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보수’는 끝났다. 변질하고 퇴락한 그 낡은 가치는 국민으로부터 드디어 멸종 선고를 받았다. ‘보수’ 본산을 자임한 미래통합당 정치세력은 수술이 급박한 환자의 환부에 분홍색 머큐로크롬 잔뜩 발라놓고 요란스레 굿판만 벌이다가 망신당하고, 드디어 경각에 다다른 중환자 꼴이다.

그렇게 망가진 지금 순간마저 서푼 어치도 안 되는 권력 놓고 서로 주도권을 잡겠다고 아우성치는 구제 불능 바보들의 대행진 군상은 참으로 딱하다.

4·15총선 성적표는 참혹하다. 썩어 문드러진 ‘꼴보수’ 간판 부여안고 격랑의 바다에 대책 없이 뛰어든 구닥다리들은 이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운 난민 몰골일 따름이다. 초유의 실패작으로 끝난 보수 농사 판은 완전히 갈아엎는 게 정답이다. 수치심 내팽개친 채 추한 권력의 욕망을 널름대는 철면피들은 또 뭔가.

민주당의 압승은 민주당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가 결정적 승인이라는 해석도 100% 공감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민주당 승리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하는 게 맞다. 4·15 총선 정당별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불과 8.4% 차이였다. 지역구 의석을 163대 83으로 가른 것은 소선거구제의 맹점 때문이다.

김무성·홍준표 등의 공천을 굳이 배제한 황교안의 처사는 졸렬한 패착이었다. 그러나 대구에서 무소속 당선된 다음 황교안을 욕하고 차기대선 출마를 떠들어대는 홍준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엔 또 한 번 경기가 날 지경이다. 홍준표를 당선시킨 대구 민심은 황교안의 공천이 잘못됐다는 경고, 딱 거기까지다. 그게 무슨 홍준표의 대선후보 특허권이라도 되는 양 설치는 것은 망발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 패러다임은 확실히 바뀌었다. ‘보수’는 이제 더 이상 기득권층도 지배계층도 아니다. 국민은 이제 ‘자유 우파’니, ‘보수’니 하는 구호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진보세력이 아니라 바로 수십 년 째 ‘보수’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되뇌면서 제대로 된 미래비전 하나 못 내놓은 우매한 보수 지도자들이었다.

미래통합당은 기초공사부터 새로 하는 전면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 누누이 강조해온 이야기이지만, 이념좌표부터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건전한 중도실용 이념으로 클릭 이동을 해야 한다. 청년들을 정치 중심에 세워야 한다. ‘방탄소년단’에 코 웃음치고, ‘기생충’을 이념의 눈으로 폄하하는 따위의 가치관으로는 안 된다. 눈속임 리모델링으로는 어림도 없다. 모조리 다 때려 부수고 기초공사부터 새로 해야 한다. 그 기초공사가 바로 이념좌표의 재설정이다. 수구꼴통 민심에 묶인 발목의 족쇄를 미련 없이 풀어헤쳐야 한다.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꼰대 짓’만 거듭하는 일을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