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뜰
어머니의 뜰
  • 등록일 2020.05.06 19:58
  • 게재일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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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직도 혼수방에 나가십니다. 그곳에서 당신 노년의 뜰을 가꾸듯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십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에게 바느질은 벅찬 노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오남매 어느 누구도 애써 그것을 말리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손끝이 평생 바지런함과 친구해왔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소일거리가 있다는 게 당신 여생의 활력과 건강을 위해서도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한창 때의 체력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천성이 밝고 재바른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 앞에서 당신 건강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지요.

그해 봄, 혼수방으로 일 나가시는 어머니의 배웅은 노환과 병색으로 힘든 아버지 차지였어요. 이른 아침을 드신 어머니가 집을 나서 지름길인 방죽계단으로 올라섭니다. 겨울 뜰에 버려진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아버지가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따라 나섭니다. 둑방 아래 금호강에서는 풀어헤친 여인의 속치마처럼 물안개가 솟아올랐지요. 어머니는 물안개에 떠밀리듯 방죽길 속을 잰 걸음으로 걸어가셨지요. 안개 속 희미한 실루엣을 한 어머니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아버지를 향해 ‘어여 들어가라’는 손사래를 치곤했지요. 어머니가 먼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연민과 구차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이런 익숙한 아침 풍광을 지켜보던 나는 은밀한 가출을 꿈꾸곤 했어요. 원하던 대로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날 때, 잔정 많은 병든 아버지는 우셨지만 날개를 꿈꾸던 저는 마냥 웃었어요. 남은 밭뙈기까지 팔아 아낌없이 결혼자금을 마련해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같은 건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철없는 탈출이었지요. 그렇게 막내인 저를 마지막으로, 우리 오남매는 콩깍지를 벗어난 콩처럼 통통 분가를 하고 새로운 식솔들을 거느렸지요.

어머니가 없는 온 낮을 아버지는 혼자 견뎌내야 했어요. 안방 윗목, 아버지 손끝에서 바스락대선 약봉지들 소리를 신호삼아 천식 앓던 당신의 기침소리가 고요히 퍼져나가곤 했지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아버지는 노구를 이끌고 바로 집 앞 방죽으로 올라갔어요. 그곳은 또 다른 아버지의 뜰이었지요. 아버지는 멀리 강물을 바라보곤 했어요.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강물 위로 종달새가 낮게 날아다녔지요. 아버지는 방죽 위에 쪼그리고 앉아 까불대는 종달새의 생기발랄한 지저귐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했어요.

아버지는 그해 마지막 이승의 봄날을 당신만의 뜰에서 그렇게 적요와 쓸쓸함으로 버텨내고 있었지요. 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안부전화조차 자주 하지 않았어요. 칙칙하고 병약한 아버지의 하루가 까닭 없이 설레는 제 신혼생활에 방해가 되는 게 싫었던 거지요.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어스름 저녁, 긴 방죽을 따라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면, 아버지는 다시 어머니를 마중하러 둑방 계단을 올라서곤 했지요. 멀리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지고 어머니가 돌아오십니다. 아카시아꽃잎처럼 머리칼에 핀 몽실몽실한 솜먼지가 어머니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또한 아름다웠는지를 말해줬어요. 아버지는 말없이, 풍성한 어머니 머리카락 사이에 피어난 솜꽃을 하나하나 떼어내 주셨지요. 그 모습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에 남아 쓸쓸하게 서로를 보듬는 겨울새 한 쌍 같았지요.

아버지는 그해 오월을 넘기지 못했어요. 수선스러움도 없이 너무도 고요하게 돌아가셨어요. 늘어난 약봉지만 남긴 채 쓸쓸하게 떠나신 아버지를 부르며 저는 목 놓아 울었어요. 너무 늦은 후회만큼 쓸 데 없이 큰 울음이었지요.

친정집을 둘러봅니다. 어머니 없는 무료한 낮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이 좁은 뜰 곳곳에 보입니다. 담장 밑을 손수 파고 심은 넝쿨장미는 온 담장을 휘감아 지붕까지 뻗어 있습니다. 방죽 위, 당신만의 뜰에서 쪼그리고 앉아 캐내왔던 어린 유도화는 어김없이 여름이면 붉은 꽃잎을 말아 올립니다. 지천에 널려 있던 나팔꽃씨를 받아 화분에 키우던 분도 아버지셨지요. 아버지의 나팔꽃은 지금껏 봄이면 싹을 틔워 가을이 질 때까지 옥상 난간을 휘감곤 하지요. 나팔꽃이 얼마나 순하게 싹을 틔우고 얼마나 부드럽게 꽃을 피우는지 아버지 덕에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안 계시는 지금도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십니다. 당신 신성한 노동의 뜰에서 잠시 지치면 어머니는 가만, 아버지의 시간을 추억해낼지도 모릅니다. 방죽 위, 그 쓸쓸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와 목소리와 눈빛들. 머리칼에 핀 작은 솜꽃을 떼어내 주던 아버지의 손길을 그리며 말없는 미소를 지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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