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7) 철길숲

솟대와 어우러진 철길숲 풍경
솟대와 어우러진 철길숲 풍경

오래전 기차가 달리던 철길이 이제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가 되었다. 열차를 타고 이동했던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 우현동에서 효자동까지 꽃, 나무, 숲, 물, 조형물이 어우러진 ‘철길숲(Forail)’은 포항의 새로운 명소다.

침체 된 원도심에 녹색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들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고 있는 철길숲(Forail)은 숲(Forest)과 철길(Rail)의 합성어다. 약 100년간 동해남부선을 달리던 기차가 멈추고 소임을 다한 철로가 숲과 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우현동에서 옛 포항역(서산터널)까지 1차 구간(2.3㎞)이 2011년에, 옛 포항역에서 효자교회 앞까지 2차 구간(4.3㎞)이 2018년에 완료되었다. 단절구간인 효자-유강IC 구간(2.7㎞)도 곧 완성될 예정이다.

철길숲은 테마별로 어울누리 길, 활력의 길, 여유가 있는 띠앗길, 추억의 길로 나눠 조성되었다. 구간마다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잘 닦여 있고, 운동기구, 벤치, 정자가 놓여져 시민들이 길을 따라 걸으며 운동과 휴식을 겸할 수 있다. 덕수공원과 어우러진 호국보훈의 길, 서산터널에서 우현동 사이 여성아이병원 뒤편으로는 태교의 길, 양학동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예방 보듬마을, 불종로 안심마을 등 지역 특색과 연계한 길도 눈길을 끈다.

 

우현동~효자동 총 6.6㎞ ‘철길숲’으로 변신

활력의 길·추억의 길 등 테마별로 꾸며져

시민 휴식터 자리잡으며 원도심에 활력

24시간 타오르는 불꽃 보존한 ‘불의 정원’

스틸아트 작품 등 포항 상징 눈길 잡지만

핫스팟 한번에 볼 수 있는 전망대·트램 등

다양한 즐길거리 운영도 고려해 봤으면

철길숲 전경
철길숲 전경

□ 어울누리 길-불의 정원, 증기기관차 등 볼거리

어울누리 길은 옛 효자역 부근 효자교회 앞에서 시작된다. 입구의 커다란 표지석이 당산목 팽나무와 함께 시민들을 반긴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시멘트로 덮인 철길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익살맞은 표정의 장승들은 웃음을 자아내고 댄싱프로미너드, 랜드폼이 흥미를 끈다. 성모병원 가는 길 인근 작은 안내소에서 철길숲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어울누리 길의 압권은 불의 정원이다. 철길숲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관정 굴착 작업 중 지하 200m지점에서 나온 천연가스에 불꽃이 옮겨붙어 현재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 24시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발굴 상태 그대로 보존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불의 정원 옆에는 끊긴 철길 위를 달리는 형상의 증기기관차 ‘미카’가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 서 있다. 곳곳에 정자와 벤치가 놓여 있고 단체와 개인이 기증한 수목과 장미가 숲을 이룬다.

□ 활력의 길-스틸아트 작품 보는 재미가 쏠쏠

활력의 길은 대잠 고가차도 아래가 출발점이다. 시민들의 주체적인 이용공간인 한터 마당에서는 에어로빅, 기체조, 심폐소생술 시연 같은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음악 바닥분수는 코로나19로 작동을 하지 않지만, 주변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와도 좋은 곳이다. 팽나무 숲과 메타세쿼이아 길 아래에는 들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반대편 대나무숲 뒤로 그린웨이 도시 텃밭이 조성되는 중이다.

군데군데 스틸아트페스티벌 출품작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일로, 자연을 보다, 물에 물주는 소녀,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 도약, 기념비적 기념물 등. 그중 오픈 스튜디오 부근 광장에 설치된 ‘만남 2017’은 역상 조각 제작으로 유명한 이용덕 작가와 포스코의 만남이 빚어낸 수작이다.

 

음악분수
음악분수

□ 여유가 있는 띠앗길-숲 갤러리 지나면 구릉과 자전거길 펼쳐져

이 길은 득량 건널목, 양학 건널목, 학잠 건널목을 지나 용흥 고가차도까지 이어진다. 양학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치매 보듬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치매 보듬마을 프로젝트는 치매 환자와 인지 저하자가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가족과 이웃의 관심과 돌봄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주민참여사업이다. 가정과 가족 구성원을 떠올리게 되는 구간이다.

박공지붕의 숲 갤러리에는 철길숲 조성 전과 후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입구에는 첼로 형상의 식수대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구릉과 보도, 자전거길이 동시에 펼쳐지면서 언제부턴가 잠자리 한 마리가 따라온다. 삽상한 바람이 불면 구릉길의 풀들이 정겹게 엎드린다. 말 그대로 여유가 있는 띠앗길이다. 띠앗이란 형제나 자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다.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낮은 집들이 어릴 적 떠나온 고향 마을 같다.

