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을 그리다
접시꽃을 그리다
  • 등록일 2020.08.09 20:11
  • 게재일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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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필로 접시꽃을 한 송이씩 피우고 있다.

수채화 교실에서 접시꽃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기 전 날, 그릴 주인공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더 잘 그릴 거 같아서 찾아보았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이겠거니 했다가 자료를 보니 예상이 빗나간 걸 알았다. 신라 말에 중국에 유학 간 최치원이 ‘촉규화’란 제목으로 접시꽃을 노래한 시가 기록으로 전해진다.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6두품이라 출세하지 못하는 자신을 접시꽃에 비유했다. 중국에서는 접시꽃 잎이 아욱을 닮았다 해서 촉규화라고 했다.

또 조선시대에는 어사화라고도 했다. 장원 급제자의 삼일유가(三日遊街)에 쓰였기 때문이다. 장원을 한 급제자가 삼 일 동안 부모님과 친인척,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풍속이다. 유가 행렬의 선두에 있는 인물은 붉은색 천으로 싼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들고 가고 그 뒤로 7명의 악사가 풍악을 울리며 홍패를 든 이를 따라가고, 악사의 뒤를 이어 광대와 재인들이 재담을 늘어놓거나 춤을 추면서, 구경꾼들의 시선을 붙든다. 장원 급제자는 녹색의 단령을 입고, 복두(<5E5E>頭)를 쓰고, 어사화(御史花)를 머리 위에 꽂았는데, 이때 능소화와 더불어 사용한 꽃이 접시꽃이었다. 일반적으로 어사화는 복두 뒤에 꽂고, 명주 실로 잡아 맨 후, 머리 위로 넘겨 명주실을 입에 물었다.

악사가 풍악을 울리고, 재인이 재주를 넘고, 춤을 추며 가는 행렬이다 보니, 삼일유가 행렬은 동네 사람들에겐 무척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여인과 아이들은 담장 너머로 행렬을 지켜보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들창을 열어 행렬을 구경했다고 한다. 고샅길을 내다보려고 키를 담장 높이까지 키운 접시꽃은 마치 구경에 취해 볼이 발그레한 새색시를 닮았다.

경주 첨성대 앞 꽃밭에 접시꽃이 한창이다. 여름이 시작할 때 피기 시작해서 가을이 시작 될 즈음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접시꽃은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란다.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 할머니들이 좋아해서인지 지금쯤 시골 골목길에 들어서면 흙담을 등지고 기대 선 접시꽃을 만나기 마련이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영양번식을 하고 이듬해 줄기를 키우면서 꽃이 핀다.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꽃의 색깔은 진분홍과 흰색 그리고 중간색으로 나타난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무성하게 줄기를 곧게 뻗어 잎사귀 사이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의 모양이 자동차 바퀴처럼 닮아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씨앗이 촘촘하게 바퀴의 타이어모양으로 둘러싸여 여물고 마르면 갈라지고 떨어진다.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으로 불리어졌다고도 하고 꽃의 모양이 접시와 비슷하게 보여 그리 불린다고도 한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버릴 게 없다. 특히 여성에게 유익하다고 동의보감에도 전한다. 불임을 치료했다고도 하니 보기에도 좋고 사람 몸에도 좋은 꽃이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수채화 선생님을 따라 붓을 들었다. 세필로 줄기를 먼저 그린다. 줄기에 잔가지를 달고 꽃 몽우리를 봉긋하게 그린다. 물을 더 섞어 잎을 그리고 난 후, 더 짙은 초록색을 찍어 몽우리 끝에 점을 찍어 준다. 이제 꽃을 피울 차례다. 분홍색과 빨강을 적당히 섞어 꽃의 농도를 조절한다. 활짝 핀 모양과 막 피려는 봉오리와 또르르 말려 떨어지기 전의 꽃을 차례로 그렸다. 접시꽃이 화면 가득 피었다.

신라시대의 할머니들이 뜰에 심어 천년이 넘도록 우리 곁에서 피어나도록 잘 간직한 접시꽃이다. 꽃도 우리에게 간직되기 위해 색깔도 더 곱게, 온 몸을 영양 가득하게 키워 약재가 되었다. 자연이 아닌 사람이 꽃을 피우는 일이 쉬운 게 아닌 것이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접시꽃을 가득 그리다보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더운 여름을 잘 지나가는 묘수가 그림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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