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완연한 봄, 꽃들이 만개하고 군데군데 꽃길이 눈에 띈다. ‘길’이란 말은 중의적이다.

‘꽃길’이란 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려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있는 길이다.

비유적으로는 일이 잘 풀리거나 좋은 일을 의미한다.

반대되는 말로 가시밭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는 덕담이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꽃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미지가 길이라는 단어에 덧붙여져 참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

주변의 크고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산책길을 걷다보면 길 양쪽으로 잘 가꿔 놓은 꽃길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산책하는 기분이 꽤 좋아진다.

길에 뿌려진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되는 길은 아니지만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길이다.

길 어귀에 ‘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글귀라도 마주치게 되면 덩달아 발걸음에 흥겨움이 더해지게 된다.

그런데 길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길 단장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관리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보인다. 흥겨움에 젖어 걸어가는 꽃길은 그들에게는 노동의 현장이다.

슬쩍 미안함이 밀려온다. 꽃길에는 그들의 땀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꽃길을 걸을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꽃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꽃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잘 걸어가던 사람이 생각난다.

큰 건물에는 건물 내외를 청소하거나 시설물을 관리하시는 분들이 있다.

고용조건이 열악함에도 궂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특히 청소일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한다.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청소를 마쳐야하고 사무실은 물론 화장실, 복도 등 구석구석 청결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은 노동이다.

어느 날 아침, 계단을 오르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계단 끝에 달린 미끄럼 방지 요철물을 닦는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이물질이 끼어있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열심히 닦고 광택을 내고 있었다.

직원들의 출근길을 상큼하게 해줄 꽃길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무심코 계단 끝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작업한 자리가 다시 더럽혀지곤 했다.

그런데 요철부분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주머니, 수고 많으시네요.’라는 아침인사까지 곁들였다.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을 보면서 ‘꽃길을 잘 걸어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구일까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환하게 빛나는 뒷모습만 보았다.

계단 끝 요철을 볼 때면 흐뭇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누구나 꽃길을 걷고 싶어 하지만 인생의 긴 여정을 가노라면 꽃길만 걷게 되지 않는다.

설령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걷게 된 꽃길일지라도 결코 혼자만의 꽃길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산책길 가장자리 꽃처럼 누군가 소리 없이 꽃길을 단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걸어가면 좋겠다.

“딸, 아들아! 꽃길을 걷게 되거든 꼭 꽃길 만든 사람도 생각해라.”

“저희 아직 가시밭길 가고 있습니다. 취업도 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