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포항 홍보대사가 되고픈 ‘경찰 가수’ 권영삼
노래하는 포항 홍보대사가 되고픈 ‘경찰 가수’ 권영삼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5.13 20:20
  • 게재일 2020.0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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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 도움 주는 경찰
대중에게 행복 주는 가수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

관객들과의 만남을 즐거워하며 축제무대에서 열창하는 권영삼 씨.
관객들과의 만남을 즐거워하며 축제무대에서 열창하는 권영삼 씨.

최근 높은 인기를 얻으며 방영된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을 안타까운 눈길로 지켜본 사람이 있다. ‘노래하는 경찰’로 이름이 알려진 권영삼(52) 경위다.

‘46세 이하’라는 자격 요건에 걸려 도전을 포기해야 했던 권씨는 다른 가수가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을 터.

1992년 경찰이 됐고, 1997년 가수로 데뷔한 권영삼 씨는 세상 무엇보다 노래와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가졌던 아쉬움과 부러움이 충분히 이해된다.
 

고교 졸업 전 라이브 무대에 섰지만

잠시 가수 꿈 접고 1992년 경찰에 합격

1996년 전국노래자랑 본선 수상 후

1년 뒤 첫번째 앨범 발매하며 가수 병행

20년 이상 파출소서 주민밀착 근무해 와

“지역 알리는 ‘비바 포항’·‘과메기 추억’

시민들에 힘을 주는 노래 됐으면…”




열 살도 되기 전 조용필의 노래와 몸짓을 따라하던 아이는 서른 살이 가까워서야 그토록 원하던 가수의 꿈을 이뤘다. 포항을 포함한 경북 지역 축제무대에 서며 원 없이 노래를 불렀다. 물론 본업인 경찰 직무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이젠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잘 해내기도 어려운 게 사람이다. 그런데 경찰과 가수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왔으니 권씨의 삶은 누구보다 바쁘고 드라마틱했을 게 분명하다.

웃는 모습이 소박하고 선량해 보이는 그를 지난 주말 본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아래는 “누군가에게 도움과 기쁨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경찰 가수’ 권영삼이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이다.



-태어난 곳은 어딘가. 간단하게 가족 소개도 부탁한다.

△딸기와 감자로 유명한 경북 고령이다. 1968년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고향을 떠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다녔다. 아내와 대학생인 딸, 고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는 아들과 함께 산다.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시기는.

△초등학교 다닐 때 누나가 듣던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노래를 들었다.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비련’ 등이 동요보다 좋았다. 최고의 가수를 흉내 내면서 따라 불렀다. 시골에선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으니 동네 어른들이 ‘귀엽다’며 사탕도 사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줬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가수의 꿈을 가졌던 것 같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그때도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1980년대 후반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대구의 라이브 무대에 서기도 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노래 하러 다니는 나를 걱정한 작은형에게 잡혀 학교로 돌아갔다. 고교 졸업장은 받아야 했으니까.(웃음) 졸업 이후엔 잠시 가수의 꿈을 접고 의무 경찰로 복무했다.



-경찰이 된 건 언제인지.

△1987년 고교 졸업 후 바로 입대했다. 제대한 게 1990년이다. 의경 시절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경찰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공무원인 아버지와 형의 권유로 경찰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그 기간이 살아오면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때다. 1992년 어렵게 합격해 포항으로 발령을 받았다. 세월은 빨라 올해로 벌써 28년을 경찰로 살아왔다.



-버리지 못했던 가수의 꿈을 이룬 건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1996년에 포항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렸다. 아마추어 가수들에겐 큰 무대다. 묻어두었던 꿈이 생각나 거기에 도전했다. 포항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본선대회에서 상반기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경찰이라는 직업과 가수 생활을 병행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당시 가족들과 주의의 반응은 어땠나.

