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1천㎞ 달려온 홀로 여행… 우리네랑 다른 풍경을 발견하고
1만1천㎞ 달려온 홀로 여행… 우리네랑 다른 풍경을 발견하고
  • 등록일 2020.03.24 20:11
  • 게재일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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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만1000km 달려 ‘여행 1막’을 끝내다

모스크바 지하철 역. 냉전 시절 방공호를 대신해 지어져 지하 깊이 들어가는 곳이 많다.
모스크바 지하철 역. 냉전 시절 방공호를 대신해 지어져 지하 깊이 들어가는 곳이 많다.

◇ 시베리아 지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다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한국을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로시로 달린 거리가 11,259킬로미터. 집에서 출발한 지 21일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17일이 걸렸다. 춥고 더운 것(도착한 날 모스크바 최고 기온 29도), 그리고 비가 자주 내렸던 걸 제외하면 크게 고생하지 않고 온 듯하다.

시베리아 횡단하며 묵었던 숙소나 음식은 가격대비 아주 만족. 뭐 비만 피하고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어디든 뭐든. 혹시나 출발하기 전 겪었던 문제(간헐적 엔진 출력 저하)를 여행 중에 다시 겪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부분도 출발하기 전에 정확하게 진단해서 잘 해결(연료 펌프 교체)한 것 같다. 오는 동안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이번 여행의 1막이 끝난 기분이다. 유럽을 여행하고 지금까지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니 이제 4분의1이 지난 셈. 러시아를 벗어나 유럽 대륙의 가장 동쪽 끝인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가야 절반. 러시아를 벗어날 때까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붉은 광장 근처에서 열린 수산물 박람회. 캐릭터 복장을 한 배우들과 사진을 찍는 아이들.
붉은 광장 근처에서 열린 수산물 박람회. 캐릭터 복장을 한 배우들과 사진을 찍는 아이들.

최대한 빨리 유럽으로 들어가고 모스크바는 돌아갈 때 여유 있게 둘러보기로. 추위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넉넉하게 9월 중순까지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돌아가야 하니 여유를 부리기 힘들다.

엔진오일과 체인루브를 구하려 근처 바이크샵에 가려고 나왔더니 세찬 비가 내려서 포기. 예보가 틀린 적이 거의 없다. 모스크바에선 하루만 쉬며 정비하고 아침 일찍 러시아워를 피해 라트비아로 간다. 유럽 국가로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려면 보험(그린카드)을 들어야 하는데 라트비아 국경에서 받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

어디로 입국하느냐에 따라 3개월 보험료가 적게는 55유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해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핀란드로 갈 경우 수백 유로를 내야한다. 대부분 유라시아 횡단 여행자들은 몽골, 중앙아시아를 통과해 동유럽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험료가 저렴한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로 입국하는 경로를 선호한다.

이제 유럽 내에서 어떻게 이동할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쉴 때마다 지도를 보는데 동선을 짜는 게 쉽지 않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지만 달릴 거리를 생각하면 여유가 많지 않다. 포기할 건 깔끔하게 미련두지 않기로.

 

모스크바의 바이크 매장. 부품이나 소모품 가격은 우리와 거의 비슷했다.
모스크바의 바이크 매장. 부품이나 소모품 가격은 우리와 거의 비슷했다.


◇ 치킨을 먹으려 1시간 넘게 걷다



시내 관광이라도 나갈까 했는데 비가 와서 강제 휴식 중. 밀린 빨래도 하고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나 헤아리고 줄일 짐은 없나 뒤적거린다. 하나라도 줄일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좋겠지만 있다 해도 놓고 가긴 어렵다.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노트북이 애물단지다. 챙기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었다.

몇 년 전 두어 번 긴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만해도 기록이나 숙소와 교통편 예약, 행선지 검색 모두 노트북으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것만 놓고 왔어도 2킬로그램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가방을 열 때마다 후회하는 중. 아직 달릴 거리가 많이 남았으니 집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기로 한다.


