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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아홉번째 안부 - 포구에서

최진환 기자
등록일 2009-07-14 10:04 게재일 2009-07-1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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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 중인 포구가 눅눅합니다.


다행히도 지난밤엔 바람이 크지 않아


오늘 아침 배들은 제법 많은 청어를 풀었지요.


비닐 옷에 장화를 신은 사내들이


터질 듯 한 뜰채를 힘껏 올려 청어를 쏟으면


한가득 싣고 떠나는 트럭과 중매인들 오토바이 소리로


한동안 판장이 북적였구요.




젖은 배 위에서 밥을 지어 둘러앉은


아침식사 위로 한두 방울 또 비가 다녀가네요.


서둘러 식사를 마친 그대는


끼걱끼걱 흔들리는 뱃머리에 걸터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태우며 먼 곳 바라보았지요.




온통 펄럭이는 오후였던가요?


후둑거리며 굵은 빗방울이 사선으로 칠 때


수협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비스듬히 기댄 채 어디론가 안부 전하는 당신을 본 적 있어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지만


까무잡잡한 얼굴에 다녀가는 웃음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나는 걸 보며


아마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했지요.


작정하고 잡은 듯 수화기를 오래 놓지 못하는 걸 보며


무척이나 오랜만에 나누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구요.




힘이 들지만 참을 만 하다고


날이 덥지만 참을 만 하다고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모처럼 목욕탕에 다녀왔다고


여긴 골목마다 주홍빛 능소화가 담을 넘어 피고


키가 큰 줄기에 빨갛게 하얗게 접시 같은 꽃도 피더라고


그리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였더랬지요.




길고 긴 통화를 마치고 그대가 우산을 펴기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어요.


묵직한 할인마트 비닐봉투를 야물게 쥐고


다시 배를 향해 걷는 그대의 걸음이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사뭇 가벼워 보였답니다.




멀고 먼 나라 포구에 정박한 그대의 젊은 날


비록 지금은 눅눅한 외로움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꿈꾸던 것들을 향해 조금씩 당겨 앉는


귀하디귀한 시절이기를 바라며 포구를 둥글게 돌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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