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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핫 클릭!]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 김신조 사망...네티즌 반응은

홍성식 기자
등록일 2025-04-10 09:17 게재일 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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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사망한 김신조 씨./연합뉴스
9일 사망한 김신조 씨./연합뉴스

세칭 ‘1.21 사태’를 기억하는 노년층들이 적지 않다. 1968년 1월.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를 죽이러 남한에 침투한다.

침투 과정에서 국군, 경찰과의 교전으로 대부분이 죽음을 맞았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비가 한 명 있었으니 그가 김신조다.

체포 후 회견에서 기자들이 “우리나라에 온 목적이 뭔가?”라고 물었을 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 대답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 바로 그 김신조가 9일 사망했다. 향년 83세. ‘1.21 사태’ 이후 귀순해 한국에 정착한 그는 생전에 목회자로 활동해왔다.

다수의 언론이 보도를 통해 김신조의 죽음을 알리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세대에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의 모습을 보였다.

1968년 당시 무장공비 침투와 사살, 체포 과정을 흑백TV를 통해 지켜봤던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아직도 급박했던 그때 한국 상황과 체포된 후 김신조의 무섭게 번득거리던 눈동자가 기억 속에 선명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반면 2000년 이후 태어난 20대 이하 젊은 네티즌들은 “김신조가 누구에요?” “이 할아버지가 유명한 사람인가요?”라는 반응을 보이며 낯설어했다.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대남 공작부대 소속이었던 무장공비들이 서울의 중심인 청와대 지척까지 다가와 국가 안보를 위협했던 ‘1.21 사태’의 여파는 대단했다.

교전과 체포 과정에서 종로경찰서장이 숨지기도 했고, 안보 불안을 느낀 정부는 향토예비군과 육군3사관학교를 창설하고, 고교와 대학에 교련 과목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김신조는 결국 한국으로 귀순했지만 삶이 순탄치 않았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 걱정에 술에 의존하며 도박에 빠지기도 했고, 죄의식에도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에 의해 신앙생활을 하며 안정을 찾았다는 김씨는 1981년 성락교회에서 침례를 받았고, 1997년 1월 21일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목회 활동을 이어왔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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