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재 구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람은 내 어깨 위에

자그만 그물침대 하나를 매답니다

마침

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들이라면

누구든지 그 침대에서

푹 쉬어갈 수 있지요

그 중에 어린 시간 하나는

나와 함께 책을 읽다가

성급한 마음에 나보다도 먼저

책장을 넘기기도 하지요

그럴 때 나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바람이 좋은 저녁이군, 라고 말합니다

어떤 어린 시간 하나가

내 어깨 위에서

깔깔대고 웃다가 눈물 한 방울

툭 떨구는 줄도 모르고

‘사평역에서’라는 서정성 높은 시를 발표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던 시인의 동요적인 상상력을 본다. ‘바람은 어깨 위에 그물침대를 매달고, 시간은 그 침대 위에 쉬어간다’는 표현에서 시인은 엄청난 속도에 얹혀가고 떠밀려가는 현대사회의 분주함을 야유하며, 여유롭고 느리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한 자락을 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