 조심조심
숫돌에 매우 갈아 기름 먹여 걸어두게
배고플 때 무깎기 제격이듯
더부룩한 삼팔선 풀 깎는 날 꼭 있으리니
농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인 낫에 대한 나열이 눈물겹다. 원죄처럼 타고난 농투성이들의 힘겨움이 시 전체에 배어 있다. 삶의 간난(艱難)이 태산 같은데 낫으로 그 운명적인 가난을 베어버릴 수 없이 안고 살아온 세월을 푸른 날로 지켜봐 온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