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문의 탈식민적 지식 생산에 대하여
우리학문의 탈식민적 지식 생산에 대하여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8.08.23 20:24
  • 게재일 2018.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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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의 발’

이상길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인문·2만9천원

▲ 피에르 부르디외

‘아틀라스의 발’(문학과지성사)은‘현대 사회학의 거장’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의 삶과 사상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부르디외는 사르트르, 바르트, 푸코, 데리다와 함께 프랑스 사상의 보루였으며, 사회철학이 독일의 하버마스와 영국의 기든스에 의해 양분된 상황에서 가장 프랑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의 문제를 개입시킴으로써 사회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부르디외 이론을 번역, 소개해온 문화연구자 이상길 교수의 20여 년간의 연구가 농축된 이 책은 부르디외의 삶과 학문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하며 부르디외가 제시한 사회학적 방법론을 부르디외 자신에게 적용시켜 쓴 새로운 ‘사회학적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이상길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부르디외의 수용 문제를 성찰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부르디외는 푸코, 하버마스, 기든스, 고프먼을 훨씬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회학자로 꼽혔으며, 매년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부르디외를 인용하거나 부르디외를 다룬 단행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장’ ‘하비투스’ ‘구별짓기’와 같은 부르디외의 개념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됐으며, 대부분의 저작이 우리말로 옮겨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연구의 지체 상황은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이 책의 1부 ‘지식인의 초상’에서는 부르디외의 생애와 학문 세계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과 당대 프랑스의 정치·역사·학문적 상황을 분석하며 부르디외의 지적 기획이 그가 거쳤던 사회적 궤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진화해갔는지를 조명한다.

저자는 부르디외의 지적 하비투스를 재구성함으로써, ‘사회학적 자기 성찰’ ‘연구 경계의 위반’ ‘철학과 사회과학의 융합’ ‘이분법적 사유 관행에 대한 거부’ 등 그를 사회학의 대가로 만든 연구 노동의 원리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발전한 것인지 살펴본다.

‘장champ’은 다양한 분야의 경험연구에 빈번하게 활용되는, 부르디외의 철학을 특징짓는 핵심 개념 중 하나다. 부르디외는 한 저서에서 장에 대한 일반 이론을 구축해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었는데, 이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2부 ‘이론적 지평’에서는 장이론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며, 이를 경험연구에 투입하고자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을 검토함으로써, 분석 틀로서 장이론이 갖는 난점들과 그 보완 방향을 모색한다. 또한 장이론이 내포하는 투쟁 중심적 사회관과 공리주의적 인간관의 면모를 살펴보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한 부르디외의 시도가 어떤 딜레마에 봉착하는지 이야기한다.

3부 ‘수용의 단층’은 부르디외 사회학을 ‘서구 이론’으로 대상화해, 우리 학계가 부르디외의 이론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부르디외의 저작 중 어떤 책이 어떤 식으로 소개됐고 번역에서 제외된 글은 무엇인지, 번역자는 어떠한 이들이며 번역을 통해 어떠한 상징자본을 얻게 되는지, 부르디외의 책들을 출판한 출판사들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 등 부르디외 저서의 출간과 관련된 전후의 사정을 꼼꼼하게 되짚으며 번역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의 ‘굴절’ 양상을 관찰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의 유입과 맞물려 서구 이론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태도와 현실과 괴리된 이론의 만연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르며 우리 학문의 ‘종속성’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저자는 학문의 종속적 구조 개선을 위해 필요한 선결 과제들 중 하나가 이론문화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라고 주장하며, 부르디외의 ‘성찰적 사회학’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체계적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지적 수단을 제공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르디외가 마지막 강의에서 썼던 비유를 빌리자면, 성찰성이란 “세계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아틀라스의 두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 질문하는 일이다. 우리가 성찰성을 그토록 중시한 부르디외의 이론에 충실한 방식으로 그것에 관해 말하려면, 그 이론을 논의하는 우리의 두 발이 과연 어디를 어떻게 딛고 있는지 끈질기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시각에서 부르디외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역설적이지만 우리 학계가 탈식민적 지식 생산을 위한 한 가지 유력한 방법을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으로서 의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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