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하나 사이에 두고 100년 된 헌책방… 동떨어진 세상 속 공간
블록 하나 사이에 두고 100년 된 헌책방… 동떨어진 세상 속 공간
  • 등록일 2020.05.12 20:03
  • 게재일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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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바닥난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바캉스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니스 해변.
바캉스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니스 해변.

◇ 니스에서 아름다운 소르본느 서점을 만나다

고모댁에 지내며 잠시 기록하는 걸 멈췄다. 매일 기록한다는 건 굉장한 인내심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잠들기 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써두지 않으면 눈을 감기 힘들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잠이 쏟아져도 기록하려 노력했던 건 오랜 기간 준비하고 떠나온 이번 여정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떠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다시 하기 힘든 경험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떠나기 위해 고생했던 것들을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남는 것은 언제나 일기와 사진뿐이었다.

40일 넘게 달려오며 바닥난 에너지를 다시 충전했다. 그래도 그냥 쉬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고모부의 설명을 들으며 니스에 있는 대부분의 미술관과 전시관을 돌아보고 문 연 지 100년 가까운(1931년) 헌책방 ‘소르본느 서점’도 다녀왔다. 프랑스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서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서점을 여러 곳 찾아다녔으나 문을 닫은 곳도 있고, 예전보다 형편이 어려워진 곳도 있었다. 그나마 소르본느 서점은 규모도 크고 갖춘 장서도 훌륭했으나 손님은 많지 않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총서가 가지런히 꽂힌 소르본느 서점의 서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총서가 가지런히 꽂힌 소르본느 서점의 서가.

한 블록만 내려가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해안도로였으나 소르본느 서점은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 속에 있는 공간 같았다. 소르본느 서점의 원주인은 러시아 혁명을 피해 니스에 정착한 망명 귀족이었다.

니스는 오랜 세월 유럽의 이름난 휴양지라 이곳을 찾고, 거주했던 예술가와 귀족들이 많았고 그 덕분인지 작은 도시임에도(35만 명, 근교 거주자 포함 100만) 그들이 남긴 문화 자산으로 풍요로운 곳이다 . 그중에서도 특히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앙리 마티스와 세잔과 피카소는 니스를 사랑했던 예술가들이다. 니스의 강렬하고 투명한 햇볕은 끊임없이 창작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매개였겠지. 그들이 만든 이야기와 작품이 남았기 때문에 니스는 단순한 휴양지 이상의 가치를 지닌 도시라고 생각했다. 도시를 풍성하게 하는 건 새로운 공장이나 건물이 아니라 예술가와 그들이 만든 이야기, 그리고 훼손하지 않은 유적과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다.

니스의 헌책방 소르본느 서점, 혁명을 피해 니스로 온 러시아 망명 귀족이 만들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서점이다.
니스의 헌책방 소르본느 서점, 혁명을 피해 니스로 온 러시아 망명 귀족이 만들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서점이다.

◇ 바르셀로나에서 작은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다

3일 동안 니스에서 충분히 쉬고 새벽 니스를 떠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야한다. 스페인으로 넘어오기 직전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톨게이트에서 줄을 잘못 서서 진땀을 뺐다. 뒤에 줄을 길게 서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게 어렵다. 스페인에 들어와선 톨게이트 앞에서 매의 눈으로 현금을 낼 수 있는 통로를 찾아들어갔다. 어떻게 결제하는지도 앞 운전자를 자세히 관찰했다.

무더위에 오토바이를 타고 대도시로 들어가는 건 항상 괴롭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시베리아의 서늘한 바람을 벌써 맞고 싶으니. 신용카드로 통행료를 내려고 했더니 불가. 결국 직원 호출 버튼을 눌러 카드번호를 불러주고서야 결제할 수 있었다. 스피커로 다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는데(프랑스어가 들릴 리가) 크레디트 카드와 넘버만 또렷하게 들렸다. 눈치가 갈수록 늘고 있다.

