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용 숙

너는 세월을 안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슬픔의 뒤주 한 채

가슴에 들여놓았다

유장한 세월

물같이 흐르는 세월도

담았다 꺼내면

오늘인 듯 볼 수 있는

그런 뒤주 품었다

눈앞에서 사라져

평생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마음에 담아둔 우리 말들은

긴 강의 끝에서도 들릴 것이다

어느 날 석양에 물든 하늘이

고운 사랑으로 비쳐지고

그리움이 눈동자 깊이

길을 내면

달처럼 여위어가는

너의 소리

나는 또 듣겠네

별리(別離)의 절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슬픔의 뒤주 한 채를 가슴에 들여 놓았다’라는 시인은 떠나는 이를 쉬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긴 강의 끝에서, 석양 물든 하늘가에서 그와 다시 만나 마음에 담아둔 말을 나누겠다는 가슴 뜨거운 사랑과 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와의 석별의 아쉬움과 그 슬픔을 극복하며 또 다른 기다림으로 승화시켜나가려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 자락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