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가민가 했는데… 여전히 나훈아였다
긴가민가 했는데… 여전히 나훈아였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10.04 20:08
  • 게재일 2020.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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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명절 달랜 시원한 무대
코로나 지친 국민에 감동 세례
작심한 듯 발언엔 뜨거운 반응
가황다운 면모로 ‘나훈아 열풍’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나훈아’의 공연 모습(KBS 캡처) /연합뉴스

대중예술가와 정치인은 한두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 둘은 모두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지지기반으로 존재하고 성장한다. 그렇기에 둘에게 가장 무서운 건 비난과 비판이 아닌 무관심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관심’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정치인이나 대중예술가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무를 줄 때다. 감동 없는 정치, 서민을 위무하지 못하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한국인들이 시원스런 목소리를 가진 대중예술가 한 명이 선물한 위무와 감동에 환호하고 있다.

2020년 추석 하루 전. 즐거워야 할 명절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함을 숨길 수 없던 가족들이 TV 앞에 모여 앉았다. 그때 나훈아가 등장했다. 일흔셋이라는 나이와는 무관하게 20대의 젊은 패션 감각을 선보이며.

그날 나훈아는 하루에도 몇 명씩 신인가수가 생겨나는 정글 같은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50년 이상 가장 높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단박에 실감하게 해줬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그의 노래 수십 곡은 옆에 앉은 어머니의 주름살을 물기 어린 눈으로 돌아보게 했고, 부모 곁으로 귀향하지 못한 자식들의 등을 따스하게 쓰다듬었다. 이걸 ‘위무’ 외에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노래만이 아니었다. 공연의 사이사이 나훈아가 던진 말들은 정치적 허언(虛言)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선물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나라를 지킨 것은 바로 국민 여러분들이다.” 이는 반세기 넘는 세월 내내 자신의 지지기반이 돼준 국민들에게 보내는 가없는 신뢰감의 표현이었을 터. 나훈아는 관객과 자신이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받는 존재임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 다음날부터 며칠째 인터넷 공간이 ‘대한민국 어게인’ ‘테스형’ ‘나훈아 발언’ 등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감동과 위무를 받은 사람들이 그걸 선물한 대중예술가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게 부러워서였을까? 정치인들도 한가위에 불어닥친 ‘나훈아 열풍’에 주목하며 숟가락 얹기에 나서고 있다. 정치인 SNS가 연일 ‘나훈아’로 도배 중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앞서 말했듯 그들의 지지기반 역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나훈아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거침없는 어법과 행동으로 수십 년 시종했다.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재벌 앞에서의 단독 콘서트를 “내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으로 표 사서 들어오면 된다”며 단칼에 거절했고, 오해받는 후배 여배우를 위해 기자회견 탁자 위에서 허리띠를 풀겠다고 일갈했으며, 자신의 얼굴을 보기 열망하는 가난한 관객들을 배려해 입장권 가격을 낮췄다.

대중이 열광하는 최근 나훈아 열풍의 배경엔 이런 장구한 역사가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은 그 연장선에서 해석돼야 한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꼬리에 불붙은 말에 올라탄 듯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나훈아의 말을 해석해 견강부회(牽強附會)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대중에게 감동과 위무를 줄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닐까? 그렇게만 된다면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니.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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