프랑스도 스페인도 유인 톨게이트가 없다. 모두 기계다.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기계로 대체하고 있다. 기계가 편리할 것 같지만 기계가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다.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야한다. 기업의 이익과 효율을 위해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결국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소득의 불균형을 가져올 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이틀 밤 묵고 마드리드로. 반환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선 가우디가 남긴 건축물들을 보고 싶었다. 책과 사진으로 보았던 그의 작품들은 시대와 관습을 완전히 뛰어넘는 천재의 것이었다. 하지만 숙소를 떠날 수 없었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하고 싶었던 건 모두 포기했다. 집안의 장손으로 응당 장례를 도와야했는데, 이리 멀리 떠나와 있으니. 이틀 동안 숙소 밖을 나가지 않았다. 불혹이 지나며 기쁜 일보다 슬픈 일에 불려가거나 소식을 듣는 게 부쩍 횟수가 늘었다.
 

폭염을 뚫고 도착한 마드리드. 한낮 기온은 40도 가까이 올라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폭염을 뚫고 도착한 마드리드. 한낮 기온은 40도 가까이 올라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 폭염을 뚫고 마드리드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왔다. 사라고사 근처에선 한낮 기온이 37도까지 올랐다. 헬멧 내피와 슈트를 물에 적시며 달렸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말랐다. 서유럽 지역 전체가 이상 고온으로 비상이라는 기사를 숙소에 들어와서 읽었다. 파리는 40도가 넘을 수도 있단다. 숙소에 들어와서 샤워를 했지만 열이 식지 않았다. 온몸이 불덩이 같다. 30도만 넘어도 힘든데 마드리드에 도착할 때까지 3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뙤약볕 아래 달리는 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니스를 사랑했던 화가 앙리 마티스의 무덤.
니스를 사랑했던 화가 앙리 마티스의 무덤.

오늘 마신 물이 3리터가 넘는다. 이번 주 내내 뜨거운 염천이라니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열기가 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위를 참으며 달리는 것도 힘든 일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갔다 반환점인 포르토 렐루서점까진 약 1,000킬로미터. 이런 날씨가 파리를 넘어갈 때까지 계속 된다면 5,000킬로미터를 버텨야 한다. 하루 주행 거리를 짧게 잡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오늘 달린 600킬로미터가 나로선 임계치인 듯.

모든 열이 눈으로 몰린 것 같았다. 끼니를 모두 거르고 수건에 물을 적셔 눈에 대고 종일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런 날씨에 헬멧을 쓰고 있으면 달리고 있어도 머리가 뜨겁다. 쉴드를 열면 도로 위에서 달궈진 바람이…. 한증막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들어오듯 한다. 밤이 되곤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눈두덩이 열은 그대로였다. 강한 빛을 계속 마주보고 달렸더니 눈도 얼마나 시린지. 선글라스를 해도 어느 선을 넘어가면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몸 상태가 이상하면 가장 빨리 신호를 주는 곳이 눈이다. 나이가 들수록 빛에 더 예민해지는 듯하다.

 

마티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마티스 미술관은 니스 관광의 필수 코스다.
마티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마티스 미술관은 니스 관광의 필수 코스다.

결국 리스본에서의 계획도 모두 접었다. 숙소 가까이 세르반테스의 동상이 있는데도 꼼짝할 수 없었다. 밤이 될 때까지 물수건을 눈에 붙이고 누워 있었으니까. 나까지 모두 5명 한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해가 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에어컨도 없는 방이라 창문으로 넘어오는 바람이 잠시 쉬기라도 하면 금방 더위가 찼다. 저녁 6시쯤 기온이 39도였다. “인페르노(화염지옥)가 온다”는 어느 스페인 기상 캐스터의 말을 빌린 신문기사를 읽었다. 이래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나.

이번 여행의 소득이라면 대륙을 가로지르며 ‘기후변화’를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이다. 예전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나미에초에 갔을 때 보고 느꼈던 것과 근사치에 가까운 깨달음이다. 지구는 이미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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