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바다 곁에서 치유받으며 살고 있어요”
“푸르른 바다 곁에서 치유받으며 살고 있어요”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1.29 19:45
  • 게재일 2020.0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든든하게 독도 지키는 항로표지관리원 김현길 씨

소년은 언제나 ‘지금 이곳’ 아닌 ‘또 다른 곳’을 꿈꿨다. 10~20대 시절엔 밤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이 땅 남쪽 끝을 향해 가거나,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바람처럼 서쪽으로 달리곤 했다. 그 소년은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서른둘에 공무원이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북의 여러 등대를 떠돌며 드넓은 바다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항로표지관리원 김현길 씨다.

한 달간의 독도등대 근무를 마치고 포항으로 돌아온 그를 본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기자는 김씨를 기다리며 초등학교 음악 수업시간에 목청껏 부르곤 했던 ‘등대지기’를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로 시작해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이란 구절로 끝나는 노래, 이상스레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울리는 그 노래를.
 

자유 만끽하던 20대 보내고 서른 둘 늦깎이로 시작
21년째 등대 다섯곳 돌며 선박항해 돕는 업무 맡아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아쉬움 있지만 후회는 없어
섬에 갇혀 외롭고 답답했던 시간 극복하려 시작한
독도 사진찍기·글쓰기 작업이 전문가 수준으로
30여 차례의 전시회와 시집 출간으로 열매 맺어

8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독도등대와 함께 한 김현길 씨가 멀리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8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독도등대와 함께 한 김현길 씨가 멀리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먼저 궁금한 것 하나 묻고 싶다. ‘등대지기’의 정식 명칭은 뭔가.

△‘~지기’라는 말이 직업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엔 등대관리원 혹은, 항로표지관리원이라 부른다. 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나는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에서 독도항로표지관리소 운영·관리를 맡고 있는 팀원 중 한 명이다.

-항로표지관리원을 시작한 시기와 현재 나이는.

△53세다. 1999년 등대 지키는 일을 시작했다. 올해로 21년째다.

-어릴 때부터 바다가 좋고,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었나. 항로표지관리원이 된 이유가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 일을 시작하기 전엔 등대에 관해 아무 것도 몰랐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직업훈련원을 수료하고, 정비업체 등에서 일했다. 한 친구가 우연히 권유해 항로표지관리원 시험에 응시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어찌 보면 운명 같기도 하다.

-등대를 지키기 전엔 어떤 청년시절을 보냈는지.

△10대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20대에도 기차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낯선 곳에서 텐트를 치고 자다가 불심검문에 걸리기도 했고…. 짧지만 사찰에서 행자 생활도 해봤다. 내겐 역마살이 있다. 1999년 독도에 설치된 등대가 무인등대에서 유인등대로 바뀌며 인력 충원이 필요했다. 그해 나를 포함해 7명이 항로표지관리원이 됐다. 32세 때다.

-유인등대와 무인등대의 차이는 뭔가.

△쉽게 말하면 등대에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통상 2년에 한 번쯤 근무지가 바뀐다. 경북에는 5개의 유인등대가 있다. 독도, 울릉도(도동등대와 태하등대) 울진 죽변, 포항 호미곶 등이다. 이 다섯 군데의 등대를 순환 형태로 돌아가며 근무한다. 각각의 등대에서는 3교대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다만 독도등대의 경우엔 ‘2개 팀·1개월 근무·1개월 휴무 시스템’이다. 1개 팀은 3명이고, 1명이 주간 근무, 2명이 야간 근무를 맡는다. 경북 전체에서 등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대략 25명 정도라고 알고 있다. 무인등대는 280개쯤 된다.

-항로표지관리원의 주된 임무는 어떤 것인지.

△선박의 항해를 돕기 위해 등대와 부표를 관리한다. 관련 해상 시설을 점검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땐 이를 해결하기도 한다. 예전엔 등대의 역할이 ‘어선과 어부 보호’에 방점이 찍혀있었으나, 요즘은 국가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독특한 직업이다. 힘겨운 점과 보람의 순간이 동시에 있었을 듯한데.

