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명 자

햇살 나른한 바닷가에

죽은 듯 누웠다

파도가 와서 아는 체해도

모른 체한다

온통, 몸 젖은 파도가 와서

떠나온 길 사라졌다 중얼거리고

하루가 다 가도록 내 앞에서, 청춘 같은

세월 뒤에 몸 뒤척이는 날 두고

돌아가겠다 돌아가겠다

수런거리며 바위 숲에 가서

해송처럼 머문다

시인은 햇살 나른한 바닷가에서 지나온 청춘의 시간을, 열정과 의욕에 부풀어 올랐던 시간을 뒤돌아보며 허망한 세월의 물결을 보고 있다. 이제는 젖은 파도가 몰려와 떠나온 길을 쓸어가 버리고 나이 들어 낡고 무너져가는 몸과 의식만 남은 현실을, 돌아갈 수 없는 그 청춘의 시간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