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

한국에서 쇼핑을 하던 어느 날 미국과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미국에서는 점원이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쇼핑 봉투에 넣어 손님에게 건네줄 때, 서비스를 받은 손님은 물건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점원에게 “땡큐”라고 흔히 말한다. 점원은 “유 워 웰컴(천만에요)”라며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손님이 점원에게 “땡큐”라고 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쇼핑 중에 손님들이 물건을 건네받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인지, 예외적인지 확인하고자 그후 쇼핑할 때마다 계산대 줄에 서서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손님이 물건 받으면서 점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손님이 서비스하는 점원에게 왜 “땡큐”라고 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아침에 운동하기 위해 둘레길을 걸으면 맞은 편에서 운동하는 분들과 마주보며 지나친다. 또는 나보다 빨리 걷는 분은 나를 패스하여 지나가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이때마다 “굿 모닝”하며 인사하는 것이 일반이다.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맞은 편에서 운동하는 분들과 마주 보며 지나가면서 인사를 나누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를 패스해 지나가는 분에게 내가 먼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면 어떤 분은 놀라는 기색으로 인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대꾸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왜 그럴까?

하루는 어느 총장 부인 친척이 미국에서 방문하여 총장 부인과 같이 산보를 하고 있었다. 반대 편에서 한 청년이 조깅을 하며 지나가면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했더니 총장 부인이 대응도 안하고 “나를 언제 안다고”라고 중얼거리더란다. 내가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으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왜 서로 인사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끼리의 인사는 깍듯하다. 자세도 단정히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그런데 인사 하는 방식이 대칭형이 아니다. 한쪽은 허리를 많이 굽히고 다른 쪽은 뻣뻣이 서서 인사한다. 전자가 먼저 허리를 굽히고 인사해야 하고 후자가 손을 내밀어야 전자는 두 손으로 악수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인사는 함께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을`이 `갑`에게 드리는 것이고 `갑`은 `을`을 축복하듯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 아는 사람들끼리 이처럼 서열에 따라 예의를 갖추어 깍듯이 인사하는 것을 보고, 손님이 점원에게 고맙다고 인사 않고 둘레길에서 마주 지나가면서도 인사하지 않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알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보다 신분이 먼저다. `갑을`이라는 사회문화 때문이다 `갑`이 `을`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 문화다.

손님은 `갑`이고 점원은 `을`로 간주되는 문화다. 어깨를 스칠 정도로 좁은 둘레 길에서 마주치며 지나가도, 누가 `갑`인지 `을`인지 알아야 `을`이 인사할 수 있는 문화다.

그러니 내가 먼저 인사할 수 없다. 내가 먼저 인사할 수 없으니 서로 고개는 약간 돌리고 숙인 채 곁눈으로 상대방을 살피며 지나가게 된다. 어색한 장면이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다. 신분은 어느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

미국에선 사람 이름이 먼저 표시되고 직함은 다음에 쓴다. 한국은 반대로 직함이 먼저 오고 이름이 나중에 온다. 미국 대학 교수실 문에는 보통 교수 이름만 씌여있다.

내가 박사 공부할 때 내 지도 교수 옆방을 쓰고 있었는데 그의 방문에도 내 방문에도 개인 이름들만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교수` 직함이 붙어 있다. 어떤 경우엔 `조교수,` `부교수` 서열까지 붙여 놓는다.

단체에서 야유회를 가면 흔히 직원들이 먼저 나와 야유회 시설을 설치하고 준비한다. `상사`들은 나중에 나타나 뒷짐지고 구경하거나 평상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만 한다.

야유회에서도 `상사` 부인들과 직원 부인들이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