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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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12.23 20:01
  • 게재일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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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돈나무 화분을 들여다봅니다. 부자 되라고 집들이 선물로 지인이 놓고 간 것이지요. 덕담 달린 그 나무를 누군들 싫어할까만, 아침마다 돈나무를 관찰하는 건 부자 되라는 그 덕담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루살이 버섯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선잠을 깨 화분에 물을 주려는데 신기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흙더미를 뚫고 작고 흰 버섯 한 송이가 우뚝 솟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독야청청 고매한 소나무처럼 이끼를 뚫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요. 분명 간밤에는 뵈지 않던 것이었지요. 시쳇말로 하루만에 ‘갑툭튀’한 생명의 신비라니요. 비록 작고 앙증맞은 식물이지만 하룻밤 새 성체로 자라 꽃피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혹 잘못 본 건가 싶어 녀석의 하루를 관찰했습니다. 이른 아침엔 종 모양으로 팽팽하더니 조금 있으니 우산모양으로 제 머리를 부풀렸습니다. 변화무쌍한 그 기개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눈치 채지 못할 사이에 이끼를 뚫고 나와 온 낮을 새침한 원맨쇼로 장식하는 녀석을 보니 호기심 대신 의구심이 싹트지 뭡니까. 독버섯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자신의 별을 위협하는 바오밥나무 어린순을 뽑아야 하는 어린왕자의 심정이 되어 녀석을 퇴치해버려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돈나무와 공생하는 독버섯 콘셉트도 괜찮아보였습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부자로 키워줄 돈나무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독버섯이란 이름 정도와 더불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한데 웬 일입니까. 볼일을 보고 저녁에 귀가하니 버섯이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낮에 분명히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버섯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뵈질 않던 녀석이, 원래 있던 반대쪽 이끼 위에서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습니다. 잡초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뽑아버렸나 싶어 물었더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랍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새로이 피었다가 사라지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피어난 버섯이 죽고 나면 그 옆에 새로운 놈이 내일 돋아나는 식이었습니다. 그제야 이 버섯의 생애가 궁금했습니다. 뒤늦게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녀석 생애의 비밀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살이 개체였습니다. 밤새 이끼 밑에서 뿌리를 만들고 조금씩 몸피를 밀어내, 아침이면 팽팽하게 부풀다가 한낮이 오기 전에 활짝 피어납니다. 해가 강렬해지면 서서히 지다가 저녁이면 저 먼 우주를 향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 버섯이었던 거지요. 물기 많은 화분에 잘 피었다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녀석처럼 하루살이 개체 버섯이 더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 소설가

분명 예쁜 이름도 있을 터인데 살뜰히 찾아 봤지만 끝내 버섯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망태말뚝버섯의 경우도 그렇다는데 제가 본 버섯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하얗고 소담스런 그 버섯이름을 몰라 제 맘대로 ‘하루살이 버섯’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나절을 살다 저녁이 오기 전에 제 삶을 마감하니 ‘한나절살이’ 버섯이라고 해야 옳을까요.

돈나무에 기생하는 하루살이 버섯. 아무 의미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독버섯이든 이로운 버섯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룻길 사념들로 균형을 잃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로 그 작은 생명체가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생기는 허욕, 때때로 얽히는 오해, 시간 단위로 붙는 게으름 등등을 제때 살피라고 은유적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한나절이라는 짧은 생을 마디고 알차게 살다가는 녀석들. 그에 비하자면 영겁에 가까운 인생 주기이니 자신들보다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인간답게 살다 가라고 깨쳐주기 위해 제 곁에 온 것 같습니다. 즐기되 허비하지 말고, 열정을 가지되 헐레벌떡 쫓기지 말 것이며, 섞이되 아웅다웅 하지 말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명랑한 감성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라고 녀석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삶의 기본 가치 이를 테면 성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배려할 것 등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 하루가 근심으로 얼룩지는 건 이런 선(善)의 기준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만 보면 오늘 하루도 만족함이 없이 보냈습니다. 늦잠으로 시간을 축냈고, 저녁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도 무너뜨렸습니다. 가족이나 타인에 대한 마음 씀도 부족했습니다. 후회와 번민은 큰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데서 생깁니다. 하루살이 버섯만큼 짧은 생의 주기에도 최선을 다하는데, 사람살이라는 맞춤한 생의 주기가 주어졌는데도 하루살이 버섯보다도 못한 시간을 꾸려서야 될는지. 하루살이 버섯이라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비춰보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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