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눈에 비친 기묘한 세상
고양이의 눈에 비친 기묘한 세상
  • 등록일 2020.11.23 19:28
  • 게재일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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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신경쇠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작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를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는 소설가로서 점점 유명해져 여러 작품을 통해 일본의 국민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그다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당연스레 알고 있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1905년 1월 하이쿠 잡지인 ‘호토토기스’에 그저 장난처럼 실은 이 소설로 소세키는 일약 일본의 국민작가가 될 수 있었다. 도쿄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곳저곳의 중, 고등학교에서 교사나 대학의 강사를 하고 있던 소세키는 대학 친구인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1867~1902)를 따라 하이쿠를 짓거나 하면서 문학 창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별로 대단한 시인은 못됐던 소세키는 시키가 만든 하이쿠 잡지에 예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게재했고, 그로부터 메이지 말년에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다. 고양이의 눈으로 비친 성격이 고약한 서생에 불과한 소세키 자신과 그가 바라보고 있는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풍자가 당시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줬을 것이 틀림 없다. 여전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존재이다.

사실,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본다고 하는 시선이나 상상이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차피 고양이의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작가가 제멋대로 보고 싶은 대로 떠올린 것뿐이다. 고양이 같은 동물이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인간의 사고를 동물에게 투영하는 인간주의의 기운이 이 소설의 한켠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저만치서 나를 응시하면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자기 논리를 갖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그 속에 인간이나 할 법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의 눈이 주는 응시의 힘이다. 이 소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를 떠올리며, 그에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투영하는 사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양이가 바라보고 있는 인간 세계가 바로 작가인 소세키 자신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는 여기에서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선생 노릇을 고달파하면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있거나 서재에서 낮잠을 자면서 펼쳐 놓은 책에 침을 흘리거나 엄청난 양의 대식을 하면서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는 소세키의 민낯이 고양이의 눈을 통해 가장 투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 이후, ‘마쓰야마’에 내려가 교사를 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 ‘도련님’에서 인간의 삶 속에 들어 있는 맹목적 허위의식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보여줬던 소세키는 여기에서도 다름 아니라 고양이의 눈을 통해 자기 모멸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재미있게 담아내고 있다.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이 땅에 떨어지면, 그 순간 왠지 그 동전이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기존에 만들어진 인간 관계들로부터 벗어나 삶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좀 더 기묘해지고, 좀 더 재미있어진다. 우리가 아직 이름도 없는 이 고양이의 눈을 따라 성격 고약한 주인과 그 주변의 인간 세계를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목매고 있는 모든 의미들이나 가치들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서 마사오카 시키 문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1874~1959)는 소세키를 기억하는 글에서 소설가로 유명해진 이후의 소세키가 아니라 함께 시를 짓거나 하면서 좌충우돌했을 때의 소세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른바 소세키적인 세계는 여기에서 출발해서 더 먼 어딘가로 나아갔지만, 그 세계의 본령은 늘 이 지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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