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2월 7일 아침 7시 무렵 도착한 이르쿠츠크는 콧날이 시리도록 매서웠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 선사하는 상큼하지만 날카로운 기운은 체내(體內) 세포(細胞)들의 긴장을 야기(惹起)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세 대의 택시에 분승(分乘)한 우리 일행은 `비즈니스 델타호텔`에 여장(旅裝)을 풀었다. 작고 아담한 호텔이지만, 외관(外觀)부터 말끔하고 미끈한 것이 세련미(洗煉味)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뜻한 물을 마음껏 써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새삼스레 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떠올리며 나흘 만의 샤워에 몸을 맡긴다. 가벼운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닐까!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린다. 그것은 도시가 자아내는 묘한 매력 때문이다. 1825년 12월 14일 제정 러시아의 전제군주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하는 청년 장교들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봉기(蜂起)를 일으킨다. 그들을 가리켜 데카브리스트, `12월 당원`이라 부른다. 1812년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개선문을 지나 파리와 프랑스의 선진문물에 눈을 뜬 귀족 장교들이 염원한 것은 공화정이었다.

전제군주 니콜라이가 그것을 용인(容認)할 리 없었고, 그들 가운데 주모자급은 처형당하기도 하고, 상당수는 이르쿠츠크로 유배(流配)당한다. 모스크바에서 무려 5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토(凍土)의 땅 이르쿠츠크! 족쇄(足鎖)에 채워진 채 걸어서 유배지로 와야 했던 열혈청년 귀족들의 유배행렬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아내들이 마차를 타고 뒤를 이었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의 선진문화를 이르쿠츠크로 이식(利殖)했던 고상하고 우아한 여인의 자태는 동상(銅像)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삶이 남긴 자취가 볼콘스키 박물관이나 트루베츠코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기약도 없는 유배지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던 귀족 아낙들의 기품(氣稟) 있는 삶은 매혹적이었다. 그것이 남긴 결과가 시베리아의 진주 이르쿠츠크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도시의 간선도로는 이제는 폐기(廢棄)된 카를 마르크스 거리와 레닌 거리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앙가라 강변에는 레닌의 최후최대 정적 (政敵) 콜차크 제독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영화 `제독의 연인`(2008)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처음 알려진 콜차크. 도심에는 사회주의 10월 혁명의 주역 레닌의 동상이 서 있다. 이르쿠츠크의 모습에서 나는 러시아의 저력(底力)과 포용(包容)을 독서한다.

이르쿠츠크 기행(紀行)을 풍요롭게 해준 것은 모스크바에서 6시간 비행(飛行)을 거쳐 우리를 찾아온 박정곤 교수다. 교육방송이나 서울방송에서 전파(電波)를 탄 그이는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러시아 지역학 전문가다. 바쁜 짬을 내서 장거리 비행을 마다않고 날아온 그이에게서 한국인의 따뜻한 정겨움이 듬뿍 묻어난다.

이르쿠츠크 시내탐방을 마친 일행은 처음 보는 압생트에 매료(魅了)된다. 70도의 짜릿함을 간직한 연초록 색깔 고운 압생트의 독특한 향기는 고혹적(蠱惑的)이었다. 인상파 화가(畵家) 고흐에게 `황반변성(黃斑變性)`을 일으키게 하여 그 유명한 노란색 해바라기 그림을 낳게 했다는 술 압생트. 19세기 후반기 가난한 노동자들과 문사(文士) 그리고 화가들의 유일한 벗이었던 압생트.

압생트로 인해 이르쿠츠크의 밤은 한층 아름답고 풍부해지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먹을거리 샤슐릭과 함께한 압생트의 향미(香味)는 귀국할 때 보드카 대신 압생트를 선택하도록 나를 인도(引導)하였다. 거리의 시리도록 찬 기운(氣運)도, 낯선 도시의 정경(情景)도 나그네의 심사(心思)를 뒤흔들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아름다운 사람과 멋진 술과 맛난 음식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일은 한국인들이 반드시 가보고 싶어 한다는 바이칼로 떠날 것이다. 약간의 취기(醉氣)와 더불어 기대치(期待値)는 최고도(最高度)로 상승(上昇)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