□ 추억의 길-옛 포항역 거닐면 추억이 떠올라

용흥 건널목에는 철도 건널목을 지키던 낡은 초소가 그대로 남아있다. 길을 건너면 자갈길과 숲길이 선택을 기다린다. 자갈길은 옛 철도 차량정비소를 지나 안포 가도까지 이어진다. 가장자리는 펜스로 이어졌고 풀들로 무성하다. 철거하다 만 것 같은 건물도 몇 동 흔적이 남아있다. 한적한 포항역 일대는 무언가 변화를 앞두고 고심하는 모양새다.

옛 포항역 주변 허공으로 구름다리가 길게 떠 있다. 오래된 육교 역시 인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역이 사라진 일대는 도로가 개설돼 용흥동과 중앙동을 횡으로 잇는다. 안포 건널목을 건너 범죄 없는 불종로 안심마을 구역을 지난다. 서산터널이 있는 도로에 이르면 철길숲 2구간이 끝나고 2011년 조성이 완료된 우현동 유성여고 앞까지 1구간이 시작된다.

 

불의 정원
불의 정원

□ 서산터널에서 유성여고 앞-지역과 애환을 함께한 덕수공원 만나

서산터널 앞 도로를 가로질러 나루끝으로 가다 보면 수도산을 만나게 된다. 산자락에 위치한 덕수공원에는 6·25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충혼탑과 지역문화 창달에 일생을 바친 재생 이명석 선생의 문화공덕비가 서 있다. 사방이 확 트인 우현 사거리 부근에 이르면 문득 길을 잃은 듯 도로가 앞을 막아선다. 하지만 몇 걸음 비켜서면 여태 달려온 길을 한곳으로 모으려는 듯 지하통로가 열린다.

그린웨이를 홍보하는 현수막 몇 장이 벽면을 장식하는 지하통로를 지나면 불미숲이다. 불미숲은 여성아이병원에서 유성여고 앞까지 엄마랑 아기가 함께하는 ‘태교의 길’을 콘셉트로 한다. 길이는 짧지만, 흙길이고 벤치가 많아 쉴 곳도 많다. 어머니의 기도, 아버지의 기도가 적힌 액자 앞에 서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여성아이병원 앞마당으로 가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형들로 꾸며진 광장이 보인다.

□ 경의선 숲길 등 철길숲의 모범사례

서울 연남동 경의선 숲길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중 서울역에서 문산역까지 광역전철이 지하로 개통되면서 용산에서 가좌까지 지상에 조성된 숲길이다. 6.3㎞ 구간에 다양한 테마로 조성된 레트로 감성의 숲길이다. 책거리, 연트럴파크, 노벨길이 있고 핸드메이드 소품을 파는 플리마켓과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스튜디오가 운영된다.

8.1㎞ 광주 푸른길 공원은 2000년 폐선된 뒤 공원으로 탈바꿈된 시민 참여형 공원이다. 오감길, 배움길, 물숲길, 이음길이 있으며 맛집, 푸른길 작은 도서관, 교복 나눔 공유센터가 있다. 토요 장터인 상생마켓도 열린다. 군산시는 폐철도를 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가선 트램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폐철도를 활용한 트램을 도입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서울로 7017’의 모델이 된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는 500종 이상의 식물과 나무가 식재되어 있으며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사는 도시를 대변하듯 각종 조형물, 설치미술, 벽화, 구조물 등이 풍부하다. 하이라인파크와 연결된 첼시마켓은 수백 년 된 황량한 공장지대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뉴욕의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되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가 함께한 하이라인파크는 ‘하이라인 효과(High Line Effect)’라는 용어까지 회자되게 만든, 오래된 것은 보존하고 새로움도 함께 포용한 도시재생의 좋은 표본이라 할 수 있다.

□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 반영해야

포항시는 2016년부터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삶의 질 개선에 역점을 두는 도시 활성화 전략인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숲과 물길을 더한 쾌적한 도시, 사람이 머무르는 매력적인 도시, 즐길 거리가 있는 재미있는 도시 등 3대 추진 방향을 설정했으며, 그중 철길숲을 통한 지속 가능한 미래형 녹색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철길숲을 걸을 때마다 포항을 소재로 한 시화 전시, 책거리와 전망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옛 포항역을 복원하거나 옛 철길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는 철길숲 체험공간이 생겨도 좋을 것이다. 일정 구간을 철길숲만의 상징으로 디자인한 트램을 운행한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떤 시설보다 사람이 먼저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행복한 미래를 함께 가꾸어가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폐철도 공원화 사업으로 조성된 철길숲은 이제 많은 시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큰 활력을 주고 시민들의 휴식처와 문화공간이 된 것이다. 이 숲길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더 친숙하고 유용한 시민들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녹슨 철길이 초록으로 물든 철길숲에 시민들의 다양한 상상력이 계속 반영됨으로써 철길숲이 시민들의 진정한 자긍심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안성용>

 

글/김영

소설가,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평사리문학상·천강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