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 봉화를 맛보다

봉화 농축산물 직매장 ‘로컬푸드’
봉화 농축산물 직매장 ‘로컬푸드’

봉화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모았다… ‘로컬푸드’서 장보기

가게 이름이 재미있다. ‘로컬푸드’다. local food. “지역 산물을 파는 건 알겠는데, 이름이 뭐죠?”라고, 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마찬가지. ‘로컬푸드’다. 싱겁기 짝이 없다. ‘로컬푸드’는 ‘봉화 지역 농축산물 생산자들이 직영하는 마트’ 쯤, 으로 생각하면 정확하다. 생산자들이 직접 관리하니 믿을 수 있다.

가게 안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소박하다. 농협 하나로마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 넓은 공간도 아니고 물건 배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좀 더 수더분하고, 소박하다.

산나물이나 열매류도 말린 후 봉지에 넣어 판매하고 있다.
산나물이나 열매류도 말린 후 봉지에 넣어 판매하고 있다.

꼼꼼히 둘러보면 아주 재미있다. 진열된 물건들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 싶다. 꿀도 여러 생산자의 것을 모두 모아 두었다. 양이 많진 않지만, 종류는 상당히 많다. 이른바 ‘다품종 소량 생산물’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경상도 봉화 생산품들이다.

봉화현의 토산: 잣, 석이버섯, 인삼(人蔘), 수달, 백화사(白花蛇), 석청(石淸蜜) 송이(松耳), 은어(銀魚)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0년에 편찬한 역사, 인문, 지리지다. 500년 전의 기록이다. 그 이전에 만들었던 ‘동국여지승람’ 개정한 것이니 500년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봉화의 생산물이다. 잣, 석이버섯, 석청, 송이 등은 지금도 ‘로컬푸드’에서 구할 수 있다.

봉화 ‘로컬푸드’의 말린 버섯들. 송이버섯이 유명하지만 표고나 노루궁뎅이버섯 등도 내놓고 있다.
봉화 ‘로컬푸드’의 말린 버섯들. 송이버섯이 유명하지만 표고나 노루궁뎅이버섯 등도 내놓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버섯은 석이버섯 한 종류에서 표고, 노루궁뎅이버섯 등으로 늘어났고, 꿀(석청)은 여러 생산자가 내놓은 걸 가지런히 정리해두었다. 말린 산나물과 오미자 등 각종 열매류도 풍성하다. 착즙 음료부터 산양삼, 곱게 물들인 스카프까지 다양하다.

생산자이자 운영자들이 꼼꼼히 챙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산자 직영체제’로 운영하니 제품의 질이나 가격 등을 별도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 좋은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살 수 있다. 국산이냐, 수입산이냐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 제품이 봉화군 지역 내 생산물 혹은 생산물을 가공한 것들이다.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온라인 ‘봉화장터’는 http://bmall.go.kr/mall/shop/

 

‘청봉숯불구이’의 돼지고기 굽는 모습. 솔향을 더하고 있다.
‘청봉숯불구이’의 돼지고기 굽는 모습. 솔향을 더하고 있다.

돼지고기는 소나무를 ‘두 번’ 만난다… ‘청봉숯불구이’ 솔잎숯불돼지고기

봉성면은 봉화에서도 외진 곳이다. ‘봉성돼지숯불단지’. 깊은 산속의 돼지고기 단지? 돼지를 특별히, 많이 기르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웬 돼지고기 단지? 키워드는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나무, 솔잎이다. 다른 곳 돼지고기구이와는 달리, 소나무 숯으로 고기를 익힌다. 초벌 돼지고기에 솔잎 향을 더한다.

