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외 석

아침 산에 아버지가 있다

억새풀 볏짚 냄새에도 아버지가 있다

가을 들판에서

까시래기 날리며 타작하던 냄새가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에서 난다

욕심 많은 아버지는 살아생전

그 냄새마저도

이 산에 데리고 왔다

내 등에서 아버지 냄새가 난다

아버지의 소소한 욕심 같은 것이

내 몸에서도 흐른다

내 몸엔 아버지가 있다

어느덧 나도 중년의 억새풀이 되어

쉰내 풍기던 아버지같이

한 개비 담배연기에 청춘이 간다

하산 길에 마주친 장 씨 영감

그 몸에서도 아버지 냄새가 난다

하회탈이 된 얼굴

잘 익은 웃음, 잘 익은 슬픔이 보인다

소나무 고목 밑둥치 같은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이끌고

혼자 쓸쓸히 경로당을 지킨다

말없이 엎드린 바위는

하고 싶은 말 다 뱉지 말고

아끼며 살라 한다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씀 하신다

억새풀밭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서 억새풀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생에 대한 애틋함과 서러움 같은 것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 다 뱉지 말고 아끼며 살라’ 하신 말이 가슴팍에서 눈물로 흘러내려 가슴 먹먹한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