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심각하게 오염된 지구환경을 돌이켜봄으로써 인간과 지구의 공동 운명체를 각성하도록 인도하는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해상원유 유출사고를 계기로 촉발된 지구의 날이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원년은 1990년이라 한다. 그해 150여 나라가 참가하여 지구를 보호해야 인류도 생존해나갈 수 있음을 확인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자 지구대기가 맑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4월 10일 CNN에 따르면, 극심한 미세먼지로 악명높은 인도 북부 펀자브주 주민들에게 160㎞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인도 정부는 3월 22일 이동제한령을 발령했다. 차량운행이 대거 줄고,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대기 오염도가 최대 44% 감소함으로써 설산(雪山)이 맨눈으로 보인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인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각종 영상은 세계 곳곳의 하늘이 맑아졌음을 보여준다. 우리도 올해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공습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오늘날 일부 식자들은 21세기를 ‘인간세’라 규정한다. 인간으로 인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것을 코로나19가 잠시 멈춰 세운 것이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갈파했다. 사단논법은 당연히 사람은 자연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자연은 스스로 그리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지구나 자연환경과 똑같은 의미는 아니겠으나, 인위적인 행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폐해를 강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욕망의 무한대를 긍정하고 성장해온 현대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

제어되지 않은 욕망의 정점이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으로 극대화되고, 그것은 쓰레기로 전락할 숱한 물품으로 이어진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는 거대한 쓰레기더미에 포위돼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며 쌓아둔 물건이 얼마나 많이 나뒹굴고 있는가.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주창한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사람도 과식하면 속이 더부룩하고 고통받기 마련이다. 대략 60조 톤으로 측정되는 지구도 인간으로 인해 끝없이 고통받고 있다. 자연계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멸종위기종은 얼마나 많은가?! 누가 그것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는가. 현대판 도도새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생명의 숨통을 옭아매고 있는 인간의 거칠고 우악스러운 탐욕이 이제는 멈추었으면 한다.

얼마 전 마당에서 일하다가 슬며시 담장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황구렁이를 보면서 한편으로 놀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하, 아직은 살만한 모양이구나, 생각한다.

지구의 날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상상한다. 코로나19가 인간과 지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듯하여 입가에 역설(逆說)의 미소가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