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를 생각하며 세팅한 사과 반쪽과 숟가락.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이가 몇 개 없으셨다. 내 기억에 할머니는 입술 밖으로 살짝 튀어나온 아래 송곳니 하나와 그와 비껴 달려 있는 윗니 두 개가 잇몸에 남아 있으셨다. 그런데 나는 모든 이가 멀쩡한데도 애늙은이란 별명처럼 딱딱한 음식은 잘 씹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내게 할머니는 사과를 깨끗하게 씻은 후 껍질째 사과를 반 쪼개서 할머니의 왼손바닥에 사과를 얹어 쥐시고는 밥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주셨다.

그렇게 숟가락으로 긁어주셨던 사과는 어찌나 달고 잘도 넘어가던지, 사과 반쪽이 순식간에 내 입속으로 꿀떡꿀떡 들어왔다. 과육이 숟가락에 반 정도 차면 입안에 침이 고이며 빨리 사과가 갈아지길 기다렸고, 그렇게 가운데 씨를 중심으로 사과는 위아래 꼭지를 빼고 껍질만 남아 그릇처럼 비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쉬지 않고 사과를 갈아내셨던 할머니는 얼마나 손목이 아프셨을까 싶다. 그때의 내 모습은 마치 맛난 간식 앞에서 빨리 그걸 넘겨주길 바라는 댕댕이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할머니는 머리숱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셨는데도 정갈하게 쪽 머리를 하셨고 할머니의 물건 꾸러미에는 참빗이 있었다. 그리고 꽤나 오래 사용하신 듯한 낡은 은비녀를 쓰셨다.

나는 아침에 할머니께서 쪽 머리를 하시기 전 풀어 내려진 할머니의 긴 머리 길이를 보고 놀랐고, 그 머리를 가지런히 참빗으로 빗으신 후 말아 올려 쪽지시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었다. 우리와 늘 함께 사셨던 게 아니라 어쩌다 다니러 오시면 내게 사과를 갈아주셨던 할머니. 다 비워졌던 사과 껍질처럼 할머니의 몸무게가 가벼워지셨을 그 언젠가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가끔 사과를 보면 한번 숟가락으로 갈아 먹어볼까 하는 생각과 할머니께서 갈아주신 사과즙의 달콤함과 너무 어려서 뭔가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아릿함이 겹쳐진다.

/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