비가 그치자마자 바로 시내에 나갔다. 꽤 먼 거리를 걸었다. 10킬로미터쯤 걸어 다녔다. 모스크바 시내 반대편(숙소는 시내 동쪽 외곽에 있었고, 오토바이 매장은 서쪽 외곽)까지 가서 엔진오일과 체인루브를 샀고, 저녁으로 치맥을 먹었다. 길을 가다 오븐에 굽는 통닭을 봤고 숙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 가게까지 걸어 1시간 넘게 기다려 사 왔다. 닭이 꽤 큰데 가격은 330루블(약 6천원)이었다.

현재 함께 달리고 있는 현묵 군은 휴대폰 거치대와 탑박스를 가져오지 않아 고생 중이다. 어제 방문했던 매장에서 적당한 것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찾는 물건이 없어서 실패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에는 무엇이든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은 처음 시작할 때 선택을 잘 해야만 불편을 줄일 수가 있다. 여행 경비를 최대한 아껴야 하는 처지에선 기존에 가져온 것을 두고 다시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탑박스가 진열된 매대 앞에서 한참 고민하고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포기. 나도 탱크백과 여름용 라이딩 자켓을 보고 마음이 혹했으나 가격표를 보고 가만히 내려놓았다. 러시아 오토바이 매장의 물건 값은 우리와 거의 비슷하거나 아주 약간 저렴한 듯.

우리가 묵는 숙소는 커다란 낡은 창고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높은 담으로 아예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트럭이나 버스 운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런 곳에 숙소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모스크바의 상징인 성 바실리 성당.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모스크바의 상징인 성 바실리 성당.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 붉은 광장에서 감상한 ’백조의 호수’



다시 하룻밤을 보내고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바이크샵을 찾아 나섰다. 어제 구입하지 못한 물건들 때문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미니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지만 역시나 이곳도 현묵 군이 찾는 물건이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택시를 제외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트로이카 카드를 구입하면 편리하다. 우리네 교통카드와 같은데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 사용한다. 단 미니버스는 현금을 내야 한다. 트로이카 카드는 지하철 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보증금은 50루블이고 원하는 금액만큼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의 상징 성 바실리 성당을 보고 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에 수산물 박람회도 구경하고 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미인이 같이 사진 찍자고 내 손까지 잡았지만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왜 제 손을 잡는지 다 알아요!) 사진을 찍으면 모델료(?)를 요구한다. 주로 어리바리한 동양인 아저씨들이 대상인 듯하다.

붉은 광장에는 서가가 가득 찬 부스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책 축제가 일주일 동안 열릴 예정이라 각 부스마다 출판사에서 나온 직원들이 책을 진열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러시아 출판사 사람들도 다들 책 만들고 파느라 고생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붉은 광장에선 북 페스티벌 준비가 한창이었다. 규모가 상당히 컸다.
붉은 광장에선 북 페스티벌 준비가 한창이었다. 규모가 상당히 컸다.

마음 같아선 내일 하루 더 짬을 내어보고 싶었으나 갈 길이 머니. 성 바실리 성당 가까이엔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오케스트라가 리허설 중이었다.

책 축제에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다니 우리네랑은 스케일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고 작은 책 축제에 가보았지만 이만한 공연은 보지 못했다. 비록 리허설이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실시간으로 들으며 붉은 광장을 둘러보게 될 줄은 몰랐다.

돌아오는 길에 육교 위에서 병색 가득한 엄마와 함께 구걸하는 아이를 보았다. 예닐곱이나 되었을까. 주머니에 잡히는 동전을 모두 아이가 들고 있는 작은 종이 가방 속에 넣었다. 세상은 언제나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기 마련이다. 해맑은 아이 얼굴을 보며 한 인간에게 주어진 슬픔은 공평하게 총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슬픔은 곱으로 쳐서 감할 수 있기를.

내일은 러시아에서 묵는 마지막 밤이 될 듯하다.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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