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그리고 삼성
이건희 그리고 삼성
  • 등록일 2020.10.29 18:32
  • 게재일 2020.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Samsung is proud of being a part of Boston” (삼성은 보스턴 가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미국 보스턴공항 내 천장에 플래카드에 쓰여있는 문구이다. 하버드, MIT 대학이 있는 세계 학문의 중심이고 미국 개척의 시발점인 도시 보스턴시에 삼성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는 것은 한국민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준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3남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선대를 이어 1987년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호언하였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 한국의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으로 성장시킨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단호한 승부사인 이건희 회장의 강한 의욕이 있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30여 년 후 400조에 가까운 40배 성장을 보이면서 한국정부의 총 수입보다 많아졌다.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도 한국은 할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건희는 외쳤다. “언제까지 일본의 기술 속국으로 남을 수는 없으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1986년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이후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에 고취된 이 회장은 품질에 눈을 돌리며 90년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선언과 함께 역사적인 신경영 선언을 내놓기에 이른다.

그는 “일류가 아니면 생산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며 품질에 문제가 있는 휴대폰 애니콜 500억어치를 불태우는 강수를 둔 끝에 애니콜은 1995년 8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

80년대 미국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들은 소니만을 칭찬하고 삼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했던 삼성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삼성전자 TV라든가 특히 삼성 스마트폰 이런 것들이 미국 가전제품 상가의 전시대 맨 앞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이건희가 생전에 남긴 이 한 마디는 이제 삼성의 또다른 도약의 깃발을 품고 있다. 삼성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전세계에 한국을 알렸다. 일부 국민의 삼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하여도 삼성이 한국민들에게 자긍심을 갖게해 주고 한국을 세계화 시킨 그 성과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