△두 아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이젠 대학생이 된 자식들이 어릴 때 곁에서 돌봐주지 못했다. 예전 독도등대에 근무할 땐 겨울이면 50~60일간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착하게 자라준 애들에게 고맙다. 보람이라면…. 독도등대에서 일본 순시선을 볼 때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억지 부려도 우리 영해를 쉽게 침범하지는 못한다. 대한민국의 동쪽 끝을 지키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독도등대에서 근무한 세월이 만만찮을 것 같다.

△8년이다. 울릉도에선 4년쯤 있었다. 독도와 울릉도 근무를 합치면 12년가량 된다. 독도 근무를 꽤 오래 한 셈인데, 그건 독도와 나의 궁합이 잘 맞아서가 아닐까.(웃음)

-독도등대에선 고독을 느끼지 않는가? 독도에 대한 애증이 있을 텐데.

△처음 갔을 땐 낯설고 답답했다. 하루 종일 볼 거라곤 바다밖에 없으니까. 들리는 건 갈매기 소리뿐이고. 눈을 떠도 바다, 심지어는 감아도 바다가 보였을 정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진과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고 이후론 답답함이 많은 부분 사라졌다. 독도 관련 사진을 모아 크고 작은 전시회를 30여 차례 열었고, 지난해엔 시집도 한 권 출간했다.

-독도에 상주하는 이들은 얼마나 되는가.


△서도엔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과 독도 주민 김신열 씨와 김씨의 사위가 산다. 동도의 경우엔 독도경비대와 항로표지관리원 등 30명 조금 넘는 인원이 생활하고 있다.

-항로표지관리원으로 일하면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2000년대 초반 독도 관련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던 남녀가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자 영혼결혼식을 올려주고 둘의 유골을 독도에 뿌렸다. 이후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의 그림자를 본 독도경비대원들이 적지 않았다. 갑자기 삽살개가 짖어대던 날, 나도 그들의 그림자를 봤다.(웃음)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건 태하등대의 아름다움이다. 사진작가들 상당수가 한국 최고의 촬영 장소로 꼽는 게 태하등대 주변이다. 특히 일출과 일몰 때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경이 근사하다.

-‘나도 등대를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하려고 한다면 택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나도 이 일을 시작하면서 애국심이 커졌다. 그걸 소명감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바다를 떠돌며 살아왔다. 후회는 없나? 만족스런 인생이었다고 생각하는지.

△가정적으론 곁을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나쁜 삶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울릉도나 독도까지 10시간 넘게 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근무 여건도 좋아졌다. 누군가는 ‘당신이 등대를 지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웃음) 틀린 말이 아니다. 난 갇혀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니까.

-마지막 질문이다. 항로표지관리원이란 세상에 어떤 도움을 주는 사람인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 오히려 내가 푸르른 바다 곁에서 치유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 지금의 자리에서 맡겨진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김현길 씨는 2001년 필름 카메라로 독도의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정식 교육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반인이라면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든 독도의 절경을 담아낸 김씨의 사진은 차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장비를 바꾼 뒤엔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독도의 모습을 더 많이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영토 주권의 문제이기에 “독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독도를 주제로 한 사진전에 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주기를 김씨는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하다.

포항은 울릉도와 독도를 향해 가는 출발점이다. ‘독도 사진 상설전시관’이 생긴다면 시의 이미지와 위상을 동시에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사진과 더불어 글쓰기로 독도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는 김현길 씨의 시 ‘독도 예찬’을 소개한다. 소박하고 소탈한 문장이 읽는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독도 예찬

김현길 作

찬란한 여명을 받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하루를 여는 독도

계절의 순환처럼
피어나는
이름 모를 섬꽃과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
시시각각 변모하는
독도의 아름다움…(중략)
어두운 밤바다를 지키는
희망의 불빛처럼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깨어나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심장이며
출발점이다.


홍성식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