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며
텃밭을 가꾸며
  • 등록일 2020.06.02 19:51
  • 게재일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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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주택가 변두리에 살면서 작은 텃밭과 정원을 가꿔온지 십 수년, 단조로운 일상의 리듬과 소소한 소일거리로 삼으니 넉넉하기만 하다. 텃밭이라야 손바닥만한 두어 평에 불과하고, 뒤뜰 역시 그다지 넓거나 비좁지 않은 둘레지만, 그 나름의 구실을 다해가며 도심 속 전원의 맛을 조금이나마 누리게 해주고 있다. 땅을 밟거나 흙을 만지는 일들이 흔치 않은 도시생활에 미미하지만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고나 해야 할까?


‘아지랑이 피어나는 설레임의 한 켠에/땅을 파고 이랑 갈아 씨앗 몇 점 뿌리며/두어 평 일구는 텃밭/작은 행복 심는다//흙의 숨결 느끼며 땅의 말씀 귀담으며/거름을 주고 북돋움도 하면서/쏠쏠히 꿈을 키우듯/애틋하게 보듬네’ -졸(拙)시조 ‘텃밭을 가꾸며’ 중에서-

상추, 고추, 배추, 열무, 정구지, 미나리 등 십여 가지 채소를 심어놓은 채전(菜田)에 수시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다 보면, 어느새 말쑥하고 푸르싱싱하게 자라나는 푸성귀들이 새뜻하고 착하게만 보인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작물은 관심과 보살핌에 따라 튼실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쑥쑥 자라난 푸성귀를 쌈이나 겉절이, 전 따위로 즉석에서 부쳐서 먹거나, 적은 양이지만 이웃에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밥상머리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작은 텃밭의 채소가 큰 인정을 나누는 배려의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과 정원을 거닐다 보면 식물과 나무, 곤충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읽어낼 수 있다. 때가 되면 움과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돋아나며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 익숙하지만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또한 뒤뜰 주위를 즐겨 찾는 새들은 그들만의 지저귐으로 다정한 대화와 사랑노래를 나누며, 물이 고인 작은 돌확에 차례대로 내려앉아 물을 먹는 모습이 앙증스럽기만 하다. 같은 무리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며 지켜가는 일들이 당연시되는 동·식물들의 생장현상 같지만, 가까이서 자주 살펴보면 의외로 보이는 것들이 많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경이로운 부분이 있다. 예컨대 꽃을 꺾거나 식물의 줄기를 자르면 그 가냘픈 비명소리를 고양이 따위의 동물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자연계의 천지만물은 어떤 오묘한 법칙이나 질서 속에서 존재하고 생멸을 거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텃밭과 정원은 자연만물이 다 그러하듯이 생명의 움직임이 있어야 유지되고 자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일이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事雖小 不作不成)는 말은, 결국 어떤 일의 시도와 움직임의 힘을 강조한 것이다. 움직임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과 지속성이다. 급하게 빨리 보다는, 제대로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다. 정성으로 가꾸고 다듬고 손질하려는 끈덕진 노력의 손길이 없다면, 아무리 작은 뜨락과 밭뙈기라도 이내 잡초가 무성해지고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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