△아버지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경찰을 그만두고 가수로 산다고 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니 좋기는 하지만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전국노래자랑 수상 이듬해인 1997년 포항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선배에게 곡을 받아 첫 번째 앨범을 냈다. 그게 벌써 23년 전이다.

 

노래엔 사람살이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는 힘이 담겼다. 노래는 삶의 희로애락을 싣고 우리 곁을 달리는 버스 같은 게 아닐까. 특히나 지금처럼 우울한 시기엔 노래가 치료제의 역할도….



-가수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1회 ‘포항 국제 불빛축제’ 무대에 섰을 때다. 조금 과장하자면 수만 명의 관객이 영일대해수욕장 해변에서 울릉도행 배가 오가는 선착장까지 들어찼다. 그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듯하다.



-가수와 경찰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가수가 됐던 초기엔 경찰서에 권위적인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경찰이 무슨 노래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노래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고, 가수 활동을 통해 주민에게 편하게 다가가 좋은 관계도 형성할 수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격려의 목소리도 많아졌다. 날 이해해준 동료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경찰로선 주로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포항남부경찰서 관내 파출소 근무를 20년 이상 했다. 이곳엔 13개의 파출소가 있다. 주로 주민들과 밀착된 경찰 관련 업무를 해왔다. 쉽게 이야기하면 시민들의 어려움을 바로 곁에서 해결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인데,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준다’는 가수 활동과도 일정 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경찰로 일하며 느꼈던 가장 큰 보람은.

△수도 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를 접하며 살았다. 과거엔 벌금을 내지 못해 수배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소액의 벌금만 내면 해결되는 것인데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은 그게 쉽지 않았다. 그들 중 몇 명에게 벌금을 빌려줬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인데, 나중에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사람을 보며 경찰로서의 기쁨을 맛봤다.



-가수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내왔으니 크게 아쉬운 건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출전하려고 마음먹었던 ‘미스터 트롯’에 나이를 이유로 나가지 못한 건 참으로 안타까웠다. 스스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46세 이하’라는 자격 요건 탓에 도전을 거부당했다. 앞으로 TV에서 이런 경연이 열린다면 나이 제한을 없앴으면 좋겠다. 꿈을 이루는데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는 건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



-포항에서 많은 무대에 섰다고 들었다. 자선공연도 여러 차례 했다던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요즘은 무대에 서기가 어렵다. 30대 때는 내가 가진 재능으로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자선공연을 자주 열었다. ‘경찰 가수’라는 타이틀이 있어 모금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 마련된 무대에서 3년쯤 연말 자선공연을 진행했다. 거기서 모인 돈은 복지센터 등에 기부했다. 한국에서도 기부문화가 좀 더 활성화됐으면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경찰과 가수 중 어떤 걸 선택하고 싶은지.

△하나만 고르지는 못하겠다.(웃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찰, 대중에게 행복감을 선물하는 가수 둘 다 하고 싶다. 이건 내 소박한 욕심이다.



-지금까지 4장의 앨범을 냈다. 당신의 노래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포항에서 경찰로 일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젠 그들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다. ‘비바 포항’과 ‘과메기 추억’은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곡이다. 타 지역에 포항을 알리고, 시민들에게 힘을 줬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내 노래가 개사돼 노인들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는 작은 역할을 했다는 것도 잊을 수 없는 보람이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가수, 어떤 경찰로 남길 원하는가.

△주민들과 잘 융화하는 경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경찰로 기억되고 싶다. 가수로 경제적 성공을 이룬다면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사람으로 살고 싶기도 하다.



-40년 이상 노래와 더불어 살았다. 노래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열풍을 보면 알겠지만, 노래엔 사람살이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는 힘이 담겼다. 노래는 삶의 희로애락을 싣고 우리 곁을 달리는 버스 같은 게 아닐까. 특히나 지금처럼 우울한 시기엔 노래가 치료제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본다.



-가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현실이 팍팍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꿈을 위한 도전을 계속하라고 격려해주고 싶다. 나도 그랬으니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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