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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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문턱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농촌에서는 보리밟기 행사가 열린다.

겨울 추위로 들뜬 땅에 보리밟기를 함으로써 뿌리를 밀착시켜 주어 뿌리를 튼튼히 하고 많은 결실을 맺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겨울철의 대표적인 밭농사 작업 중 하나이다.

보통 가족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월에 펼쳐지는 다양한 가족 놀이와 함께 겨울철의 대표적인 가족행사로 보리밟기는 자리잡았다. 이웃들도 함께 어울려 때론 수십명이 어깨를 잡고 보리를 밟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다.

지금은 보리농사의 축소로 보리밟기는 점점 사라져 가는 풍습이지만 가족 간의 협동과 사랑을 느끼는 대표적인 아름다운 농촌의 풍습이다.

60∼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이웃의 큰 부러움을 사던 시절 ‘보리밟기’라는 TV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미국 이민을 가기 위해 들뜬 엄마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자신도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서툰 발음으로 책을 들고 이방 저방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던 그 엄마의 모습은 자유분방한 나라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흥분과 함께 코믹하게 투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대반전이 일어난다. 드라마 말미에 보리밟기의 모습이 비추어 지면서 집의 대부격인 할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그 보리밟기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보리는 밟아주어야만 잘 자란다. 꼭 자유분방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다”라는 교훈이 주어진다.

40여 년이 지난 요즘도 그 드라마의 감동이 잔잔히 다가온다.

금년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금 전국이 어지럽다. 벌써 금년도 상반기가 지났지만 바이러스는 고개를 숙일 기세가 아니다.

필자가 주관하여 매년 개최하는 대학평가 관련 포럼도 금년에는 온라인으로 전환될 위기에 있다.

대학가에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입학식 등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고,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강의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상 캠퍼스는 정지 되었다. 싱그러운 젊음이 넘쳐야할 캠퍼스에는 학생이 보이지 않고 활기가 없이 적막감만 감돈다.

갑자기 보리밟기가 생각난다.

보리는 밟아야 더 성장한다는데 이러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고통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보리밟기와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생관념은 더 철저해졌고 근검절약을 배우는 게 몸에 밴다. 다양한 온라인 상의 새로운 경제 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대학은 온라인 강좌 등 강의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다.

긍정적 사고로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고 나면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경제를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금 보리밟기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