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시장을 추모한다
고(故) 박원순 시장을 추모한다
  • 등록일 2020.07.14 20:11
  • 게재일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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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박원순 시장은 지난 10일 북악산에서 자살로서 한 많은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 풍토에서 시민운동의 대부였으며 최장수 서울 시장인 그의 갑작스런 자살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서울 시정을 개혁적으로 이끌고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그의 자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비극이다. 항상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의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그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그는 평소 ‘꿈을 가진 사람은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는 이제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유언만 남기고 고향의 부모님 곁으로 내려가 버렸다.


박원순은 고시 합격 후 검사직을 포기하고 스스로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87 민중 항쟁 후 참여연대를 창설하여 시민운동의 토대를 굳건히 다졌다. 당시 하향식 공천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낙천 낙선운동’을 통하여 매니페스토 운동을 정착시키려 무던히 노력하였다. 당시 시민운동을 하던 나는 그를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권력이라는 꽃길을 버리고 스스로 택한 그의 고난의 길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그의 유언장은 이를 잘 입증한다.

2018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우리 일행은 서울 시장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 시청 그의 집무실은 예상과 달리 무척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의 집무실 책상 정면에는 서울 시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 상황판이 비치고 있었다. 서울의 교통, 소방, 치안뿐 아니라 의료, 복지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치였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차림으로 서울 시정을 소개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3선 시장으로서 관록이 쌓였는데도 그는 권위주의적 모습은 티끌만큼도 찾아 볼 수 없고, 대중 친화적 그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다.

박 시장은 생을 마감하기 전날까지 착실히 공무를 수행하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자살 전날까지 분초를 다투는 일정을 충실히 소화하였다. 전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부동산 대책관련 회의를 가졌고, 서울 판 그린 뉴 딜 정책까지 직접 발표하였다. 며칠 전 CBS ‘김현정의 뉴스 쇼’에는 직접 앵커로 출연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살 당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오찬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통화까지 하였다. 그는 2명의 자녀 결혼도 시키지 못하고 6억여 원의 부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원순 시장이 비극적 선택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의 자살은 여직원의 형사 고소 사건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론을 맡아 배상판결을 이끈 적도 있다. 평생 인권 운동가로 더구나 여성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하던 그였지만 성추행 피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 앞에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결국 그는 노무현, 노회찬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인 박원순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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