‘청봉숯불돼지고기’의 주방은 이중 구조다. 어느 식당에나 있는 주방이 있다. 가게 뒤편에는 별도의 ‘구이용 공간’이 있다. 손님이 돼지고기구이를 주문하면 우선 소나무 숯에 고기를 굽는다. 소나무 숯은 참나무 숯보다 화력이 약하다. 이 부분이 ‘포인트’다. 약한 불은 은은하게 고기를 익힌다. 소나무 숯으로 고기를 익힌 뒤, 솔잎을 깔고 다시 고기를 ‘훈연(熏煙)’한다. 솔잎의 향이 돼지고기에 배어든다. 솔잎을 그릇 바닥에 깔아서 손님상에 내놓는다.

창봉숯불구이집의 한상 차림.
창봉숯불구이집의 한상 차림.

손님들은 돼지고기를 세 번 먹는다. 돼지고기와 솔잎을 보면서 눈으로 먹는다. 두 번째는 향이다.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 들면 코에 솔향이 들이닥친다. 입보다 코가 먼저 맛을 본다. 마지막으로 돼지고기를 베어 문다. 기름기 없는 담백한 돼지고기.

매년 봄에는 소나무 숯으로 돼지고기를 굽는 축제도 열린다. 인근의 ‘희망정’이 ‘봉성돼지숯불단지’의 원조다. 가장 오래된 집이다. 음식들은 모두 수준급이다.
 

‘도촌송어양식장’의 은어구이와 은어조림.
‘도촌송어양식장’의 은어구이와 은어조림.

은어, 수중군자, 청류군자를 추억한다… ‘도촌송어양식장’ 은어구이·조림

자연산 은어는 바다에서 태어나서 늦봄, 초여름 무렵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6월 무렵이 은어 낚시 철이다. 어린 은어는 강과 개울에서 짧은 삶을 보내고 곧 바다로 되돌아 간다. 바다에서 산란을 하고 은어는 삶을 마감한다. 은어의 삶은 1년이다. 잠깐 내륙으로 왔을 때 우리는 은어를 낚는다.

이제 자연산 은어는 귀하다. 봉화의 은어도 양식이다. 원래 은어는 ‘청류공자(淸流公子)’ ‘수중군자(水中君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등 부분은 검거나 갈색 혹은 맑은 청색을 지니고 있고, 배 부분은 흰색이다. 맑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점잖아서 붙인 이름이다. 혹자는 경북 북부의 사대부들이 은어를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오래전에는 안동의 건진국시 국물을 은어로 우렸다. 육수를 낼 만한 생선은 민물 은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멀고 웬만한 생선은 모두 비린내가 나지만 은어는 수박 향이 가득하다.

‘도촌송어양식장’에서는 은어구이, 회, 은어 조림, 튀김 등 다양한 은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은어 전문 양식장은 아니다. 송어와 철갑상어 등도 양식한다. 매년 봄, 일정량의 은어 치어를 지자체로부터 구한다. 8월이면 은어는 일정 크기로 자란다. 전량 다시 지자체에 납품하면 8월의 은어 축제가 시작된다. 일부 식당에서 사용할 양을 냉동 저장한다.
 

‘용두식당’의 송이버섯돌솥밥은 송이버섯의 양이 푸짐하다. 돌솥밥에서 송이 향이 물씬난다.
‘용두식당’의 송이버섯돌솥밥은 송이버섯의 양이 푸짐하다. 돌솥밥에서 송이 향이 물씬난다.

태백산의 선물 송이버섯 가득… ‘용두식당’ 송이돌솥밥

봉화 송이는 태백산맥의 선물이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기후가 송이의 성장에 알맞다. 낮과 밤의 심한 일교차,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바람이 봉화 송이에 향기를 더한다. 같은 태백산맥 지역인 인근의 영양, 울진 등의 송이도 이 지역으로 모여든다. 봉화 생산 봉화 송이가 있고 봉화 장터에 모인 인근의 송이도 있다.

