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인

한 장씩 더듬으며 너를 떠올리는 것은

내가 이 풍경을 대충 읽어버린 까닭이다.

어두워지더라도 저녁 가까이

창문을 달아두면

검은 새들이 날아와 시커멓게

강심(江心)을 끌고 간다.

마음의 오랜 퇴적으로 이제 나는

이 지층이 그다지 초라하지 않다.

그 창 가까이 서 있노라면

오늘은 더 빨리 시간의 전초(前硝)가

무너지는지,

골짜기를 타고

어느새 핏빛 파발이 번져 오른다.

곧 어둠의 주인이 찾아들겠지만

내가 왜 옹색하게 여기

몇 가을째 세들어 사는지

헤아리지 않아서 이미 잊어버렸다

어떤 저녁에는 병색 완연한 새 한 마리가

내 사는 일 기웃거리다 돌아가면

나도 아주 하릴없어져 어스름 속에

쭈그리고 앉아 불붙는 아궁일

물끄러미 들여다보거나 정 심심해지면

땅거미 가로질러

하구 저쪽 갯벌 끝 끝까지 걸어가곤 한다.

거기에는 소금을 모두 비운 한 채

소금 막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다.

시간의 무딘 칼날에 베여도 이제 더는

아프지 않도록

이 밤의 책들 다 사르리라, 나는

불꽃을 훨씬 뛰어넘는 새벽의 사람이 되어서

평온한 저물녘의 풍경을 나열하며 노을 따라 스미는 내면의 평화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하던 시련과 고통, 상처의 시간을 극복하고 희망차고 안정된 새로운 시간을 마련해가겠다는 의욕에 찬 시인의 마음 자락을 읽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