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삼거(四不三拒)의 공직자 윤리
사불삼거(四不三拒)의 공직자 윤리
  • 등록일 2020.08.10 18:47
  • 게재일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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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 중기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은 남인의 핵심이자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립되었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당시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허목의 저서 ‘기언, 허미수자명(記言,許眉<53DF>自銘)’에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올려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네/ 부질없이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였네/ 이에 돌에 새겨 후인을 경계하노라.’

허목은 미수(米壽)를 누리기도 했거니와 글도 많이 남겼다. 미수 스스로도 내가 기언을 지어 스스로 반성하였는데 말이 많으면 유익할 것이 없으며,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고 하였다. 그중에 큰 것을 들면 자서(自序)가 2편이고 정사(政事)를 논한 것이 30편이니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미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자서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이 자찬 묘비명은 자서를 축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았던 분이 고종(考終)을 앞에 두고 132자의 짧은 글로 자신의 일생을 관조한 것이다. 말이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미수의 자명은 행한 것은 말과 일치하지 못했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겸사이겠지만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물론 선현이라고 해서 언행일치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군자는 말이 그 행실을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공자의 말씀도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예전 같으면 생을 마감했을 나이에 다시 불혹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공복(公僕)이다. 이 말은 국가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즉 국민의 일꾼으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감을 주는 공무원과 공복의 차이는 책임감과 사명감일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존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런 마음가짐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결국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면 어떤 권력과 권한 속에서도 중용을 잃지 않고 영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옛 관리들은 스스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을 정하여 규율로 삼았다. 첫째, 재임 중에는 부업을 갖지 않는다. 둘째, 재임 중에는 집을 늘리지 않는다. 셋째, 재임 중에는 부동산을 취득하지 않는다. 넷째, 재임지의 특산물을 결코 취하거나 먹지 않는다. 다섯째, 윗사람의 부당한 청을 거절한다. 여섯째, 재임 중 경조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다. 일곱, 어떤 답례도 받지 않는다. 이것의 실천이 공복의 참길이다. 지금 국민 앞에 편 갈라 갑질을 해대는 공직자들이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살기를 다한다면 생의 마지막에 회한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래야 미수가 후인을 경계한 보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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