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려고 혼자 산속에 들어가 살다보니 어느 샌가 암 덩이가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를 더러 듣는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삶에 대한 미련조차 버렸을 때, 오히려 죽음이 비켜가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着)이 진리인 까닭이랄까. 예수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자기를 버린’ 기독교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물론 진정 하심(下心)을 가진 불교도를 보지도 못했다.

텔레비전 종교방송에 나오는 유명 설교(설법)자들도 대다수가 덕지덕지 아집과 독선에 찌든 모습이었다. 입으로 청산유수 경전과 교리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아집과 독선의 도그마에 더 깊이 빠져 있는 걸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이 깨달은 예수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비록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고, 관자재보살은 오온(五蘊)이 다 공(空)임을 조견(照見)하고 일체고액(一切苦厄)을 건너 구경열반(究竟涅槃)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空)이고 무(無)인데 무엇에 집착을 하고 무얼 안다고 잘난 체 하는가,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교인들의 헌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치부(致富)하는 목사들, 정치적 이념에 함몰되어 사리분별을 못 하는 신부들, 주지자리를 놓고 유혈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신도들 시줏돈으로 룸싸롱에 드나들고 도박판을 벌이는 승려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지렁이들보다 무얼 잘 안다는 자들이 사실은 예수나 붓다에게서 훨씬 더 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랑이란 그저 사랑하는 것이고, 공(空)은 무(無)일 뿐인데 도대체 무얼 알고 뭐가 잘났다는 것인가, 일찍이 노자(老子)는 도(道)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도(道)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도니 법이니 떠들어대는 자체가 부질없다는 것이다.

무얼 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속박이고 감옥이라는 걸 깨닫는 일은 쉽지가 않다,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보다도 더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안다’는 독선과 아집이다.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창녀나 도둑놈들이 목사나 승려들보다 오히려 예수나 붓다에 더 가까울 수 있는 까닭이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처럼 기독교나 불교의 교리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을 때 오히려 진면목이 보이는 게 아닐까.

종교계가 그럴진대 정치판이야 오죽할까. 권력에 눈이 멀고 당리당략에 함몰되면 아집과 파렴치의 화신이 되기 십상이라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권력의 칼자루를 쥐면 법이고 윤리고 다 팽개치고 자기편이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비호하고 밀어붙이는 후안무치가 판을 치고 있다. 검찰이 지난 정권의 비리에 칼을 휘두를 때는 박수를 치더니 그 칼끝이 자신들을 겨누자 온갖 협박과 중상모략으로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혈안이 된 정부와 여권의 작태가 참으로 악착스럽고 노골적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쯤에서 그만 내려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