송이돌솥밥
송이돌솥밥

‘용두식당’은 오랫동안 송이돌솥밥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돌 솔 위에 올린 송이의 양이 만만치 않다. 돌솥밥을 내올 때 은은한 송이 향이 밥상 위로 뒤덮는다. 귀한 향을 맡으면 손님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일본식 가마메시(釜飯, 부반, 일본식 솥밥)과는 다르다. 일본 가마메시는 두어 점의 송이가 모두다. 송이가 들어갔다는 흉내만 낸 정도다. 봉화 ‘용두식당’은 돌솥 위에 송이가 가득하다. 두께도 제법 두텁다.

 

봉화한약우는 지자체에서 매년 일정량의 한약재를 공급, 농가가 한약재를 먹여서 기른 후 일괄적으로 납품한다.
봉화한약우는 지자체에서 매년 일정량의 한약재를 공급, 농가가 한약재를 먹여서 기른 후 일괄적으로 납품한다.

봉화군이 공급하는 약재 먹인 믿고 먹는 한우를 찾다… ‘봉화한약우프라자’ 한약우

넓은 주차장이 있다. 봉화 농축산물 직매장인 ‘로컬푸드’와 ‘봉화한약우프라자’는 맞붙어 있다. 정육식당이다. 손님이 먼저 고기를 선택한 후, 식당으로 입장, 자리를 잡는다. 일정한 사용료(3천 원)을 내면 식당 내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불판과 각종 반찬, 채소 등을 차려낸다.

‘한약우’은 봉화군의 쇠고기 브랜드다.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봉화 특유의 일교차가 심한 날씨가 한우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자체에서 일정량의 ‘약재’를 공급한다.

한우를 기르는 농가들은 지자체가 공급하는 약재를 더하여 소를 기른다. 한우 마리 수에 맞추어 약재를 공급하고, 약재를 먹인 소를 일괄적으로 도축, ‘봉화한약우프라자’에 내놓는다. 정육식당이니 생고기를 사갈 수 있다.

살코기 조직이 치밀한 편이다. 꼬들꼬들한 느낌이 좋고 맛이 깊다.

 

성석제의 소설 ‘칼과 황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개한 볶음 우동(야끼우동).
성석제의 소설 ‘칼과 황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개한 볶음 우동(야끼우동).

이제까지 이런 중식당 이름은 없었다… ‘용궁반점’과 ‘펭귄반점’

가끔 싱거운 짓을 할 때가 있다. 외지고도 외진 봉화군 춘양면의 ‘용궁반점’을 찾은 것도 바로 이런 ‘싱거운 짓’이었다. 싱거운 짓을 한 이유는 있다. ‘칼과 황홀(2011년). 소설가 성석제의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에 문제의 ‘용궁반점’과 ‘펭귄반점’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깊은 산골인 봉화 춘양면에 ‘용궁반점’이라니. 아주 괜찮은 ‘야끼우동(볶음우동)’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가봤다. 두 번째 갔을 때, ‘용궁반점’ 앞에 새로 중식당이 문을 열었다. 이름이 압권. ‘펭귄반점’이었다. 포복 졸도했다. ‘펭귄반점’ 주인은 ‘용궁’에 앞설 이름을 오랫동안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용궁과 펭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중식당 이름이 아닌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전국 최고의 볶음 우동이라니. 가볼 수밖에 없었다. 가던 길에서 약 60km를 돌아 ‘용궁반점’에 갔다. 볶음우동. ‘우리나라 제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륙치고는 해물이 넉넉하게 들어간, 제법 잘 볶은 우동이었다. 알고 봤더니 수타 우동 면발을 오랜 기간 만진 주인의 업력도 만만치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용궁반점’에 가던 날, 가게 앞의 ‘펭귄반점’은 문을 닫았다. 그 후로 한 번 더 춘양면에 갔지만, 여전히 ‘펭귄반점’의 문은 닫혀 있었다. 하기야 소설가 성석제 역시 ‘펭귄반점’은 이름만 봤을 뿐, 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짜장면이 있다”는 설레발이 있으면, ‘펭귄반점’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