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달라진 설날 풍경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5-01-30 18:18 게재일 2025-01-31 12면
스크랩버튼
황금연휴 134만여명 해외여행<br/>전통시장 등 명절 대목은 옛날<br/>행복한 설날 위한 풍습도 변화<br/>체험·관광 전통놀이행사 늘어
포항 흥해 전통시장. ‘뻥’ 소리와 함께 강냉이가 쏟아져 나왔다.
포항 흥해 전통시장. ‘뻥’ 소리와 함께 강냉이가 쏟아져 나왔다.

설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난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88올림픽 이전만 해도 해외여행 자체가 생소했다.

올해 설 연휴동안 보인 국제공항들의 북새통 모습만으로도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여실히 보인다.

설 연휴는 주말과 연휴 사이에 끼어있던 월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연휴 끝 금요일까지 연차를 쓰면 명절 연휴가 9일이었다. 넉넉해진 연휴기간동안 약 134만 여명이 차례 상을 접어두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설 명절의 변화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를 잃었던 당시, 우리의 고유명절 설날도 예외 없이 고초를 겪는다.

그들은 음력설을 ‘구정(舊正)’이라 비하하며 태양력에 따라 신정(新正)을 강요한다. 이렇게 시작된 양력 과세는 해방 후 전통명절인 설날이 되살아나면서 이중과세가 된다.

산업화시대가 열리며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세계화에 발맞춰 양력 과세를 살리고 음력설을 금한다. 그러나 오랜 전통을 버릴 수 없는 국민의 뜻에 따라 1989년 설날이 다시 되살아나며 양력 과세는 하루 휴일로 축소된다. 동요 작곡가 윤극영 선생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노래가 더없이 정겹던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뻥튀기 아저씨가 내지르는 ‘뻥’소리에 쌀, 깨, 옥수수 등을 챙긴 아이들이 몰려든다. 튀겨 온 튀밥에 집에서 고운 조청 버무려 만든 강정은 그야말로 환상의 맛. 떡 방앗간에서 갓 빼 온 가래떡을 엄마 몰래 훔쳐 먹을 땐 너무 맛있어 눈물까지 난다. 설날은 그렇게 아이들을 설레게 했다.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밤을 잘 보내야 한해가 순조롭다며 어른들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구전처럼 일러준다. 그믐밤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도 하고 도깨비가 훔쳐 갈까봐 신발을 방안에 들여놓게도 했다. 정말 눈썹이 하얗게 셀까봐 잠들지 않으려고 꾸덕꾸덕 마른 가래떡을 썰고 있는 바쁜 엄마를 거들며 버티다 버티다 잠이 들기도 했다. 얼른 입어보고 싶은 설빔을 안고 잤던 그 밤은 그렇게 내내 환하게 등불을 밝혀두었다.

포항 흥해 전통시장. 끓인 물엿에 튀밥이랑 땅콩을 버무려 강정을 만들고 있다.
포항 흥해 전통시장. 끓인 물엿에 튀밥이랑 땅콩을 버무려 강정을 만들고 있다.

설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설빔을 차려입고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공식적으로 한 살 더 먹었다는 의젓해진 마음으로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세뱃돈도 받고 덕담도 듣는다. 아이들은 들녘이나 얼음판 논 위에 모여 팽이치기, 자치기, 앉은뱅이 스케이트 타기 등의 놀이에 정월 초하루가 그저 신난다.

설빔과 맛있는 음식이 일상이 된 지금은 설 준비 내려놓고 해외로 국내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설 민속전통놀이도 체험놀이로 변모했다. 지역마다 설날의 전통 민속놀이인 투호, 공기놀이, 팽이치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을 지역민과 여행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행사장을 마련한다. 포항시도 송도 해수욕장,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영일대해수욕장,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등에서 다양한 K-민속전통놀이 행사가 있었다.

포항 흥해 전통시장의 한 상인은 “명절 대목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해외여행만큼이나 차례상차림 대행 서비스 이용이 당연시될 만큼, 변해가는 설날의 풍습이 익숙해지고 있다.

전통은 곧 뿌리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과 같다. 시류에 따라 고향에서든 여행지에서든 K-전통놀이 체험과 함께 우리 고유명절 설날을 되새기며 ‘명절증후군’이 사라진 행복한 설날을 보내는 것도 좋은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스크랩버튼