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일찍이 맹자(孟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측은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더불어 사람의 착한 본성인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단초가 되는 마음의 하나인 수오지심은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옳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자신의 과오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남의 잘못을 모른 척 하는 것도 의(義)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정권의 관계자들과 추종하고 비호하는 세력들의 행태를 볼진대 후안무치란 말이 오히려 모자랄 지경이다. 저들의 비리와 부정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악담과 조롱을 퍼붓고 수사하는 검찰까지 겁박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들의 뻔뻔함이 국민들의 도덕적 불감증까지 확산시키는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신년 벽두부터 쓴 소리를 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멀리 떨어진 일개 서민이 보기에도 현 시국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70여년 온갖 간난신고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땀 흘려 이룩한 나라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는 정권에 대해서 방관하고 침묵한다면 그 어찌 사람의 도리라 하겠는가.

이 정권은 시작부터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대법원장, 비서실장, 장관, 국정원장 등 지난 정권 관련 인사들을 탈탈 털어 100여 명이나 사법처리했다. 그리고 그 적폐청산의 선봉장이었던 중앙지검장을 야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우리 총장이라고 추켜세우며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도 보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를 않았다. 그런데 막상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가 불거져 수사가 시작되자 태도를 돌변해서 검찰개혁을 들고 나왔다. 비리 혐의자인 민정수석을 내치기는커녕 오히려 법무장관에 임명하여 검찰을 압박하려는 무리수를 자행하였으나 빗발치는 반대여론에 밀려 취임 35일 만에 사퇴를 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검찰이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편향된 법집행을 하거나 수사권의 남용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지금의 검찰은 검찰개혁의 취지대로 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정권이 노골적으로 검찰을 압박하는 한편 여당은 국회의장까지 가세를 해서 제1야당을 제외한 군소정당들과 야합하는 꼼수와 편법을 동원해서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에 급급한 것은 너무나 속보이는 처사가 아닌가.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공수처법을 통과시킨 것은 검찰은 물론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어 정권의 방어막과 안전장치로 삼으려는 속셈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반대 하는 목소리엔 귀를 막고 동조하는 세력들만 국민이라는 이 정권의 도를 넘는 오만과 후안무치를 막을 길은 오로지 선거를 통한 심판밖에 없다. 다가오는 4월의 총선에도 견제할 힘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국은 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